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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기획칼럼] 미당 서정주 논란 제2부 1장,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은 과연 별개인가미당 서정주, 그는 을마나 진실한 시인이었나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7.10.24 16:07

신화는 공모의 산물이다

제1부(클릭)에서 나는 미당 신화가 하나의 과잉-결정된 신화임을, 따라서 이를 탈신화화 해야 할 필요성을 전제하고 그가 시인부락의 족장이라는 과분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사실은 친일행위와 독재 미화 등 노예도덕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 온 기회주의자였음을 애써 설파하였다. 그러면서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미당 신화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괴물엘리트들의 그악한 논리 때문임을 암시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문학예술계 괴물엘리트들의 핵심 논리가 무엇인가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

저들이 곤경에 부딪치고 수세에 몰릴 때마다 내세우는 논리는 다름 아닌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은 별개다A life of writer and his works is another’는 거다. 그러면 이게 무슨 마법의 효과라도 있는 양 모두들 정신이 마비되고 아득해지면서 나의 논리가 궁색해진 순간을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여기, '미당 없는 문학사 상상하기 어려워-미학적 성취, 삶의 흠결 함께 봐야 한다'는 이영광의 언설(2017년 9월 16일 중앙일보 ‘책 속으로’)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변증법이자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고 볼 수 있을 이 말 또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은 별개임을 전제하고 있다. 별개, 별개... 이는 분명 부르주아 개인주의의 망탈리테라고 나는 보고 있지만 아무튼 이걸 가지고 좀 논의를 해 보자. 

간단하게 말해서, 문학예술계 괴물엘리트들의 논리는 우리는 한 인간을 평가할 때, 작품은 작품대로, 생애는 생애대로 보아야 한다는 거다. 참으로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이영광의 말은 미학적 성취(작품)로만 그 사람을 보아서도 안 된다면, 역으로 삶의 흠결만으로 작품을 보아서도 안 된다는 논리다. 이런 ‘교묘한’ 논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그의 생애를 가지고 자꾸 그의 미학적 성취를 매도하지 말라는 것으로, 작품이 좋으니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미당의 미학적 성취를 논하기 전에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은 과연 별개인가 논박할 필요를 느낀다. 도대체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런 논리가 신화화 되어 득세하고 재생산, 유포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런 신화는 어디까지나 공모-‘共謀’란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좋지 못한 일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의 산물임을 염두하고 엄격하게 논증해 보자. 

논리의 모래무덤에 갇히지 않도록 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를 해 보자. 나는 문예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시를, 그의 시가 갖는 미학적 성취를 부정하지 않는다. 가령, 그의 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산홍映山紅'을 먼저 보자.

영산홍 꽃 잎에는
山이 어리고

山자락에 낮잠 든
슬푼 小室宅

小室宅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山 넘어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자, 여기서 서정주의 페르소나persona인 ‘영산홍’의 시적 화자는 소실댁으로 대변되는 소수 약자들에 대해 애틋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즉 진달래도 못 되고 철쭉도 못 된, 다시 말해 정부도 못 되고 그렇다고 후실도 못 된 어정쩡한 첩실로 상징되는 소실댁을 영산홍이라는 이미지로 가히 절창에 가까운 솜씨와 기교로써 음지陰地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애절한 맴을 잘도 형상화시켜 놓았다. 어째서 절창인가.

‘영산홍-슬푼 소실댁-놋요강-보름사리 때-우는 갈매기’

로 이어지는 자유연상기법에 따른 시어의, 오브제의, 일상 세목들의 절묘한 배치와 조합을 통해 이 시는 과학이 흉내 내지 못할 유기적 진실의 어떠함을 그만의 녹록치 않은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이미지가 상호 연계되면서 불러일으키는 도저한 시적 상상의 세계는 거의 마술적인 매력에 값하는 솜씨라 칭송해도 손색이 없다.

