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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쇄소 J의 부도-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매출 40억대의 인쇄소 J가 9월 21일 최종부도 처리됐다.
김형수 경영컨설턴트 | 승인 2017.10.07 17:08

[뉴스페이퍼 = 김형수 경영컨설턴트]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매출 40억대의 인쇄소 J가 9월 21일 최종부도 처리됐다. 지난 3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속 상승하던 업체라 충격이 적지 않다. 2014년 34억, 2015년 37억, 2016년 40억 대로 성장했으나 거래처에서 받아야 할 외상 매출금은 매년 늘어났고, 재고 역시 켜켜이 쌓여갔다.

2016년 영업이익을 3억 이상 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은 돌지 않았다. 영업이익의 절반은 이자로 나갔고, 그나마 출판사에서 받은 '약속어음'은 송인서적 부도 이후 휴짓조각이 되어 버렸으리라. 급기야 인쇄소 J는 9월 15일 당좌수표 4천5백, 9월 21일 '약속어음' 3억7천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우린 지난 1월 2일 부도를 낸 (주)송인서적이 발행한 '약속어음'들이 최장 7개월 이상짜리였음을 기억한다. 송인서적 부도 이후 정확히 7개월 만인 지난 7월 26일, 매출 100억 대의 업계 2위 인쇄소 (주)신흥피앤피가 부도 처리된 것도 우린 이미 기억하고 있다. 그 여파들이 이젠 중견 인쇄소로 불붙어 가는 건 아닌지 우려가 앞설 뿐이다.

인쇄소가 어려운 속내는 수많은 출판사와의 외상잔고 거래방식에 있다. 출판사 대부분은 종이를 '현금' 주고 구입해 인쇄소에 입고시킨 후, 인쇄소가 인쇄물을 완성해 제본소로 넘기고 나면 '견적서'를 받고 그걸 외상장부에 일단 묵힌다. 보통 익월 말 결제 습관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거래 관행 속에서, 약 60일 기간 동안 외상장부에 묵힐 권리를 인쇄소는 출판사에 허용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출판사도 적지 않지만, 이 해묵은 관행 속에서 인쇄소는 인쇄비를 외상장부에 쌓아 두었다가, 이윽고 '약속어음'을 받는데, 그걸 받은 후 최장 6~7개월을 또 묵혀야 한다.

J 인쇄소는 이런 '약속어음' 3억 7천을 막지 못했다. 1권당 평균 인쇄비 단가를 1,000원만 잡아도 37만 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신생 출판사에 대한 일정한 잔고보장 관행, 출판사 마다 인쇄소를 중복 거래하며 중복잔고를 쌓는 관행, 상법 상 잔고채권(상사채권)의 소멸기일이 도래하기도 전에 출판사를 폐업해 인쇄비 지급을 거부하는 관행, 베스트셀러가 터지자 인쇄소에 인쇄단가 하락과 일정 잔고를 높여 보장받는 후려치기 관행도 인쇄소들을 힘들게 하는 속내의 실태이다.

인쇄소가 어려운 속내의 본질에는 출판사가 지불하는 약속어음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약속어음의 발원지는 서점이나 유통사가 대부분이다. 결국, 인쇄소가 어려운 건 서점과 유통사가 발행하는 '약속어음'으로 결제대금을 받는 거래 관계에 있다.

그럼 서점은 왜 즉시 현금을 지급하지 않고 어음을 지급할까. 기업이 현금 지출을 늦추면, 잔고로 쌓인 현금성 이자소득을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매유통사가 약속어음을 지급하는 이유도 그렇다. 출판사에 책을 받아 소매서점 등에 책을 주고 자기들도 어음을 받거나 잔고를 쌓아 둔 후 후불 현금결제를 받는데서 기인하는 문제도 있지만, 대형유통사는 소매서점에겐 갑 중의 갑이라서, 이 역시 현금보유력을 높여 이자 소득을 부가적으로 얻고자 하는 재무적 트릭이 존재한다.

