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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기념] 말에도 역사가 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7.10.09 11:07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추석 전에 전문서를 찾기 위해 지방의 서점에 주문을 넣었다. 명절 대목이어선가 책이 도착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 와중에 사장님과 통화 중에 이분이 뭔가 다른 분이라는 걸 직감했다.

수원의 문학전문 헌책방, ‘미르북’ 사장님이다. 오늘은 한글날이니 말뿌리만 다루자. 수원역에서 내려 무조건 지동의 목골놀이터만 찾으면 데려다준다고 해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에게 물으니 '목골'이 아니라 ‘못골’이라고 한다. 왜 못골인가 하고 물으니 그곳이 예전에 미나리꽝이라고 했다. 그러면 지동은 뭐요 하니 잘 모른단다. 못골 놀이터에서 사장을 만나 근처 칼국숫집에서 소주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은 지동池洞은 못골, 그러니까 ‘연못마을’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일제가 개악해서 오늘에 이른 동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수원水原이 물의 고을이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광교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광교저수지를 거쳐 흐르고 흘러 수원천으로, 아산만으로, 서해로 흘러 나가는데 수원이 그 발원지다. 이 수원을 본래는 ‘매홀’로 불러 왔었다. 고구려어로 물을 ‘매’라 하고, 홀은 ‘고을’을 뜻한다. 이 순수하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우리말을 당을 앞세워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가 수원이라는 한자말로 고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다 정조 때에 이르러 화성華城이라 불리게 되었고-'화성'은 효자로 이름 높은 정조와 깊은 관련이 있는 말이다.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는 수원으로 아버지 묘를 이장하고 덕으로 교화敎化한다는 중국고사의 ‘化’를 ‘華’로 바꾼 것이다. ‘화성’ 하면 연쇄살인사건이 연상될지 모르지만 본질과는 너무도 다른 얘기다. 아이러니한 현실이라니...

잘 알다시피, 정조는 이 곳, 화성을 매우 중시하였다. 수원이 남쪽에서 서울로 오는 길목이자 길지인데다 경제는 물론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꾀했던 정조가 이곳 수원을 신도시로 삼아 자신의 배후지로 삼게 된 것은 깊은 뜻이 있던 것이었다. 이런 화성이 다시 일제에 의해 수원으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우리는 해방 73년을 맞이하고도 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이런 수원에서 정신의 불을, 인문과학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있는 사장님이 자신이 경영하는 서점을 ‘미르북’이라 칭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 본다. ‘미르’는 물을, 용을, 은하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뭐 순혈주의를 고집하자는 게 아니다. 이렇게도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실용적인 우리말이 있는데 왜 굳이 한자를 갖다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언어기호는 정치 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미르를 널리 알려야 하고, ‘매홀’을 되찾아야 한다고 본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소명출판) 저자 

김상천 문예비평가  info@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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