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은 박유하의 전부를 말했는가? - 「더러운 여자는 없다」에 대한 반론
김규항은 박유하의 전부를 말했는가? - 「더러운 여자는 없다」에 대한 반론
  • 김요섭 평론가
  • 승인 2016.02.03 21:08
  • 댓글 1
  • 조회수 6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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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미군 위안부 122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이 위안부가 된 경로 역시 다양했다. 인신매매로 끌려온 소녀도 있고 가족에 의해 팔려온 사람도 있고 돈을 벌기 위해 온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애국교육’을 하고 미군의 건강을 위해 성병관리를 하고 도망치면 경찰을 통해 잡아오기까지 했던 한국 정부는 그 모든 사실을 부인한다. 우리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와 그들을 동등하게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순결한 처녀들이 아니라 ‘양갈보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저희가 괜히 나섰다가 일본 우익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

- 김규항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 더러운 여자는 없다」

 

김규항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옹호하기 위해 한국의 위안부인식이 국내에서 발생한 유사한 국가폭력인 '미군 위안부'문제와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이 박유하를 옹호하기 위해 배치된 것은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이 가부장적 국가의 구조적인 폭력성에 의해서 '합법적'이지만 ‘구조적’인 폭력으로서 성적착취가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 이러한 성적착취가 발생하는 방식은 '제국'이란 민족집단에 대한 차별적 폭력의 위계를 설정한 주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국민국가' 일반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일본'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식민지적 폭력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도 아니다. 박유하가 '제국'이란 개념을 동원하는 방식은 오직 '식민지배가 오래되었으므로 스스로 일본인이라고 인식했을 것'이라며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의 경험을 일치시키려 할 때뿐이다. 김규항이 이러한 박유하적 '제국-국민국가'의 전유를 긍정하는 근거로 '민족'이란 피해의식은 내부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묵인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제국-국민국가의 개념상의 혼동도, 법적 책임의 소거를 위한 구조적 강제성이란 모호한 개념의 창출도 묵인된다. 실상 박유하에 대한 비판의 주된 논거가 방법론적 모호성과 사료의 취사선택과 왜곡, 법적책임을 제거하려는 명백한 정치적 목적성이란 것은 의도적으로 지워진다. 그런데 과연 김규항의 주장대로 기존 위안부에 대한 논의는 국내 문제를 지워왔던가?

 

"넷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기지촌 여성인권 단체들의 연대체인 기지촌인권연대(2012년)가 만들어지자, 피해 당사자들이 두 손 마주 잡고 만나는 역사가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 국가의 책임이다”라며 기지촌 할머니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들 간 상호 공감과 지지가 없었다면, ‘양갈보’라 손가락질 받던 이들이 공적 공간에 얼굴을 드러내고 수요시위 등에 참석해 연대발언을 할 수 있었겠는가." 

- 이나영 교수 「지겹다, 위선적 ‘진보’ 지식인의 자기변명」

 

실상 한국에서 위안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면 미군 위안부 문제는 과연 공론화될 수 있었을까?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문제의 활동가로 '‘미군 위안부’의 국가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후원자이자 법정 증인'이기도 한 이나영 교수의 말은 이와 다르다. 오히려 대다수가 침묵하고 외면하는 미군위안소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게 자신들이 구축한 발언의 장소(수요집회)와 관심을 나누고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이것이 과연 '순결한 소녀'로 민족의 상처란 방식으로 위안부를 기억을 단일하게 만들었다는 그 '정대협'의 행위인가? 김규항-박유하의 논리는 '소녀상'이란 이미지에 집착하며 실제 사건의 공론화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김규항이 그리도 애처롭게 떠받드는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의 위안부 인식을 분석하기 위해 선택한 소재가 고작 정대협의 인터넷 홍보용 '플래시 애니메이션'이고 한국의 모든 연구는 정대협에 종속적이라며 배제했다는 걸 김규항의 독자들은 알고 있을까?)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위안부 문제가 전시강간과 국가적 성폭력의 공론화에 있어서 선도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여성의 성 문제에 있어 억압적인 사회에서 성폭력의 희생자를 중심에 놓은 사회적 논의는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가폭력 문제에서 여성의 성적 희생은 주변화 되거나 망각된다. 4.3과 여순사건, 보도연맹학살 과정에서 발생한 국군과 민병대의 강간은 학살의 처참한 순간을 꾸미는 비극적 삽화에 불과하며 광범위하게 자행된 성적폭력을 중심으로 한 연구나 서사를 찾아볼 수 없다. 2차대전기 학살에 대한 연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지역에서 발생된 광범위한 강간과 (연합군과 추축군, 소련군을 가리지 않고) 점령지에서 행한 강간은 최대 피해자가 수백만에 달한다고 알려진 소련주둔군의 독일인 강간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비해 공론화되지도, 정치적 상징성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한국의 피해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각국의 활동가, 학자들의 노력을 통해서 전시강간 문제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부상한 극히 드문 사례다.

