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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기획칼럼] 제1부 2장 미당 서정주 그는 을마나 진실한 시인이었나병든 시인과 괴물엘리트들의 세계현실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7.10.06 17:43

1부 1장 보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해방 이후, 여운형이 건준을 꾸리고 조선공산당이 뭉치자 이에 대응하고자 자신의 대부와도 같은 김성수가 1945년 9월 16일 한국민주당을 창당한다-한민당의 주요 멤버는 김성수, 송진우 등이 이끄는 지주, 기업가, 언론인의 연합체였다. 이 호남그룹은 지주식 기업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청사). 그는 이듬해 4월 4일 좌익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대응하기 위해 김동리 등과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였다. 미당, 그는 일찍부터 김성수의 시종侍從으로 자처하고 나선 우파 이데올로그 시인이었던 것이다.

김성수가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미당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다시 동아일보의 문화부장, 편집국장이 되고 권력에 들어서는 길...이건 노예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 시인의 길이 아니었다. 한국적 정실주의 표본, 근친상간이 여기서 비롯되고, 화간비평, 갈보비평이 여기서 비롯되었으며 전체주의의 괴물이 바로 여기서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우파의 뮤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데는 또한 언론과의 공모가, 권언유착의 카르텔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미당에게서 본다. 그런 그가 [이승만 박사전]을 쓴 게 어찌 우연이었겠으며, 그런 그가 독재 시절 마치 저 영국의 계관시인처럼 권력의 충실한 개로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 최고의 요직을 독점하며 정권 수호의 뮤즈 여신이었다는 것이 또한 어찌 우연이었겠는가. 뮤즈라니 사실 이건 괴물을 달리 말하는 비유다. 사전적 의미에서 괴상하고 이상한 사람을 ‘괴물’이라고 비유해서 말하고자 함이니 이상할 것도 없는 말이다. 

전두환 예찬시 
-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보라, 헤시오도스의 제우스신 찬가, [신통기]와 너무 닮아 있지 않은가. 정말 놀랍고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나는 사실 솟아나오는 격분을 참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런 사실들이 언론통제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미당은 저 구름에 가려진 영봉처럼 계속해서 신화적 미망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고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따로 있다. 미당, 금개구리 같은 그가 낳은 수많은 올챙이들이 이제 또 개구리가 되어서는 수많은 미당 신화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미당의 추천을 받아 문단을 형성한 그들이 시인부락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역시 고위직을 차고 앉아 호의호식하면서 개굴개굴! 울어대고 있는 것이다. 미당은 시인부락의 족장이라고, 아니 그는 하나의 정부라고, 아니 한 술 더 떠서 이제는 종교가 되었노라고. 그의 유작은 다만 유작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 되어 신화화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매우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될 하나의 분명한 현실로서 우리는 여기서 우리 문화가 처한 그 ‘갈보적’ 성격을 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창녀기자가 창궐하고, 유곽언론이 득세하며, 괴물 엘리트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이 야만적 현실이 낯설지 않은, 이젠 물질적 상품만이 아니라 영혼으로 빚은 것마저 팔아넘기지 않고서는 삶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잔혹서사로서의 현실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빛나는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저 놋그릇보다도 더 쨍쨍했던 빛나는 추억이 있다. 시인 김수영은 말했다. 시는 사회적 공기이자 꿈이라고. 여기, ‘사회적’이라는 말은 결코 입에 발린 수사가 아니다. 시의 성격을 제한하고 있는 그만의 신념, 하나의 크레도스credos다. 즉 시는 하나의 도덕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고, 따라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이며, 그리하여 이를 또 어떻게 표현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적 고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가 왜 독재 치하의 어두운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리하여 그가 왜 시는 불온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그의 시적 메시지가 왜 그런 현실을 까발리기 위해,, 산문적 개진이 필요해졌고, 그리하여 단순한 리얼리즘을 넘어 형식주의를 넘어,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생활 서사시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하나의 일상어가 그대로 시꽃으로 기능하고 있는 그의 시라는 것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자 태도 표명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눈부신 사례임을 우리는 안다. ‘거대한 뿌리’, ‘풀’ 등..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 김수영, ‘공자의 생활난’, 1949 

1949년에 썼다는 연대기적 지표는 이 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즉 해방전후사가 잘 말해주듯이, 이때야말로 해방은 맞이했지만 가치관이 극심하게 혼란이 일던 시기였다. 이런 사실은 여전히 가치관이 혼란하고 살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이 시대, 그의 시가 아직도 기념비적이고 현재적인지, 왜 ‘김수영과 그의 시대’가 아니라 ‘김수영과 이 시대’인지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열쇠임을 말해준다. 

