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콤한 노래” 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와의 만남”, 서울도서관 주관 하에 성료
소설 “달콤한 노래” 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와의 만남”, 서울도서관 주관 하에 성료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7.11.29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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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18일 서울도서관 생각마루에서는 프랑스 소설가 “레일라 슬리마니와의 만남” 이 개최되었다. 본 행사는 사전에 접수한 도서관 회원 중 선착순 7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2004년 소설 “오크의 정원”을 발표하며 데뷔한 프랑스 소설가이다. 본래 고향은 모로코이나 성인이 될 즈음 프랑스로 이주하였다. 시사 주간지의 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2016년에는 “달콤한 노래” 로 콩쿠르 상을 수상하여 유명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이날 행사는 사회를 맡은 허희 문학평론가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레일라 슬리마니 작가의 소설 “달콤한 노래” 와 문학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소설 “달콤한 노래” 에서 보모 루이즈는 돌보던 두 아이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이후 자살을 시도하여 의식불명에 빠지게 된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이 루이즈의 삶을 복기하는 과정을 통해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와 짓밟힌 개인성, 강요받는 모성 등을 그려냈다. 

<레일라 슬리마니(우). 사진 = 뉴스페이퍼>

Q. 작가님께서는 14일 한국에 와서 많은 일정들을 소화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A. 무엇보다 행사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셔서 놀랐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책과 문학에 대해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술을 존중하는 듯합니다. 또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어떤 기자 분에게 들었는데, 최근 한국에서는 페미니즘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더군요. 서구에서는 남녀차별이라는 문제가 “잘 해결되어 더 이상은 없는 문제” 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는 남녀불평등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Q. 작가님은 소설 “달콤한 노래” 를 통해 “공포의 보편성”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A. 모든 부모는 아이를 낳게 되면 무한한 사랑과 동시에 일종의 공포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이 아이가 나를 극단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걱정이 만들어낸 막연한 공포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으로 보편적 공포인데요. 하지만 사회 통념상 말하지 못하고 터부시하게 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이와 맞닥뜨려보고 싶었습니다. 

Q. 보모를 고용하기 전까지 소설 속 부모의 삶은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했던 아내는 “내가 왜 집에서 애들만 봐야하지” 라는 불만이 있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이해하려 하지 않죠. 이를테면 일을 마친 남편이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난 애들 크는 걸 보고 싶은데, 당신이 좋은 거지” 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작가님은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하셨는데요. 이런 남편을 둔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A. 사실 조언이 필요한 건 아내보다 남편입니다. 작중 남편이 딱히 여성혐오를 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정의 생활을 이상화하여 “아이들과 가정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행복의 순간이다” 라고 생각하죠.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렇듯 가정생활을 “착한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으로 착각합니다. 허나 실제 가사생활은 반복적이고 지겨워서 내가 불필요한 인간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기적일 수도 있고, 부모가 주는 애정과 부모의 권위를 거부할 수도 있어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남편들이 직접 가정생활을 해보라고 한다면 부인이 느끼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정생활을 하면 가정주부는 아이들과 갇혀서 지내게 됩니다. 항상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본인의 고민이나 불안을 나눌 수 없어 한정적인 대화만 하게 됩니다. 돌봄 노동의 문제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굉장히 많이 들이지만 아이들은 대등한 것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건데요. 이는 돌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망각 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또한 늘 하던 일만 하기 때문에 자신이 흥미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여기게 되죠. 
Q. 한국에는 최근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조남주 소설가의 소설이 출간됐는데요. 보통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를 꼬집은 소설이지요. 소설 “달콤한 노래” 에서도 레일라 슬리마니 작가님의 이런 통찰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소설에는 아내가 “특히 여자들 – 여자들은 어느 순간 아주 잔인한 면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을 경계했다. 자기에게 감탄하는 척하는 여자들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그보다 나쁜 건 부러운 척하는 여자들이었다.” 며 다른 여성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대목이 있는데요. 이런 걸 보면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까지도 전업주부에게 비과시적 폭력을 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아와 집안일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편견이 프랑스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레일라 슬리마니(가운데)와 허희 문학평론가(우). 사진 = 뉴스페이퍼>

Q. 이 여성은 처음 보모를 모집할 때 같은 지역 출신을 보모 후보에서 배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이는 같은 지역 보모와 암묵적으로 마음이 통하여 “이민자의 연대” 가 이루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님께서도 실제 모로코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경험이 있으시니,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이 여성은 자기 생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고용하는 여주인 행세를 하게 된 것입니다. 소중한 아이를 맡겨야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죠. 때문에 자신이 내리는 명령을 시행할 경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같은 나라 출신이거나 자신과 같은 이주민, 실향민이면 너무 친밀한 관계가 되어 경계가 허물어지게 될까봐 걱정하지요. 그러나 (작중에서는) 결국 보모가 들어와 역할을 수행하게 될수록 이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Q. 소설 속 보모는 이전까지 타인의 내밀한 삶에 공유될만한 지점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까지 묘사되지요. 그런데 이 가정에서는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파멸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의 거리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A. (기뻐하며) 그렇습니다. 제 소설은 서로 다른 사람과 계층, 문화 사이의 경계에 대한 소설입니다. 이 경계는 좋든 나쁘든 여러 이유로 허물어져 결국에는 소실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이 있어 차이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주변인과 함께 공유하며 사랑을 나누는 공간도 있지만 말입니다.(웃음) 

Q. 과거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재밌어야 한다” 고 답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런데 이 재미도 여러 개가 있죠. 단순히 페이지를 빨리 넘기게 하는 재미를 말한 건 아니실 것 같은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재미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알고 싶습니다. 
A. 제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삶이 녹아있는 소설입니다. 생동감 있는 삶이 녹아있어 생물계처럼 유기체로 존재하는 소설이지요. 특히 등장인물 같은 경우엔 그 나름대로 존재의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요? 소설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고, 원하지 않아도 밀어붙이는 삶의 속성이 녹아있는 소설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Q. 소설의 재미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 표면적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네요. 일각에서는 재미와 문학성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상반된 것이라고 인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콤한 노래” 는 재미와 문학성이 함께 가는 글이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즐거운 독서의 경험을 해서,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네요. 

<레일라 슬리마니(우). 사진 = 뉴스페이퍼>

Q. 현 시대에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과 위상은 상당히 감소되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대두되어 생존주의적인 삶이 문학이나 예술을 압도했기 때문인데요. 작가님께서는 우리가 문학을 가지고 이런 생존에 대해 어떻게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문학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A. 저는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입니다. 어떤 국가든, 어느 시대든 간에 문학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문학만의 주어진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문맹률이 높아 책을 읽는 독자가 전체 인구의 0%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있고 문학에 대한 접근성 역시 훨씬 좋아진 상황이죠. 사실 잉크가 없어도 머릿속에서 쓸 수 있는 게 문학입니다. 
문학은 불멸할 것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고유성을 띠고 있습니다. 현대의 역사는 문자와 함께 시작되었기에 독서는 지속될 것입니다. 인간이 존재하고 사회가 존재하고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한 문학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상으로 서울도서관에서 주관한 “레일라 슬리마니와의 만남” 은 끝을 맺었다. 이후 레일라 슬리마니 소설가는 독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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