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종군문학" 의 스토리텔링 문화자원 개발 가능성을 논하다
"대구 종군문학" 의 스토리텔링 문화자원 개발 가능성을 논하다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7.11.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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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18일 한국교통대학교 충주캠퍼스에서 진행된 한국문예창작학회 제33회 정기학술세미나에서 강민희 대구한의대 교수는 “지역문화자원으로서의 중군문학과 스토리텔링 가능성 검토” 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행사를 시작하며 강민희 교수는 “대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문화와 문학의 형성 및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지역” 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자 중앙과 지방에서 각각 결성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가 대구지대에 합류하여 “전시문단의 요지” 로 기능하며 발전했다는 것. 

그렇기에 “대구에서 종군문학은 논외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가 있다” 는 게 강민희 교수의 의견이다. 하지만 종군문인과 그들의 작품은 대구문학의 개성을 훼손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강민희 교수는 이런 종군문학은 대구시의 “유효한 문학자원” 이며 이 가치를 활용할 수 있다면 대구문화자산을 풍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며 강민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구 “종군문학” 의 “스토리텔링” 가능성을 제시했다. 

<강민희 대구한의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종군문학의 문화공간 

강민희 교수는 종군문학과 관련된 대구의 문화공간들을 소개했다. 이런 공간들에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얽혀있다는 것. 강민희 교수가 제시한 문화공간은 크게 서울 함락 직후와 1.4후퇴 이후로 분류된다. 

서울 함락 직후의 문화공간은 “문화극장”, “민경관”, “감나무집”, “상고예술학원” 이다. “문화극장” 은 6.25 전쟁으로 인해 피난 온 예술가들이 모인 공간이며 “문총구국대” 경북지대의 결성이 이뤄진 곳이다. “만경관” 에서는 전시 문화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감나무집” 에서는 8.15 기념을 위해 펴낸 “전선시첩” 이 나온 곳이다. 또한 “상고예술학원” 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예술 전문교육기관으로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학생들을 양성했다.. 

1.4 후퇴 후의 문화공간으로는 “공군홀” 과 “대구극립극장”, “자유극장”, “아담다방”, “영남일보사” 이 있다. “공군홀” 은 ‘공군종군문인단’ 단원들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아담다방” 은 ‘육군종군작가단’을 결성한 곳이며 “영남일보사” 는 이 작가단의 사무실로 기능했다. 또한 “대구극립극장” 과 “자유극장” 은 공군과 육군의 종군문인들이 연극을 상영했던 곳이다. 

종군문학 출판물 

이어 강민희 교수는 종군문인들이 남긴 출판물을 언급했다. 대구 종군작가들은 다양한 유형의 출판물을 남겼으며 이것이 문화자원으로서 유용하다는 것. 그들이 남긴 출판물로는 “전선문학” 과 “전선시첩”, “창공”, “코메드” 등의 문예지와 동인지 “시와 시론” 등이 있다. 강민희 교수는 이런 작품들에는 목적성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비교적 작품성이 우수하고 내용적으로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음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선문학” 의 경우, 전쟁과 문학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강민희 교수는 이야기했다. 특히 수록된 수필이나 수감을 보면 “권위적 시선에서 벗어나 순수하지 않은, 통제되지 않은 감정” 들이 담긴 자유로운 글들이 다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선문학” 에는 타락한 후방에 대한 실망과 전쟁의 무용성,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후방 사람들의 마음 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강민희 교수는 이런 “종군문인들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차” 가 “문학이 전시체제의 통제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독립적 위상” 을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당시 종군문인들이 전시체제의 이념적 요구에 순응하면서도 현실과 문학의 거리를 확보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대와 현재 종군문학의 현실 

당대의 대구에는 가난으로 인한 고통, 절망 등의 감정이 팽배했다고 강민희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대구문인들은 피난문인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잘 맞이했다는 것. 때문에 최정희와 고은이 대구를 “정든 곳”, “괴롭고 즐거웠던 곳” 으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종군문인들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강민희 교수는 이야기했다. 군내에서는 “식객” 이나 “걸인” 대접을 하며 예술을 유린하려는 자로 취급했고, “종군작가단” 은 그 위치가 애매해 군에서 지급하는 식량 배급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는 것. 

강민희 교수는 이렇듯 전쟁문학은 대구문학과 문화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정작 대구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대구 문학의 번성은 “중앙 중심의 문단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동한 것” 에 불과하다고 여긴다는 것. 

하지만 이런 종군문학이 “당시 대구문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게 강민희 교수의 의견이다. 문학사가 필연적으로 당면했을 문학공백기를 전시상황이라는 특이점으로 극복했을 뿐더러, 전쟁문학이라는 독특한 영역의 문학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이를 연구하고 발전시켜 종군문학을 대구문화의 지역문화자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민희 교수는 강변했다. 

한편 강민희 교수는 현재 한국 문학사의 근간은 이른바 “중앙” 중심의 문학자원이 이루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로인해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온전하게 그리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문학의 입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강민희 교수는 거시적이고 일반적인 문학의 담론뿐만 아니라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 역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지역문학이 고유한 가치를 온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고, 대구의 경우 종군문학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자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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