좌우의 이념 갈등은 물론이고 당시는 가난이라는 천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국민 대다수의 숙제였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서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실 가닥 같은’ 가난에 시달린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식인이었다. 지식인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무엇보다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식인은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에 천형 같은 가난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주체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외로운 존재다. 이에 지식인은 크게 도구적 지식인과 비판적 지식인으로 나누어진다. 

이 시에서 나는 화자이고, 너는 타자다. 다시 너는 도구적 지식인이고, 나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그래서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줄넘기 작란을’ 하는 너는 바로 도구적 지식인이자 일제에, 권력에 붙어먹은 부일배다. 다시 말해 꽃이 열매의 상부에 필 수 없는 것이 원칙인데 그렇다는 것은 뭔가 가치가 전도된 상황을 암시한다. 이럴 때 줄넘기 작란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몰가치적 행위에 대한 시적 단죄의 성격을 지닌다. 이와 다르게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나름대로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고 한 것은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나름 재주를 피워보려고 했으나, 그것은 도덕적 배반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작전처럼 어려웠을 것이라 토로하고 있다. 

국수, 가난을 상징하는 국수를 ‘너’로 상징되는 도구적 지식인들은 그 영혼을 바친 대가로 값비싼 ‘마카로니’로 바꾸어 먹는다. 그러니 갑자기 밸이 틀어진 것일까.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하고 그는 갑자기 부아가 났나보다. 이런 슬픔과 분노, 노여움이 교차되는 어느 순간, 그러나 그에게는 도덕에 대한 지고의 가치가, 프로메테우스 신이 그를 지켜주고 있던 것일까. 그리하여 정의의 불칼이 내려지고 외로운 고검이 빛을 발하는 순간, 정의는 실로 외로운 자의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라며, 위기에서 자신을 되찾고 새로운 의미의 세계지평을 여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대목이 바로 김수영의 시적 운명을 내건 일대 명제의 탄생 순간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동굴에 갇혀 있지 않고 ‘동무여’라고 외적 환기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화시키며 즉자적 주관을 벗어나 대자적 지평으로 넘어가는 변환transition의 언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며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 김수영이 던지고 있는 토포스,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애타는 추구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아침에 도를, 진리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던 것처럼, 그 진리는 애타는 것이고, 절실한 것이기에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감연히 외칠 수 있는 성질의 그 무엇이었다. 시인은 오랜 사제priest로서, 진리의 담당자 아니었던가. 한국시단의 ‘야생 사자’ 같았던 그, 그는 무엇보다 이렇게 불타는 진리의 파수병이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시인 미당은 어떤가.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나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를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此一篇昭和十二年丁丑歲仲秋作. 作者時年二十三也.

                                                 - 서정주, ‘自畵像’ 전문

여기, 자화상도 그렇고 후기에 한자를 부기한 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매우 높은 자존의식을 지닌 시인임을 엿볼 수 있다. ‘목아지가 가느다란 李太白이처럼/우리는 어찌서 兩班이어야 했드냐’(葉書-東里에게)가 또한 그러했듯이...이렇게 드높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는 시인에게 아버지가(*오해마라, 여기 ‘애비’는 전라도 구어다. 시는 구어이고 개인어이니 표준어가 아니라고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종’이었다는 것은 전도가 양양한 젊은 시인에게 매우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었으리라. 그런 아버지가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고 매인 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서 마치 시인의 운명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시의 첫출발을 예고하는 그의 시 모두에서 ‘종놈에 사로잡힌slave-obsessed' 작가의 내면을 마주한다. 이것은 김현(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 민음사)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보편적인 것으로 환치시키는 어려운 작업을 예술적으로 극히 높은 차원에서 성공시키고 있는데, 그의 신분 문제 역시 그는 그것을 일제 치하에, 일본이라는 대지주 밑에서 종살이 하는 한국민 전체의 그것으로 폭넓게 일반화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다”라고 극찬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독이다. 이것이야말로 주례사 비평이자 하나의 화간비평이다. 

