[문예창작과 통폐합 특집] 06. 명지대학교 -길혜연
[문예창작과 통폐합 특집] 06. 명지대학교 -길혜연
  • 길혜연
  • 승인 2017.05.0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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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뉴스페이퍼 = 길혜연 학생]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문예창작과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낭만적이고 현학적인 이유들은 힘없이 공중으로 흩어질 뿐이다. 글쎄, 글은 누구든,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 한 작가는 한국문학을 망친 건 ‘대학의 문예창작과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내 주변 동기들과 선배들을 둘러보자면, 열심히 공모전, 등단을 준비하는 사람, 출판사나 영화사, 광고사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 대학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글을 쓰거나, 글을 쓰지 않거나. 글을 쓰지만 그 어느 공모전에도 내지 않거나, 과제를 위해 억지로 글을 쓰거나. 문창과 안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예고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현재는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다. 언젠가부터 문학을 교육할 수 있을까, 아니 문학을 교육 받을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이 생겼다. 문예창작과 학생이 아닌 타 전공의 학생이 한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을 때, 내 동기 중 한 명이 “그 글은 ‘진짜’ 글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개의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탈문창’을 지향한다. 글쓰기를 교육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한 구석에 품으며 내 글이 상대평가로, 점수로 수치화 되어 성적으로 받아볼 때마다 그 의문은 더욱 더 커진다. 그 의문을 가지고 자퇴를 하는 친구들도, 아예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대학에서는 그 점을 잽싸게 포착한다. 프라임 사업을 생각해 보았을 때 문예창작과는 대학에서 적당한 구실로 내칠 수 있는 딱 알맞은 과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말해보고 싶다. 나는 문예창작과 안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글을 썼고, 때로는 글을 쓰지 않았다. 등단이라는 도착점은 뿌연 안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고, 그저 걷는 수밖에 없다. 그래 나는 길을 잃는 법을 배웠다. 내 글을 틀에 박혔다 생각하며 고민하기, 펜을 놓고 잠시 글에서 멀어지기, 좌절하기, 절망하기. 결국 지쳐서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교수님은 창작자가 되지 못해도 ‘고급독자’로 남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끝내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럴 수 있다. 그게 문예창작과가 없어져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해경을 해체한다던, 파면된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문제가 있으면 없애면 된다. 잘 팔리지 않으면 잘 팔릴만한 것과 합쳐버리면 된다.’ 고름은 그렇게 생겨난다. 융합은 대학이 해야 할 일이 아닌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문예창작과의 문제는 문예창작과의 문제이다. 그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온 학생들이 해결해야 하는,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들은 그걸 겪고 있다. 경험할 수 있고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기에 더욱 섬세해져야 한다. 문예창작과 내부에서 생겨난 문제들, 그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대학의 기업화로 인해 희생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한 부정적인 문제로 전체를 일반화하는 이들의 탁한 눈앞에서 움츠려들지 말자.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라는 말로 오늘을 지우지 말아 달라. 누구나 길을 잃고 실패할 권리가 있다. 미래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우리는 내일의 실패를 위해 오늘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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