특히 서점과 유통사는 매년 말 결산기에 접어들수록 기업 내에 현금보유력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12월 31일자 기업의 유동자산 중 현금자산의 비중이 높다는 건 그만큼 그 기업의 대외적 신용도를 높여주는 결과를 얻기 때문이고, 이를 통해 결산기 이후 1년간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 기업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현금흐름의 적체소가 바로 서점과 유통사를 진원지로 한다는 점이다. 광활한 동맥이 펼쳐진 출판계의 지형 속에, 현금의 흐름을 원활히 공급해 줘야 할 진원지들이 제구실을 하지 않으면, 출판생태계의 곳곳에서 맥이 끊기고 파괴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과거 지방서점 수금을 다니던 영업자들은 늘 '문방구 어음' 때문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호남선과 경부선을 막론하고 지역의 소매서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서점들이 '문방구에서 어음수첩을 구입'해다가 지급약정 금액을 볼펜으로 적어준 데서 나타난 일명 '문방구어음!'

영업자가 받아 온 문방구 어음을 받은 출판사들은 현금화하기 위해 '동대문'을 찾아야 했다. 매월 말일이면 동대문의 대원서적이나 태양문고가 있는 서적도매 골목에서 출판사들은 '문방구 어음깡'을 해야했다. 그렇게 또 손해 보고 현금을 손에 쥔 출판사들은 그렇게라도 직원의 급여를 맞추거나 사무실 유지비를 충당해야 했다. 지금은 그 어음상 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이미 부도를 냈던 (주)송인서적도 언젠가부터는 자기가 발행한 어음을 책상만 바꾼 째 그 자리에서 '현금깡' 해주기 시작했다.

그나마 매월 20일 송인서적 지불일마다 어음을 받아 그 자리에서 현금깡을 해 현금을 들고 나온 출판사들은 피해가 별로 없다지만, 고액의 어음을 받은 업체들, 신의와 성실을 기반으로 책을 주고 어음을 받은 업체들은 크게 상처 입었다. 그리고 그 여파가 약속어음의 최종 도착지인 인쇄-제본업계로 이젠 퍼져 간 것이다.

인쇄소 J의 부도 징후는 현금흐름등급으로 볼 때 지난 2014년 이후 지속되어 왔다. 2014년 CR4, 2015년 CR4, 급기야 2016년 CR5로 주저앉았다. 이는 (주)송인서적의 부도 직전 현금흐름등급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출판인쇄업계의 경영상의 위기는 비단 J 인쇄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단행본 업계 빅5에 속하는 대형출판사 중 한 곳도 심히 우려스럽다. 수십억을 주고 판권을 수입해 출간한 주력 도서의 매출이, 2017년 원활한 현금흐름을 확보해 주지 못한다면, 그 대형출판사는 향후 매우 심각한 경영상의 위기를 겪게 될 가능성이 짙다.

대형출판사든, 중소1인출판사든, 대형인쇄소든, 중소형인쇄소든, 사업은 경영이고 경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과학적이어야 한다. 무작위적 희망경영과 감에 의존하는 기획경영은 결코 출판경영의 언어가 될 수 없다. 지난 1년간 수없이 만나온 출판계의 업체들, 수없이 들여다본 업체들의 '재무제표'에서 느낀 점이하나 있다면, 머지않아 엄청난 쓰나미가 다시 한번 출판계를 휩쓸고 지나갈 것이라는 예감일 뿐이다.

지금 출판계는 '각자의 이상'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 서로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낡은 것에 대하여 우리가 서로 침묵할 때, 남는 것은 공멸뿐이다. 출판계 경영자들에게 남는 것은 소중한 인생과 한정된 시간의 허송일지도 모른다. 건투를!

 

김형수

중소기업정책자금지원센터 경영컨설턴트

김형수 경영컨설턴트  info@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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