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악스트를 위한 변명 - 장강명
[오피니언] 악스트를 위한 변명 - 장강명
  • 장강명 소설가
  • 승인 2016.02.2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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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독자로서 악스트 4호를 둘러싼 논란을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로워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악스트나 은행나무 측으로부터 어떤 요청도 없었음을 먼저 밝힙니다.

이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악스트의 변명을 짐작해서 대신 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악스트가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는, ‘악스트를 옹호하는 SF 팬도 있구나’라는 인상을 팬덤 밖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출판계, 문학계 사람들은 ‘역시 SF는 건드리면 안 될 물건이다, 한국 SF 작가 인터뷰는 가급적 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 역풍에 미약하나마 맞서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는 세 번째 이유는……, 마지막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은행나무, 듀나 작가님, 악스트, 알트SF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어 아주 객관적일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저는 악스트를 발행하는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책을 두 권 냈고 올해도 한 권이 더 나올 예정입니다(SF입니다). 은행나무는 유능한 편집자들이 있는 좋은 회사입니다. 조지 R. R. 마틴, 오쿠다 히데오, 정유정 작가님을 한국에 널리 알렸고, 배명훈 윤이형 정명섭 정세랑 작가님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은행나무가 문단권력이고 제가 이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듀나 작가님과는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 시절부터 알아왔습니다. 채팅방에서 또 게시판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지금도 어느 출판사를 통해 SF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중입니다. 저는 듀나 작가님의 책을 전부 읽었고, ‘SF 소설가 듀나’의 팬임을 여러 번 밝힌 바 있습니다. 영화평론가나 칼럼니스트, 트위터리안으로서의 듀나님에 대해서는 견해를 다소 달리 합니다.

악스트는 여느 문예지처럼 은행나무 외부 편집위원들이 만듭니다. 저는 그 편집위원들 중 두 분과 인사만 나눈 사이입니다. 악스트에는 제 인터뷰와 제 책에 대한 리뷰가 각각 길지 않게 실렸습니다. 악스트는 사실 제 취향은 아닌데, 그래도 그 발행 취지는 매우 지지합니다. 축구팬이 국가대표 야구팀을 응원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알트SF는 창간 때부터 쭉 읽었습니다. 저는 17년 전에 혼자서 ‘월간SF웹진’이라는 잡지를 1년 반 가량 운영했습니다. 그래서 더 관심과 애정이 갑니다. 알트SF도 저를 몇 차례 언급했습니다. 두어 번은 옛 월간SF웹진 운영과 관련해서, 한 번은 웹진 ‘거울’에 제가 쓴 SF 에세이 때문이었고, 마지막은 제가 ‘문장’ 웹진에 연재한 중편 SF 리뷰였습니다. 말투는 심술궂었지만 저를 존중하고 배려해준다고 느꼈습니다.

본론입니다. 사안을 쪼개서 ‘악스트를 위한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는 무례했나?

예,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대목에서 확실히 선을 넘었습니다. 질문자들이 제대로 예습하지 않은 티도 많이 납니다.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는 작품에 대해 묻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신상을 캐물었기 때문에 무례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무례했던 사항은 △질문으로 먼저 상대를 규정지은 뒤 변명의 형태로 답변을 들으려 했던 것 △상대의 작가적 성과와 전망을 근거 없이 재단하고 통보한 것 △상대의 지식수준을 계속 질문자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한 것 △준비 부족을 너무 무성의하게 드러낸 것 등입니다.

한편 악스트는 과거 커버스토리 인터뷰들에서도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낸다, 인터뷰 자체를 문학적 사건으로 만든다’는 방향이 있었던 것 같고, ‘소설가와 소설가의 대화’라는 자의식이 강해 보였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지만, 하나의 스타일로 고집할 만 합니다.

질문자들이 익명성에 집착한 것도 저는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듀나님 본인과도 관점이 다릅니다. 듀나님의 익명성은 문학적으로 흥미롭습니다. 단순한 기표(記標)냐 제2의 정체성이냐, 탈공간적인 기호가 20년 이상 시간이 흐르며 탈시간화까지 하는 문제를 당사자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등등 저도 궁금한 점들이 많습니다. 무리하자면 그런 지점들이 ‘문단 모임에 나온 적이 있는가’ ‘옛날 독자들은 당신 글 안 읽지 않나’ 등의 투박했던 질문에 조금 닿아 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악스트는 모욕하기 위해 듀나를 부른 것인가?

오히려 악스트는 반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전 호 커버스토리 주인공이었던 천명관, 박민규, 공지영 작가와 같은 반열로 듀나 작가를 대우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질문자가 너무 공손해서 이상해 보이는 대목도 꽤 있었습니다.

●악스트의 듀나 인터뷰는 한국 SF 독자를 모독했나?

한 개인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는 그 개인이 교황이나 대통령처럼 대표성을 지녔을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인종차별이나 젠더차별처럼, 어떤 집단의 정체성이 되는 개인의 특성을 공격했을 경우입니다.

