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콜리나스,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진행한 특강 “혼돈의 세계를 뚫고 가는 시 – 과거” 성료
안토니오 콜리나스,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진행한 특강 “혼돈의 세계를 뚫고 가는 시 – 과거” 성료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7.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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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1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이 개최됐다. 페스티벌은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꾸며졌으며 특히 지난 2일에는 외국의 거장들을 초청한 “세계거장 특별강연 : 낮은 목소리 큰 질문” 이 진행되었다. 

그중 첫 강연은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콜리나스를 초청한 “혼돈의 세계를 뚫고 가는 시 – 과거” 였다. 행사의 사회는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과 “내일을 여는 집” 등을 펴낸 방현석 소설가가 맡았으며 패널로 인도네시아의 아유 우타미, 이택광 평론가가 참여했다.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시, 소설, 산문, 번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페인 시인이다. 1982년 스페인 국가 시인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 “강의 그림자”, “35년 동안의 시” 와 소설 “남쪽으로 보낸 1년”, 산문집 “시학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단어”, “금강산” 등을 펴냈다. 

<안토니오 콜리나스. 사진 = 박도형 기자>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뿌리 없이는 시도 시인도 존재할 수 없다” 고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존재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 지만 “실상은 그 자유에 침범하며 뺏어가는 경향” 이 있다고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말했다. 현대의 얄팍한 시간과 이론은 우리를 방향성이 없는 “카오스의 세계” 로 인도한다는 것. 

이 카오스의 세계에 대해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본질적인 문학과 문화의 종말, 살아있는 문화에 대한 삶의 실종, 지나간 지식에 대한 이해, 강요된 새로움 앞에 굴복하는 것” 이라고 설명하며 “소위 탈 진실이라 이야기하는 것” 이라 정의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본질적인 말에 대한 지식과 휴머니즘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게 안토니오 콜리나스의 의견이다. 이런 고민들이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시켜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 때문에 “획일성과 가벼움이 모든 것을 침범하고 시를 어렵고 무용한 비주류의 한 장르로 보는 트렌드야 말로 가장 거짓된 모습” 이라고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지적했다.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시가 우리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순간들을 열거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서정시와 당왕조의 시, 이탈리아 르네상스, 유럽의 본질적 낭만주의, 20세기와 함께 찾아온 아방가르드 문학. 니케와 같은 일부 자주적 시인들의 등장. 이런 사례들을 예로 들며 안노티오 콜로나스는 “시는 사회적으로 거대한 영향을 가진, 치유하고 구원하는 말” 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시인이라면 유년기에 하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외국의 한 시인의 말을 인용하여 이것이 “삶 속에서 만나는 시구가 지닌 리듬의 목소리” 라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카오스를 해체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분명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 때문에 인스턴트 이미지나 텍스트가 가진 카오스적 성질을 극복하고 문학의 뿌리를 읽고 배우는 과정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강조했다. 

<왼쪽부터 차례로 방현석 소설가, 아유 우타미, 안토니오 콜리나스. 사진 = 박도형 기자>

더해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이 목소리가 “유년기의 시인을 말과의 약속으로 이끌어나간다” 며 “특히 원시사회에서는 다른 지식 분야에서 더욱 알고자 하는 염원에 대한 대답” 으로서 작용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인간은 시를 만들어 신성을 찬양, 혹은 불평하고 과학, 노동을 위해서도 활용했다는 것. 

이런 시문학은 예술과 과학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설명했다. 단순히 미적인 감상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인간이 살면서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표현하는 단계” 로 올라가 다채로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형태가 돼야 한다는 것.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옥타비오스” 작가의 “우리는 왜 시로부터 벗어나야 하는가, 우리는 왜 위대한 시를 카타콤에 가둬야 하는가”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이야기했다. 물질만능주의 앞에 시가 영원히 끝날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 

하지만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시가 가지고 있는 치유와 구원력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것을 입술 안에서 침묵하고 포기할 이유가 없다” 며 “시의 본질적인 의미를 회복” 하여 시를 부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인들이 테마와 기준 미학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이 시대의 희망적인 지표” 라고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이야기했다. 

