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산울림,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2) 산울림,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 김병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2.10 23:22
  • 댓글 0
  • 조회수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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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진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무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 간지런 바람에 흩어져

뽀오얀 우윳빛 숲 속은 꿈꾸는 듯 아련했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 산울림,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中

  

늦여름의 숲은 더위가 한창이었다. 아직 덜 여문 도토리나 은행이 후두둑 떨어지기도 전에 메마른 나무들은 마치 잎을 많이 지닌 부자라는 양, 늘어질 데로 늘어지고, 햇살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불타겠다는 듯 활활 타올랐었다. 우리들의 얼굴은 때때로 잘 구운 질그릇처럼 타곤 했다. 물가에 앉아있을 때면 물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따가웠다. 새까맣게 탄 피부를 벗길 때마다 따끔거림으로 인해 살 안에 차오르던 두려움이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여름에 대한 노래로는 적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순간은 마치 갑갑한 더위 속을 비집고 불어오는 한 움큼의 시원한 바람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이 곡 안에 들어간 풍경은 보드랍기 그지없다.

김창완의 보컬을 좋아한다. '보'과 '뽀'을 뭉뚱그리며 부른 그의 가사처리를 좋아한다. 가사지에는 '뽀오얀'이라고 적혀있지만 이따금 그게 '보'와 '뽀'의 중간음처럼 들릴 때가 많다. 녹음 상태 때문인지 그이 때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이 노래도 그런 기분으로 들을 때가 많다.

게다가, 이 노래는 자신이 부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꼭 그렇진 않았'다며,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라고 눙친다. 자기가 겪었던 일인데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의 주인인 자신이 미처 정확하게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 이 노래를 듣는 일은 정말 ‘다른 공간을 듣는 일’이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 의아하다. 숲에 ‘우윳빛’이라는 색채를 집어넣는 기술(記述)은 '숲'보다 '아련함'에 방점을 찍고 있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이라는 구절로 잡히지 않는 햇살에 육체를 부여하자, ‘간지런 바람에 흩어’진다는 현상까지 포착한다. 이러한 직조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풍경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언어에 이끌린다. 거의 전적으로 '그녀'와 숲에 대해 묘사하지만, 노래하는 자신도 ‘우리 둘’이라는 정체성으로만 등장한다. 타자를 위해 자신이 비켜선다. 이러한 혼재가 외려 더 많은 감각들을 일깨운다. 하나하나의 심상이 싹처럼 자라나 거대한 풍경을 지닌 나무가 되고 숲이 된다. 세 번 반복되는 가사는 그 반복 덕분에 마음에 더 깊숙하게 새겨진다. 이 가사는 그래서 정말, 시(詩)다.

노래는 그 뒤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말을 아낀다. 말을 아낀 자리에 피아노가 생동감 있는 타건이 점점 흐려지고, 솔로 기타가 녹슨 초침처럼, '그녀'라는 존재가 없는 시간처럼 축 쳐진 톤으로 연주한다. 빛이 바라는 시간 속에서 오로지 그 빛나는 장면만이 오롯하게 살아난다. 그렇게 노래는 노래 속의 시간을 청자(聽者)의 영원한 타자로 만들어놓는다. 그런 식으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시간, 혹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호명한다. 이 노래가 과거에 대한 일을 노래하고 있기에, 이런 과거를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라고 심드렁하게 말하기에, 이 호명은 여전히 깊고 싱싱하다.

 그 친구가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 없는 사람이, 없는 시간이 더 그리운 것일까. 시간이 사람이 다시 멀어진 기분이다.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에 밤새 잠을 설친다. 내가 너무 늦은 시간에 이 마음에 도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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