참 기맥히지 않은가. 영산홍의, 슬픈 소실댁의, 찌그러진 인생의 반편이 설움을 그는 참 절묘하게 형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슬픈 소실댁이라니...그러고 보니 그는 과연 한국 서정시의 절창 아니었던가. 이 빠진 막사발 같은 전라도 탁배기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이런 낮은 자들에 대한 경사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한낮 시적 기교와 오락으로 그치고 말았다. 즉 그의 작품은 미적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실존적 개인이자 사회적 책임을 진 시인으로 자신의 개인적이고 실존적 인식을 객화 시키는 대자적 의식으로의 성숙한 전환을 보여주지 모하고 다만 자신의 체험 수준에 머물고 말았을 뿐이다. 즉 시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식으로 기능하였을 뿐이지 사회의 공기와 꿈이 되지 모하고 말았다.

과연 그럴까, 다음 시와 비교해 보자.

그녀는 아메리카 백인 미녀들처럼

금발과 푸른 눈을 갖고 있지 않았다.

폐계를 닮은 닭털 같은 머리에다

멍한 회색빛 눈동자를 지녔다.

더구나 이미 늙어버린 그녀는

마흔 중반도 훌쩍 넘어 뵈는 얼굴이다.

염색공장이 밀집한 능안공단 아랫말

빈 축사를 개조한 집으로 세를 들어온 그녀는

큰 가방 두 개를 끌고 나타날 때부터 실업자였다.

봄, 여름이 다 가도록 일 나갈 생각은 않고

축사 앞 평상에서 소주를 마셨다.

동네 남자들만 보면 그녀는 술을 사 달랬다.

술만 사 주면 언제든지 다리를 벌린다고 했다.

그녀의 먼 고향은 푸르고 넓은 평원이었을까.

크림반도 눈 내리는 마을 얼음의 산맥이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녹슨 핵탄두가 뇌관을 숨긴

은밀한 기지 부근의 철조망이었을까

그 어떤 낭만도 쓰라린 기억도

그녀를 통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회색빛 동공만큼이나 막막했던 사람.

술에 취한 율리아, 아는 것이라곤 그녀의 이름뿐

축사 앞 은행나무 단풍이 지던 땐가

만삭의 배를 안고 그녀는 축사에서 쫓겨났다.

                                                   - 임성용,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자’

이 시를 두고 우리는 ‘영산홍’처럼 절창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러니 미학적 성취를 보인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미지에 공을 들인 것도 아니고, 기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소수자의 인생을 담담하게 서술한 이 시에서 ‘영산홍’과는 다른 정서적 케미(*‘케미’는 Chemistry를 줄여서 하는 입말로 보통 화학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작품을 읽고 느끼게 되는 특별한 정서적 화학반응을 말한다) 느낀다. 아니, 정서적 케미 이상의 격한 페이소스를 추체험한다. 그것은 곧 불편한 진실로서의 사회적 현실의 환기다. 즉 ‘영산홍’에서 연상되는 소실댁이 개별적인 영상에 머물고 만다면 여기,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자’는 개별적임과 동시에 전형적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다. 이건 단순하게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책임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영산홍’에서는 왜 도덕적 책임이 덜 느껴지는가. 도덕의 핵심은 사회성인데, ‘영산홍’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개인적 체험이요,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자’에게서 공유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체험이 세계의 자아화에 가깝다면, 사회적 인식은 세계의 개념화에 이른다. 칸트의 유명한 명제-“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순수이성비판](아카넷)처럼, 시가 단순하게 개인적 체험 수준에 그치고 만다면, 맹목이 되고 만다. 구체적인 이미지(내용)의 대표성(개념)을 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자’는 우리가 처한 시대 현실을 참으로 진실되게 반영하고 있는 서사시다. ‘한류The Korea wave’라는 코리안 드림이 하나의 허구로서 약자들을 등쳐먹는 허상의 거미줄이라는 거, 이 허상의 거미줄의 희생이 된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자야말로 일제가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고 데려갔던 조선의 성노예와 무엇이 다른가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 모두들 ‘필리핀 영계와 러시아 백계’를 먹겠다고 덤벼드는 정글 한복판, 그녀는 도대체 몸뚱이밖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프로레타리아 국제 노동자로 예술흥행비자, E-6 사증을 발급받은 엄연한 예술인으로 양 팔고 땅 팔아 먼 이국 땅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말마라. 지금도 강남이나 영등포 역전 어디 코리언 펍, 사회의 음부인 주점에 앉아 있으면 주스를 사달라고 매달리는 율리아, 너는 무엇을 가졌는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품이 되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자본론의 제1장 제1절의 성스러운 구절 그 어떤 것도 그녀는 갖지 못했다. 뭐든 팔려야만 가치가 있다는 물신적 신념이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에서-바로 여기에 현 단계 자본주의 문화가 처한 ‘갈보적’ 성격이 있다-더구나 백색신화white mythology가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금발도 아니고 푸른 눈도 갖지 모한 너DU, 그리하여 몸조차 팔 수 없는 율리아는 결국 갈보도 되지 못하고 쫓겨났다. 

