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못(MOT) - 서울은 흐림(Feat. 한희정)
(3) 못(MOT) - 서울은 흐림(Feat. 한희정)
  • 김병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2.2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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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는 이 곡에서 나는 눈물을 생각한다. 우리의 얼굴에서 눈물은 대체로 우리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눈물이 스스로 떨어질 때는 오로지 얼굴을 숙였을 때 뿐이다. 우리보다 낮은 존재를 바라볼 때, 눈물은 스스로 자유 낙하한다. 승전기념탑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베를린의 천사에게서 나는 이따금 눈물의 은유를 읽는다. 그의 목덜미에서 눈물의 무게를 읽는다. 아니, 눈물이 아니라 눈물이 쏟아지기 직전의, 순간을 읽는다.

못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못은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절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로 평가하는 일은 거부 표시의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안으며 그들의 세계, 그들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도망간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달라서 못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러다 이 노래가 눈에 들어왔다. 단순하지만 많은 것을 건드리며 훑고 지나가는 이 곡이.

명사형 문장의 반복적인 진술 속에서 ‘나’는 좁혀지고 구체적이 되며, 인간적이 된다.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시간’이 부여 되고, ‘시간’ 이 나눈 ‘추억’에서 ‘그대’라는 호칭을 건져낸다. 한희정의 목소리는 이이언의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를 끌어낸다. 여기서의 그들은 그저 같은 구(句)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같은 톤일 수 있어도 같은 말일 수 있어도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같은 목소리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규칙’은 있다. 명사형문장으로 된 가사는 끝음인 ‘ㅁ’을 아낀다. ‘미음’을 아끼고 모든 것을 반복한다. 그렇게 ‘미음’을오래 음미한다. ‘미움’이 ‘미음’과 같은 식감을 가질 때까지 곱씹는다. ‘마음’으로 뻗어나갈 수 없어서 ‘미음’이 되고 만 불가능성을 돌이켜본다.

그렇게 서로의 문을, 마음을 닫되, 서로의 규칙만을 남긴다. 이해하지 않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공간을 존중하며 같은 멜로디를 부른다. 불분명한 남자의 목소리, 나른한 여자의 목소리로. 그 둘이 만나서 아무 것도 없다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들이 지닌 거리감을 엿볼 수 있다. 둘은 실로 만날 수 없는 목소리를 지닌 것이다. 나는 이 거리감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거리감이라고 생각한다. 바르트의 말마따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사랑의 단상』)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다. 이 곡의 후반에 등장하는 노이즈. LP판 위로 바늘이 얹힐 때 흐르는 노이즈가 다음 곡까지 연결된다. 그렇게 그들은 도망간다. 직전은 사라졌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매달리는 세상의 모든 포옹들을 생각한다. 서로의 어깨에 스미는 타인의 체온들을 생각한다. 흐린 날이, 우울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사람이 사랑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단 한 번 쉼표 같은 절망을 흐느껴야 한다. 괴물들은 그런 쉼표마저도 쉬지 말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라고만 강요한다. 나는 ‘그것’들을 사람으로 부를 자신이 없다.

구름이 짙다. 비가 쏟아지기 직전이다. 천사의 목덜미가 흑백영화의 그것처럼, 영원처럼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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