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이퍼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출판사 부스들을 둘러보던 필자가 걸음을 옮긴 곳은 보로우 홀(Borough Hall)로, 정부 건물이었다.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건물들 중 하나였다. 해외 작가로서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에 초청된 김영하 작가가 다른 해외 작가들과 함께 등장하는 토크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김영하 작가, 스위스의 파스칼 크래머(Pascale Kramer) 작가, 캐나다의 안드레 엘렉시스(André Alexis) 작가, 세 분의 작가들이 등장할 예정이었다. (한국 작가는 김영하 작가와 이민진 작가, 두 분이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토크가 이루어질 건물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두 개의 긴 줄을 이루고 서 있었다. 하나의 줄은 이전에 토크쇼에 참여했던 또 다른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이었고, 한 줄은 곧 있을 토크를 위한 줄이었다. 건물의 로비에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성공적인 북 페스티벌의 증거인 듯했다. 해외 작가들의 토크를 보기 위해 건물의 복도를 메울 정도의 인파가 몰려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동시에 평소에 보기 힘든 해외 작가들을 초청한 행사다보니 사람이 많이 몰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토크는 뉴욕 타임즈의 평론가 드와이트 가너(Dwight Garner)가 작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작가들이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들을 영문판으로 번역하신 번역가이자 작가이신 Krys Lee가 함께 토크쇼에 나와 김영하 작가의 말들을 통역하였다. 소설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다. 작가 각각에게 본인의 작품들의 내용,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들, 소설을 쓰게 하는 동기, 비평에 대한 생각,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서 질문이 나왔다.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질문과 답변은 정치성에 대한 것이었다. 소설에 정치성, 정치적인 의도나 주장이 들어가 있냐는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질문이었기에 단박에 흥미를 끌었다. 한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이들이 정치 이야기가 싸움으로 이어진다며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정치인이 직업이 아닌 이상 정치적 입장을 잘 밝히지 않는다. 실제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밝혔던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로 탄압받기도 했었기에 토크에서 이러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더욱 믿기 힘들었다. 캐나다의 안드레 엘렉시스(André Alexis) 작가는 딱히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파스칼 크래머(Pascale Kramer) 작가는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에서도 활동하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 또한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많은 소설들이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영화 산업에서의 직업이 본래 직업이었다던 그녀는 사회 참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필자는 한국인으로서 본인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현재 많은 한국 사람들의 우울한 감성을 소설 속에서 잘 집어내는 김영하 작가의 답변이 궁금했다. 김영하 작가는 올해 미국에서 번역본이 나온 「너의 목소리가 들려 (I hear your voice)」를 쓰고 있을 당시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이 책이 미국에서보다 훨씬 일찍, 2012년도에 나왔다고 말했으며, 당시의 정치가 소설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소설을 쓴 것은 아니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무기력 속에서 절망하는 십대 폭주족들의 이야기가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번역가와 함께 나온 것은 김영하 작가뿐이어서 그런지 번역가이자 작가인 Krys Lee는 번역의 과정에 대한 질문을 따로 받았다. 김영하 작가가 번역가에게 많은 자유를 주는 편이며, 번역에서의 애매한 부분이 발생할 때 서로 협의한다고 한다. 그리고 번역가는 출판사 측의 의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수정 사항이 있다면 소설가와 협의를 거친 후에 출판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아닐지 결정한다고 한다.
토크를 들은 사람들의 질문들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소설을 쓰다보면 분명 막히는 부분이 있을 것인데, 그럴 때 어떻게 하냐는 것이 질문이었다. 파스칼 크래머(Pascale Kramer) 작가는 쓰는 행위 자체를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어떻게든 풀려나간다고 말했다. 작가도 특별히 다른 것이 없고 쓰는 행위에 대한 어려움은 지속적으로 쓰면서 극복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책의 주인공들이 읽을법한 책을 선택해서 읽어보면서 주인공들에 대해 생각해본다고 답변했다.
토크 이후에는 토크에 참여한 작가들의 사인회 행사가 있었다. 토크가 열렸던 건물 바로 앞에는 사인회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책들을 모두 파는 부스도 있어서, 토크가 끝나고 사인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책을 사서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사인회 행사가 끝나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아까는 사람이 없이 비어있던 시 낭송 부스에 시를 낭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시 낭송을 직접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시를 낭송하는 것을 본 것 자체도 처음이었다. 사실 영문 시는 무슨 내용을 말하는 것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앉아서 들어보았다. 한글로도 시는 어려운데, 영어 시는 더했다. 시에 쓰인 시어들부터도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영어 특유의 강세와 억양을 강조하고 커다란 몸짓을 취하며 이뤄지는 영어 시 낭송은 언어의 내용을 완벽히 알 수 없어도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모든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드문드문 들리는 단어들을 연결해보면서 상황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다른 패널들이 나와 다른 시를 낭송했다. 필자가 본 시 낭송 중에서 가장 신기했던 광경이었는데, 시 낭송을 듣는 사람들이 요가 매트에서 요가를 하며 시 낭송을 듣고 있었다.
브루클린의 다운타운에서 일주일동안 해외 작가들을 초청하고 어린이날까지 끼워가며 여러 행사를 진행한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은 규모가 큰 축제이다. 다음 년도 9월에 미국 뉴욕에 가실 분들, 특히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 드리고 싶다. 운이 좋으면 좋아하는 작가와 만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영문학을 알지 못해도 책을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뿌듯함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책 구경 말고도 다른 볼거리들이 많으니 한 번쯤은 구경해볼만한 부스들이 많다.

책을 점점 덜 읽는 요즘이라 그런지, 북 페스티벌 부스들에서도 책을 읽자, 라는 문구들이 많이들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도 책을 덜 읽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한국에서도 도시의 중심 지역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거대한 도서 축제가 열린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특히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에는 거대 출판사가 아닌, 중소 출판사들도 부스를 배정받아 책을 홍보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중소 출판사들이 이러한 기회를 잡게 된다면 출판계가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듯하다. 여하튼 아무리 예전보다 책을 덜 읽는다지만 주말마다 종로 교보문고에 인파가 엄청나다. 바쁜 틈에도 많은 이들이 책을 아직까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볼 때 한국에서도 도심, 혹은 큰 도시 중심에서 도서 축제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출판사들도, 독자들도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끝

남유연 칼럼니스트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Pratt Institute Fine art - Painting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