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우리 사회와 독자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실험적 작품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
구효서, “우리 사회와 독자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실험적 작품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7.11.21 01:13
  • 댓글 0
  • 조회수 296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13일 고양시 일산구에 위치한 “고양아람누리도서관” 에서는 “문학이 꽃 피운 예술”을 주제로 한 “예술인문학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본 행사는 오는 24일까지 이어지며 공개특강과 토크 앤 라이브, 말거는 극장, 미술관 콘서트, 예술인문학 동호회 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저자와의 만남 : 소설가 구효서, 나의 소설 이야기” 는 이런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행사의 사회는 이순원 소설가가 맡았으며 많은 독자들이 참여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순원 소설가(좌)와 구효서 소설가(우). 사진 = 육준수 기자>

구효서 소설가는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마디” 가 당선되며 데뷔하였다. 창작집으로는 “노을은 다시 뜨는가” 와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전장의 겨울” 과 “슬픈 바다”, “늪을 건너는 법” 등을 펴냈다. 최근에는 소설 “풍경소리” 로 2017년 제4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쓸 것인가, 무엇을 쓸 것인가. 

구효서 소설가는 데뷔할 당시인 80년대의 문학은 운동권 문학, 참여 문학, 계급 문학 혹은 노동해방 문학 등으로 일컬어졌다고 전했다.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은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것. 

그러며 구효서 소설가는 “사회적 현상과 관련 없는 소설을 쓰면 ‘편한 소리 한다’ 는 비판을 받던 때에 데뷔한 셈” 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구십 년대가 들어서며 소련은 붕괴되었고, 팔십 년대 문학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들이 나왔다고 구효서 소설가는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가들은 “무엇을 쓸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구효서 소설가는 말했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작가란 뭐냐, 소설가가 쓰는 소설이란 무엇이냐” 에 대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 

<구효서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구효서 소설가는 이때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다양한 톤을 가진 문학을 시도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시체 검안서나 출판계약서, 보고서, 비밀문서 등의 형식을 띤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는 것. 이때 발표한 소설집이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이다. 그 과정에서 구효서 소설가는 대학생들로부터 재미있다는 평을 들은 한편 이게 소설이냐는 공격 역시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이순원 소설가는 “이게 소설이냐” 는 말이 굉장히 예의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며 당시 구효서 소설가는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문자를 써서 작가가 소설이라고 하면 소설이고 수필이라고 하면 수필이다” 는 답변을 해 화제가 됐었다고 덧붙였다. 

구효서 소설가는 이에 대해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쓴 소설인데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자꾸 시비를 거니 짜증이 난 것” 이라고 말했다. 설명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설명을 하고자 했으나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인 독자와는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아 화가 났다는 것. 

구효서 소설가는 문서의 형태를 띤 독특한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를 엮으며 체제 안에 존재하는 미시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을 뽑는 방법이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며 사람들이 독재가 사라졌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거대권력이 아닌 미시권력이 각종 문건의 형태로 남아 우리의 삶 곁에 있음을 지적하려 했다는 것. 

하지만 구효서 소설가는 계속된 저항에 부딪쳐 결국 실험적 작품을 쓰지 못하고 “곱진한 이야기” 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니 잘 쓴다는 칭찬을 다시금 받게 됐다는 것. 구효서 소설가는 “우리 사회와 독자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실험적 작품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 이라고 지적했다. 

풍경소리 

이어 이순원 소설가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풍경소리” 착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구효서 소설가는 이 질문에 답변하기에 앞서 “독자의 모든 독서는 온당” 하니 “제 의도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해석은 아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예컨대 소설 “풍경소리” 를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힐링 소설” 로 읽었다면 그 독자에게는 그것이 옳은 해석이라는 것이다. 

구효서 소설가는 “우리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고 이야기했다. 남녀, 흑백, 좌익우익, 진보보수 등으로 양극화되어 서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 하지만 구효서 소설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느 편을 못 들고 행동을 하지 못 한다” 고 말했다. 그러며 구효서 소설가는 “이런 사람이 바로 윤동주” 라고 이야기했다. 윤동주 시인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구효서 소설가는 “우리는 오감으로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려 하며,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세계가 왜곡되고 있는지 모른다” 며 “고작 다섯 가지의 방법으로는 세계를 판단할 수 없다” 고 말했다. 때문에 구효서 소설가는 “가소롭고 보잘 것 없는 인식의 세계”에서 벗어난 세계를 그렸다고 전했다. 

그래서 구효서 소설가는 “이런 주관과 객관을 지워버리면 진짜 세계가 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소설 속에서 주승과 객을 잠재운 것이라 밝혔다. 모두가 깨어있을 때의 풍경소리와 모두가 잠들어있을 때의 풍경소리가 지닌 차이점을 묘사하고 싶었다는 것. 

이런 시점에서 봤을 때 소설 “풍경소리” 를 힐링 소설이라 부르긴 어렵다고 구효서 소설가는 말했다.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는 구효서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행사는 많은 독자들의 관심 속에서 성료되었다. 한편 구효서 소설가는 자신의 책을 가져온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