그러며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시는 인간에게 있어 불가분의 것이며 우리를 부양하는 식량 혹은 호흡과도 같은 것” 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때문에 시를 읽음으로서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며, 오늘날이 과거의 시들이 가진 의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라는 것. 

때문에 고전 작가들의 시를 깊이 평가하고 진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게 안토니오 콜리나스의 의견이다. 특히 한국의 만해 한용운과 고은 시인은 “자유로우면서 큰 상징성을 풍부하게 담아, 위대하고 본질적인 시의 표현” 을 보여주고 있다고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이야기했다. 

이런 과거의 시를 받아들이며 시가 “흑백사진들처럼 현실을 복사하는 임무만이 아닌 현실을 극복, 변형하고 새로운 감정과 감동을 자극하는 기재가 되어야 한다” 고 말하며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강연을 마쳤다. 

<아유 우타미. 사진 = 박도형 기자>

이어 패널들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패널로는 인도네시아의 대표 작가인 아유 우타미와 이택광 평론가가 참여했다. 

아유 우타미는 과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수할레트 언론탄압에 맞서 저널리스트 연맹을 만들어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고, 1980년 익명으로 “흑서” 라는 저항 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의 문법과 사회 윤리에 대단한 충격을 주며 소설 상을 수상하였다. 

아유 우타미는 “인도네시아는 시인과 작가들이 많이 언급하는 나라가 아니” 라며 “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경우 배재되어있다” 고 이야기했다. 이렇듯 세계의 언어는 무엇인가를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며 아유 우타미는 “맨이라는 영단어가 인간을 포함하지만 여성을 배제시키는 것도 같은 예” 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시가 여전히 언어로 쓰여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아유 우타미는 말했다. 언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빠트리게 된다는 것. 이런 잠재적인 소외와 고의적인 배제가 발생할 경우 아유 우타미는 “담론을 해체시키고 언급되지 않는 것에 대해 정당하게 의심을 가져야 한다” 고 주장했다. 

또한 아유 우타미는 “자본주의로 인해 자유 경쟁이 이루어지며 시는 더 시끄러워질 것” 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래야만 시가 관심을 끌고 읽힐 수 있기에, 음악이나 코미디와 경쟁하는 상황까지 온다는 것. 때문에 아유 우타미는 “진정한 시가 얼마만큼 본질적인 인간성에서 자라날 수 있는지” 를 생각하고 시를 이러한 대중성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며 아유 우타미는 “동서양의 만남의 축제의 장에서 시를 다룰 때 행위 중심의 시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고 이야기했다. 덧붙여 “단순히 낭송되는 시보다 정글 속 원숭이가 소리 지르는 것과 같은 행위를 선호한다” 고 말했다. 이는 행위 중심의 시가 더 원시적이고 동양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아유 우타미는 지적했다. 

아유 우타미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언어는 “배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시가 보편화되고 대중화된다면 권력의 남용을 생각할 수 있다” 고 전했다. 때문에 “그 권력과 결합하게 될 경우 배제된 자들이 의도된 소외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끝으로 아유 우타미는 “시를 쓰는 예술가들은 영적이며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물질성은 제한 제약의 과정으로 형성되기에 이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제약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영적인 의미에서 개방시켜야 한다는 것. 

<이택광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택광 평론가는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때 정확한 개념이 우연성” 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 “우연성의 문제를 필연성의 법칙 속에서 설명하려는 게 바로 철학자” 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우리는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필연성의 그물 안에 갇혀, 그물 밖에 있는 회의나 무관심, 냉대, 냉소 같은 것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살고 있다는 것. 

그러며 이택광 평론가는 “고은 선생님의 말씀 중 너희가 시인을 가둘 수 있어도 시를 가둘 수는 없다” 고 말했다며 “생각은 가둘 수 없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택광 평론가는 “시는 산문보다 풍부한 언어를 가졌다” 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의 언어는 기술적 언어와 소통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 

두 패널의 발언이 끝나고, 이어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두 패널의 말에 의견을 덧붙였다. 

특히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여성에 관한 아유 우타미의 의견에 대해 “오랜 역사에서 여성은 단순히 여성 개체가 아닌 인류의 사랑을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며 여성이 절대 소외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며 안토니오 콜리나스는 “우리 혼돈의 세계에서 시가 정말 해야 하는 역할은 인간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것” 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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