이번 경우는 좀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듀나님은 한국 SF 독자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대표까지는 아니니까요. 오히려 대표 자리를 한사코 거부하는 인물입니다. 또 위에 적은 대로 악스트의 결례는, 대상이 SF 작가라는 사실과는 간접적으로만 관련이 있었다고 봅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습니다만, 과도한 동일시는 경계하고 싶습니다.

●알트SF의 악스트 비판은 적절했나?

지금 삭제된 부분은 야비했습니다. 인신공격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악스트와 알트SF는 결코 동일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알트SF의 악스트 사태 기사는 저작권법 위반인가?

아닌 것 같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인용이라고 넘어가기엔 그대로 옮긴 양이 너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은행나무는 알트SF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저작권 문제를 들고 나왔나?

가장 첨예한 부분입니다. 사실 은행나무의 숨은 의도야 제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은행나무 디지털콘텐츠 담당자가 알트SF에 ‘기사 중간 항목이 저작권 위반 같으니 문제되지 않게 수정해 달라’고 메일(ⓐ)을 보내자 알트SF는 이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그런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달라고 은행나무에 요구했습니다.

은행나무 담당자는 자신도 법적인 부분은 자세히 모르니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문의하겠다고 답했고(ⓑ), 알트SF는 그 답신도 공개했습니다. 은행나무 담당자가 저작권위원회의 회신을 알트SF에 보내자(ⓒ), 알트SF는 휴간을 발표했습니다. 알트SF는 휴간 공지와 함께 ⓒ번 메일만 대문에 공개했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저에게는 처음부터 ⓐ번 메일이 그냥 출판사의 통상 업무로 보였습니다. 책 스캔본이나 타이핑본이 돌아다니지 않는지, 모바일 유료연재 분량이 유출되지 않았는지 등을 체크하고, 문제 소지가 있는 자료에 삭제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작가들에 대한 출판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실무 담당자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제가 최근에 은행나무가 아닌 다른 출판사와 맺은 출간계약서에는 ‘전자적 사용’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인세가 수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요 몇 년 새 온라인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일부 사전 연재, 발췌 연재, 발췌 판매, 분책 판매, 일러스트와 결합 연재 등등 굉장히 경우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 글이 그렇게 전자적으로 사용되는 데 대한 정산 관리 작업을 출판사가 해줄 거라 믿습니다. 무단 유출에 대한 감시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한국 출판사들은 다 일손이 모자라는 곳이니, 그런 업무는 담당으로 맡은 사람이 짬날 때, 수십 수백 권에 대해 몰아서 기계적으로 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은행나무의 메일에 대해 알트SF가 인용 부분만 요약하는 형태로 대응했더라면 이 문제는 해결됐을 텐데, 그랬더라면 알트SF 입장에서는 굴복하는 기분이 들었을 테죠. 한편으로는 알트SF가 자기 말대로 인용에 문제가 없다고 믿고 그대로 버텼어도 괜찮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인용이 정당하다고 믿는 이유를 자세히 주장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으면 편집부와 연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트SF는 셋 다 하지 않고 메일 내용을 공개하면서 법적 근거를 요구했는데, 그러자 이후에는 퇴로가 없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저작권 문제를 해소했더라도 명예훼손 문제로 알트SF를 압박하려 했을까?

알트SF는 그런 식으로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며 휴간을 선언합니다. 역시 은행나무가 그럴 계획이었는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를 비판하는 사람은 명예훼손 문제로 시달릴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살아 있는 사람을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그의 속마음을 ‘누나, 저 정신 잠깐 돌아왔어염’ 등으로 묘사할 때에는 그런 부담이 강하게 따릅니다.

1인 웹진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 타인이 후지고 구리고 뻔뻔하고 무식하다고 내가 굳게 믿는다고 해서 면책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내가 사랑하는 장르를 그가 무시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중년 남성, 문단 작가와 같은 불특정 다수를 조롱할 때와, 살과 피를 가진 개인을 공격할 때의 언어는 달라야 합니다.

알트SF 기사를 보면서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악스트의 인터뷰가 문단의 수준과 태도를 드러냈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알트SF 기사는 한국 SF 독자들의 수준과 태도를 드러낸 셈이 됩니다.

한국 SF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부끄러웠고…… 뭐라도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세 번째 이유입니다.

뚜렷한 의도가 있는 글이다 보니, 비판의 균형이 맞지 않았습니다.

알트SF의 성실함, 해박함, 재치, 날카로움을 높이 사고, 재미있는 매체를 운영해주어 고맙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평가 없이 야속한 질타만 올리게 돼 미안합니다.

마음고생이 크시겠지요. 잘 추스르시고 꼭 되돌아오시길 빌겠습니다. 저는 알트SF 없는 세상보다 알트SF 있는 세상이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강명.

 

 

소설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약 11년간 동아일보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 활동을 했으며,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문학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호모도미난스』로 SF 어워드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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