‘자화상’에는 미당의 노예도덕이 철저히 드러나 있다. 우선,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늙어버린 영혼의 이미지다. 23세를 맞이한 그가 중추에 갑자기 감회가 돌아서인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삶의 의식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가난과 저주, 불행, 죄인이라는 의식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결코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반성하지 않겠다는 강고한 태도이다. 이것은 단순히 가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여기, ‘바람’은 기회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암시하는 시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다. 자신 스스로 아버지에 대한 강한 거부를 느끼고 시적으로 이를 의식하면서도 아버지를 극복하지 모하고 결국 그 또한 아버지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거, 바로 여기에 서정주의 비극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존재였음을 본다. 대체 성숙이란 무엇인가. 성숙은 무엇보다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는 존재의 내적, 질적 변화를 말한다. 이런 성숙의 과정에는 반드시 번데기가 스스로 허물을 벗들이 미숙한 껍질을 벗어던져야 하는데, 이 껍질 속엔 칸트가 말하는 바, ‘게으름’과 ‘비겁’이 들어 있다. 따라서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엄숙한 판단과 이성적 사고에 바탕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속의 끈을 과감하게 끊을 줄 아는 ‘결단’과 ‘용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과연 어떤가.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며’ 살아온 생,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하고 자신의 허물을 벗지 못하고 번데기에 갇히고 만다.

그리하여 역사적 동력을 얻지 모한 그의 시가 내면으로 기어들어가고(서정시), 과거로 회귀하며([신라초]), 기교로 춤을 추(탐미주의)게 된 소이가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정의 절정을 이루게 된 것이 친일시이고 독재자 찬양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분명하게 서정주의 독자가 결코 대중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였다는 점을 확인한다.  

돌아보건대, 시는 거저 쓰는 게 아니다. 시는 다만 언어가 아니다. 언어의 뿌리가 삶에 기반하고 있으니, 삶을 떠난 언어는 진실을 노래할 수 없다 

서정주, 그는 말했다.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무등을 보며’)고...가난은 뭐 별 거 아니라는 거다. 과연 그럴까. 그는 현실을 너무 모르는 거다. 그러니 약자의 현실을 모르니, 그들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거 아닌가. 시인 신경림의 노래를 보자.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가난한 사랑노래')고.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도, 두려움도, 그리움도, 심지어는 사랑도 버려야만 한다는 것을,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이 모든 삶의 양식들을 버려야 한다는 놀라운 시적 진실을 전하고 있다. 이런 현실주의 서정시인 신경림에 대해 서정주의 시종 이남호는 뭐 이런 작품이 왜 교과서에 실려야 되느냐며 딴지를 걸고 악의적인 비평의 날을 세우고 있다(이남호,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현대문학). 

이렇게 현실도 모르고 정조까지 내다버린 시인을 모셔다 추모하고, 주례사 비평에 찬사까지 늘어놓고 있는 이남호, 이영광은 괴물 엘리트의 표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김성수의 마름이었던 아버지를 두었던 서정주나 김성수가 세운 고려대의 엘리트들이 그런 서정주를 두둔하기에 바쁜 정실비평의 후예들이라니...뿐인가. 이를 대문짝만하게 실어 독자들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여 자신들의 지배적 이익을 영원히 이어가겠다는, 권력의 재생산, 유포, 확산에 기여하고 있는 주류언론들, 이들이 한 무더기가 되어 서정주 신화를 재생산하며 한국의 유곽언론과 창녀기자, 괴물엘리트군단을 형성하고 있다. 독자여, 바로 여기,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신화적 미망이 풍미하는 곳에 전체주의의 유령이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은가.

정치계에만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이인화 같은 괴물 엘리트들이 있는 게 아니다. 미당 서정주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회주의자이자 병든 시인이다. 이렇게 배울 것도 없고 건강하지도 못한 누더기처럼 너절한 시인을 뭐가 좋다고 추앙하는가, 괴물 엘리트들이여! 시인 김남주는 ‘이 가을에 나는’ 에서 노래했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라고...시인이 시대의 모순을 끌어안은 빛나는 전사가 되지는 못할망정 기회주의자였다니...그것도 권력의 사타구니를 끼고 피를 빨아 댄 기생충 같은 위인이었다니...나는 무엇보다 예술가들이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시종이었다는 니체의 명제를 확인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 참으로 찢어지게 슬프다.
 
에고...

1부 끝

늘샘 김상천 

작가,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소명출판) 저자

 

김상천 문예비평가  info@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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