"위안부를 대상화하는 그런 위선적 태도는 위안부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폭넓은 설득력을 갖지 못"하다는 김규항의 주장과 다르게, 대량학살과 전쟁/국가폭력의 '삽화'가 아니라 핵심이슈로 전시 강간이 논의되는 극도로 예외적인 경우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이 지점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대협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요 위안부 희생자 단체와 운동이 위안부들의 이미지를 오히려 협소하게 만든다거나 공적 기억에서 다른 목소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로 인해서 '화냥년'과 '양갈보'로, 괴롭고 수치스러워서 침묵해야 했던 희생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억압했다는 김규항 - 박유하의 주장과는 달리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이전까지 한국에서 이들은 완벽히 배제되어왔다. 매춘/강간과 연결되었던 여성은 정치적인 발화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정치성은 "나는 몸을 파는 더러운 년일지언정 정신(혹은 나라)을 팔지는 않았다."는 반성의 대타항일 뿐이었다. 이런 정치적 발언에서 매춘 혹은 강간은 회복될 수 없는 수치와 타락의 증표이며 이에 대한 인정 없이는 어떤 문제제기도 불가능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극히 초기의 서사화사례인 조갑상 선생의 『다시 시작하는 끝』(1990)에 수록된 어느 단편에서 위안부 문제는 '다시 말해져서는 안 되고 기억되기에 너무 고통스러운 것'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수요집회로 대표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노력 이전까지 전시강간/매춘에 희생된 여성은 정치적 주체가 되었던 적이 없다. 김규항-박유하가 주장하는 배제와 단일화의 논리는 현실에서 이처럼 동떨어져 있다.

박유하의 주장과 달리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논의가 희생자들을 정치적 주체화하고 공적 기억의 영역을 확대하는 노력이란 점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김규항의 글을 매혹적으로 읽은 몇몇 독자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박유하의 글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를 맺었던 일부 위안부들의 기억 역시도 인정하자는 것이 아닌가? 일본군 위안부들에 대한 공적 기억을 확장하는데 이를 포용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의문은 김규항의 글에서 파편적으로 박유하의 논리를 접한 이들이라면 가질법하다. 하지만 김규항이 박유하의 논리를 기억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과 달리,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서 ‘동지적 관계’를 맺고 일본군과 연애도 하고 함께 살았다는 위안부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목적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이는 제국 일본에 의한 민족차별과 전시강간/국제적 인신매매를 ‘구조적 책임’이란 모호한 영역으로 배치함으로써 ‘일본에는 어떤 법적 책임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다. ‘홀로코스트는 위안부 문제와 달리 협력자 문제가 없다’라는 왜곡에 매달리면서까지(홀로코스트 과정에서 유대인공동체는 나치가 학살에 임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말단행정기관으로 재편성되어 있었다. 강압을 통한 광범위한 협력관계가 구축되어 있었고 일부의 이권을 보장해주기도 했다.) 법적 책임을 지우고 싶어 했다는 것(홀로코스트와 위안부 문제의 구분은 아이히만 재판이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적용되었던 ‘인류에 대한 죄’라는 법적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함이다.)을 김규항은 주목하고 있지 않다. 실상 기억의 다양화라는 표면적인 목적은 일본의 법적책임을 면제하자는 주장을 위한 한 단계에 불과하다.

박유하의 논리를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억을 다양화하는 것이란 표면적인 주장과 달리 정대협과 평화집회에 참여하는 위안부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는 한국의 위안부 이미지를 구축한 권력단체로 정대협을 지목하며 이들에 의해서 위안부의 기억이 단일해졌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정치적 주체가 된 위안부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배후 권력인 ‘정대협’에 의해서 왜곡되고 구성된 목소리라 주장한다. 다시 위안부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초래하는 것은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다양화되는 것도, 그들의 기억을 확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성 피해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들어낸 기반을 공격하고 이들이 가졌던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김규항이 박유하의 논리를 빌려오면서도 『제국의 위안부』가 설정한 “한국의 위안부 인식 = 정대협”이라는 틀을 자신의 글에서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우리 = 한국의 위안부 인식”이란 틀로 교체한 것은 희생자들의 주체성 부정을 드러내기 부담스러웠던 것 아닌가? 『제국의 위안부』를 옹호하면서도 그 주장의 파편만을 임의로 가져오는 글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일본군의 동지인 위안부’, ‘위안부의 기억을 왜곡하는 우리’라는 파편으로 그 책을 말하지 말라. “제국의 일원인 위안부 - 매춘을 만드는 국가구조 - 제국의 합법”이란 논리의 흐름과 “한국의 위안부 인식을 왜곡한 배후권력인 정대협”이라는 전체 주장을 가져와서 그에 대해 항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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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2016-02-06 00:19:23
기사 잘 읽었습니다. 김요섭 선생님께 문의할 게 있어서 webmaster@news-paper.co.kr로 메일을 보내드렸는데 반송이 됩니다. 혹시 다른 메일 쓰시면 dream4star@hanmail.net 으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