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인터뷰, 싱거운 질문이 차라리 나았을 것
악스트 인터뷰, 싱거운 질문이 차라리 나았을 것
  • 곽재식 작가
  • 승인 2016.01.30 15:27
  • 댓글 0
  • 조회수 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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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T(악스트) 4호 표지

외국의 유명 인사가 한국에 찾아 와서, 질의 응답을 하는 시간이 되면 기자들이 허구헌날 “두 유 노 박지성?” “두 유 노 킴치?” 라는 질문만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벌써 지겨워진 농담처럼 되어 버렸지만, 한동안 곳곳에서 비웃음 당하던 놀림거리였고, 여전히 꽤 진지하게 그런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우든 모델이든 한 번 먼발치에서 얼굴 보기도 힘든 대가가 열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 선택된 몇몇 사람에게만 그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한국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같은 질문이 나온다면 실망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번 호 “악스트”에 실린 듀나 작가에 대한 인터뷰를 본 첫 인상이 그런 실망과 비슷했다. 자꾸만 질문이 헛다리를 짚으며 겉도는 것 같았고, 그나마 그럭저럭 구색이 맞는 질문도 상당수는 답변을 잘 이끌어 낼 수 있게 준비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손을 높이 들고 벌떡 일어나서 질문을 했는데 정말 그 답변이 듣고 싶어서 질문 했다기 보다는 질문을 하는 자기 모습을 멋있게 자랑하고 싶어서 질문하는 사람.

아예 뭔가 사실을 엉뚱하게 잘못 알고 질문 하는 바람에 애초에 문답을 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당신의 소설보다 당신이 익명이라는 점이 더 유명하다”고 단정하고 시작한 질문은 실제 질문 부분을 읽기도 전에 맥이 빠진다. 도대체 누가 듀나의 소설보다 듀나가 익명이라는 점이 더 유명하다고 생각하나? “듀나라는 사람이 있는데 본명을 안 밝히고 글을 쓴데”라고 방금 그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 말고 몇 명이 있을까. 차라리 “소설가라기 보다는 영화평론가로 더 유명하다” 정도였다면 그래도 뭔가 말을 엮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당신 소설은 시의성이 부족해진다”는 식으로 듀나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완전히 상반되는 의견을 당연하다는 이야기처럼 말을 꺼내는 대목을 보면, 기본 준비부터가 부족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편집진이 품었던 애초의 의욕이 아예 상상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인생에 대해 깊이 이해하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잘 팔리는 이야기 거리인 것 같다. “이 소설은 작가가 이혼한 뒤에 썼기 때문에 염세적이다”라고 한 마디로 잘라 소개하면 숨겨진 지식을 알려줬다며 명쾌하다고 좋아하는 매체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가? 그런 방향에서라면 듀나 작가 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캐내고 싶어 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게 정말 새로운 문학 잡지를 지향하는 이 잡지에 필요한가? 그렇게 해서, “여자 작가라서 문장이 섬세하다” “남자 작가라서 문장이 힘이 있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내면 묘사가 풍부하다” 이런 평이 더해지는 것이 뭐 얼마나 짭짤해 보일까? 당신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한 명인가, 여러 명인가, 왜 익명을 쓰나, 결혼은 했나, 이런 질문이 처음 시작부터 길게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기괴한 구경거리를 보자는 재미로 시작한다고 해도 보다 보면 지루해져 버릴 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차라리 어느 작가에게나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싱거운 질문만 했어도 훨씬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자기 소설들에 어떤 게 제일 좋나,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자기 소설 중에 제일 아쉬운 건 뭔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은 뭔가, 최근에 가장 감동한 소설은 뭔가” 이런 뻔한 질문들만 했어도 차라리 괜찮지 않았을까? “작가의 인생”이 그렇게 궁금하다면, “너 나 알지 않나?” 같은 뭔가 꼬여 보이는 질문을 하는 대신에 그냥 “요즘 소설을 쓰는데 인생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뭐냐”라든가,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 이런 분야의 소설은 좀 쓰기 어렵겠다, 꺼려진다 싶은 것이 있느냐”라는 식으로 차라리 대놓고 묻는 게 그나마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런 상황인데도 나는 그래도 이번 호 “악스트”를 아주 나쁘게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이 잡지에는 “듀나”에 대한 긴 인터뷰와 많은 글이 있었다. 90년대 후반의 듀나는 그 당시의 한국 작가들이 상상도 잘 할 수 없었던 글을 쓰던 기적 같은 작가였고, 그리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20년간 활동하면서 마땅히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했던 걸작을 꾸준히 여럿 남겼다. 그래서 나는, 듀나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는 아주 훌륭한 매체 보다는, 그래도 어떻게든 듀나를 다뤄 보려고 애를 쓰고 열의라도 보인 좀 헛돈 매체가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우루과이에서 유명한 작곡가를 한국으로 부른 뒤에, 강남스타일 춤을 추라고 해 본 뒤에 돌려 보내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영 안 오기 보다는 한 번 더 오기를 기다리는 팬의 심정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 보다야 “악스트”가 낫지 않겠나 기대도 해 보고 싶다. “악스트”는 인터뷰 말미에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이상해 보일 지 직접 설명하는 듀나의 이메일까지 같이 싣고 있었다. 이렇게 편집을 한 것이, 깔끔하게 수습할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편집진이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게 나타나면 알아 볼 수는 있는 감각은 있다는 증거라면 좋겠다.

 

 

곽재식

화학자, 작가. 2006년 웹진 거울 32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맥주의 마음」이 MBC 베스트극장에서 《토끼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이후 중단편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모살기」,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 등을 출간했고, 그 밖에 출간된 장편소설로는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역적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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