보라, 갈수록 깡패자본주의gangster's capitalism, 매춘자본주의가 되어가는 이 시대, 여기,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몸조차 팔 수 없는 국제 미아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지...디아스포라의 비극을 진실하게 형상화한 임성용의 시가 보여준 ‘원초적 사실주의crude realism’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그리하여 여기, 오이디푸스Oedipus처럼 자기 눈을 아프게 찌르고 있는 임성용의 시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가 단순히 오락도 아니고 장식도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이다. 시는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양심의 법정임을 예증하고 있다. 그러나 시가 그 무엇을 위한 장식이고 오락이라면-이는 사실 고대 이래 노예수사학의, 모방론, 재도론의 핵심이기도 하다-시는 귀족의 장신구로, 권력의 도구로 전락되고 말뿐이다. 그것을 우리는 안타깝게도 미당에게서 보고 있는 것이다.

임성용을 보라, 시는 당대의 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미당, 그는 참으로 국가의 도구적 시인이었다. ‘61년, 4,19정권을 무력으로 짓밟은 정치 쿠테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그는 시집 [신라초](1961. 정음사)를 들고 나왔다. 전라도 탁배기가 왜 갑자기 영남의 뿌리인 신라의 달밤에 취했단 말인가. 그는 참으로 빠른 시인이었다. 그러고 보면 얼마나 이쁜가. 그런 그에게 ‘제1회 5.16 민족 예술상’이 무에 아까울 것인가. 그런 그가 또 시류에 따라 발빠르게 갖다 바친 게 베트남 파병을 선동하는 시였다. 이건 완존 데자뷰다. 어디선가 본 장면, ‘마쓰이 오장 송가’의 슬픈 코스프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인의 종 노릇에서 풀리어 나던 때
흘린 눈물 질척거리던 예순 살짜리들은
인제는 거의 다 귀신 되어
어느 골목에서도 보이지 않고
그날 미소 양군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역으로 몰려가던 이, 삼, 사십대
인제는 거의 늙어
낡은 파나마를 머리에 얹고
파고다 공원에서 환갑을 맞이하고

그날 어머니의 젖부리에 매어달려
해방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애기들
인제 자라서
무직과 프래카드와 파고다 공원과 귀신 노릇을 배우고

탈색과 표백은 아직 덜 되었는가?
백의동포여

평양 같은 언저리
납치되어 산채로 빨랫줄에 말리어지는
기화하는 수만 미이라의 소리 듣는다
이 표백과 탈색은 언제 끝나는가?

새로 나갈 길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베트남뿐이다
베트남뿐이다


아직도 전향하지 않고 뭐하는가. 우리가 살 길은 베트남으로 가서 죽는 길뿐이다. 머 이런 얘기다.

맹목적 찬가다. 시인 중의 시인 호메로스가 눈 먼 맹인이었다는데, 이는 시인이 고래로 전통의 재현represenation을, 모방을 담당한 계층이지 창조를 담당한 계층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또한 시인이 신전의 주랑 뒤에서 권력자와 공모하였다는 숱한 사례를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볼 수 있고, 그런 시인의 위상이 어떤지는 니체를 통해 서두에서 이미 확인되었거니와 서정주의 내력 또한 참으로 오랜 전통임을 확인하는 낯 뜨거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체제의 대결의 장인 베트남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6.25의 빚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확전으로 치달은 베트남 전쟁의 성격이 항불독립투쟁의 연장이었다는 거, 그러니까 베트남전쟁은 기본적으로 베트남 인민들의 민족해방전쟁(이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이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상식이 되었다. 

이렇게 국가의 도구적 시인이 젊은이들을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대고 있던 시기, 우리의 시인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2장 이어서 

늘샘 김상천 

작가,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소명출판) 저자

 

 

 

김상천 문예비평가  info@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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