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이론서 “묘사” 써낸 조동범 시인, 새로운 시대의 묘사 체계적으로 분석
[인터뷰] 시이론서 “묘사” 써낸 조동범 시인, 새로운 시대의 묘사 체계적으로 분석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7.12.09 19:11
  • 댓글 0
  • 조회수 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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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네 묘사는 이미지가 부족해. 깊이가 없어. 일차원적이야. 상투적이야. 문학을 막 공부하기 시작하고 학생들끼리 모여 합평회를 하다가 이런 지적을 받게 됐을 때, 그 막막함이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되물으면 돌아오는 답변이라곤 “더 읽어야지. 떠 써봐야지.” 누가 그걸 모르나, 라고 투덜거리면서 어딘가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론서나 작법서 따위를 뒤척거려보던 시기가 있었다. 결국 끊임없이 읽고 쓰는 것이 답이겠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누군가가 그럴듯한 방법론을 알려주지는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시를 창작하며 혹은 읽으며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조동범 시인은 수업 중에 학생으로부터 ‘책을 읽어도 묘사가 중요하다고만 나오는데, 어떻게 묘사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묘사가 잘못됐다거나 묘사를 제대로 하라는 지적은 있지만 ‘어떻게’라는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아 학생이 혼란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조동범 시인은 “시 창작 교육이 다소 애매한 경우가 있다.”며 “기존의 시 창작 방법론에서도 묘사를 설명할 때 정의와 예시 정도만 나오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시를 쓸 때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묘사" 표지 <사진 = 출판사 제공>

200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동범 시인은 중앙대, 경희사이버대, 경기대 등을 출강하며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시를 강의해왔다.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와 다수의 비평집, 산문집 등을 써온 조동범 시인은 지난 11월 13일에는 모악 출판사를 통해 시인수업 시리즈 여섯 번째 권인 “묘사”를 출간했다. 학생들과 강의를 통해 마주하며 그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기록하고 보완한 결과물이다. 

시인수업 시리즈는 시를 짓는데 필요한 핵심 개념들 – 은유, 제유, 환유, 패러디 등 - 을 풀어놓은 시 이론서 시리즈로, 조동범 시인은 “묘사”를 통해 묘사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부터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시의 구성과 감수성을 체계적으로 파악한다.

“묘사의 새로움과 시적 새로움”
2000년대 이후의 시적 경향 체계적으로 분석

조동범 시인의 책 “묘사”는 제목 그대로 묘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책은 먼저 묘사란 무엇인가, 설명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등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설명하고 묘사의 구조와 시점을 ▲ 서경적 구조와 시점, ▲ 심상적 구조와 시점, ▲ 영상조립시점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먼저 묘사는 서경적 구조, 심상적 구조, 서사적 구조로 세분화되며,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는 고정시점, 회전시점, 이동시점, 영상조립시점으로 구분된다. 이는 브룩스와 워렌의 저작과 문덕수의 저작을 참조하여 오규원 시인이 구분한 방법이다.

서경적 구조는 시에서 핵심적인 언술양상이다. 눈으로 본 이미지를 서경적 구조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상투적인 이미지를 서경적 구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조동범 시인은 “이 책에서는 서경적 구조의 설명에 그치지 않고, 진부함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자고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이명호의 ‘tree#2’, 한성필의 ‘마그리트의 빛’ 등 회화를 예시로 들어 상투적인 자연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시선을 갖자고 강조한다.

심상적 구조는 마음으로 그리는 이미지를 말한다. 비현실적이나 환상적인 장면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런 장면은 마음으로만 그릴 수 있기에 시인의 내면에 있는 감각과 감정을 제시할 수 있으며, 시인만이 알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풍요로운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 책에서는 심상적 구조의 여러 시점을 제시하고 어떻게 심상적 구조의 묘사를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한다.

한편 영상조립시점은 서경적 구조와 심상적 구조에 포함된 하위 개념으로, 어울리지 않는 낯선 정황들을 돌연히 내세우되, 그 안에 일관된 정서와 감각을 부여하는 창작방법론이다. 하위개념에 불과하지만 조동범 시인은 이를 따로 장을 내어 설명한다. 이는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시들이 영상조립시점으로 쓰여진 경우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작법서, 이를테면 “현대시작법” 등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시작법”은 오규원 시인이 남긴 시작(詩作)의 정전으로, 무수히 많은 시인들이 “현대시작법”을 보며 공부해왔다. 조동범 시인은 “현대시작법”이 가장 중요한 책이며 방법론도 효과적이지만 오규원 시인이 강의를 할 때 중요하게 다뤘던 내용이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오규원 시인은 90년대 이후 강의에서 ‘영상조립시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아쉽게도 책이 쓰여진 것이 80년대 후반이라는 것이다.

조동범 시인은 “요즘 시 같은 경우에는 심상적 구조가 강조되고, 환상적 작품, 내면을 이미지한 작품도 많이 있어 시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이라며 “기존의 책에 미진한 면이 있지 않은가, 요즘의 관점에서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영상조립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인터뷰 중인 조동범 시인

10년 넘은 강의의 기록 보완하고 덧붙여...
학생들의 사유 담을 그릇 만들고 싶다

이론서를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론서를 만드는 것은 기존에 있었던 무수히 많은 저서를 파악하고 작가만의 새로운 말을 덧붙이는 대작업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에 대해 질문하자 조동범 시인은 “책 ‘묘사’는 10년이 넘은 강의의 기록”이라며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무수히 많은 강의를 통해 만들어진 기록물을 보완하고 덧붙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인을 고민에 빠뜨리게 한 것은 “시라는 것이 과연 공식처럼 – 물론 책 ‘묘사’는 공식이 아니지만 - 쓰여질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어떤 구조를 만들고 구조 안에서만 창작을 반복하는 게 예술이냐는 의문은 일견 타당할 수 있다.

시인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차례 던졌다.”며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예술은 강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철학적, 예술적 감각은 가르치거나 공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론서와 방법론은 학생들의 사유와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조동범 시인은 “시창작방법론을 하나의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사유를 온전히 담아낼 그릇을 제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민이 상당부분 해소됐다.”며 “창작방법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계신다. 창작방법론을 듣는다고 해서 예술적 감각이나 철학적 사고가 생겨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조동범 시인은 시인수업 “묘사”를 시를 읽고 싶은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이며 가장 적극적으로 읽어줬으면 싶은 독자는 습작기의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시 창작의 고민에 빠진 이들이 책을 통해 사유와 철학을 담을 그릇을 만들어내면 좋겠다는 것이다.

조동범 시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시를 창작하며 고민에 빠져있을 학생들이 생각났다. 기자 또한 학부시절 묘사의 방법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에 “묘사”가 옆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시를 한창 쓰고 있는 이들, 시를 쓰고 싶은 이들, 시를 쓰다 가로막힌 이들이라면 시인수업 시리즈 “묘사”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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