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문학출판계 이슈 총정리
2017년 문학출판계 이슈 총정리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7.12.30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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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17년 새해 벽두부터 날아든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은 문학출판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국내 2위 규모의 출판도매상인 송인서적은 만기가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에 이르렀고, 부도 소식이 전해지자 터질 것이 터졌다는 비탄이 터져 나왔다. 낙후된 출판 유통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암운이 낀 채 17년을 시작했던 문학출판계는, 그러나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한 해를 보내게 됐다. 송인서적이 출판계의 각고의 노력으로 부활하고, 새로운 정부와 함께 건전한 지원 생태계를 약속받았으며, 문학계에서는 페미니즘 소설을 위시로 산문과 시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2017년 문학출판계에 어떤 이슈들이 있었는지 뉴스페이퍼에서 정리해보았다.

새해부터 날아든 출판도매상 부도 소식... 위기 힘 합쳐 넘긴 출판계

국내 2위 규모의 출판도매상 송인서적은 1월 2일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회사가 부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송인서적과 거래하는 출판사의 수는 2천여 곳, 송인서적으로 판로를 일원화한 출판사도 5백여 곳에 달했으며, 어음 부도와 도서 피해 등 직접적인 피해액만 3백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송인서적의 부도로 인해 출판사의 연쇄 부도까지 우려되기도 했다. 

송인서적 부도 후 첫 채무자 회의가 열린 한국출판인회의 건물. 회의가 끝나고 출판사 관계자들이 계단을 올라서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DB>

이러한 상황에서 출판계 양대 단체로 불리는 한국출판인회의와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출판계의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질서 있는 정리를 시작했다. 두 단체는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을 방문해 창고에 있는 재고 자산과 장부를 확보했으며, 긴급 채권자회의를 거쳐 ‘출판사 채권단 대표회의’를 구성하는 등 부도 처리 대책을 강구했다.

채권단 대표회의 결과 인터파크가 송인서적 인수를 추진하게 됐고, 법원 인가가 되며 송인서적은 인터파크송인서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10월 27일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법원의 송인서적 회생 계획안 인가에 대해 "송인서적의 부도로 커다란 충격과 어려움을 겪던 출판계가 지혜와 힘을 모아 부도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출판 유통 선진화의 필요성을 강구하며 문체부와 국회의원들에게 출판 유통 선진화를 위한 방안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출판 정책 연구소를 설립, 출판 정책에 대한 지혜를 모을 예정이다.

윤동주 100년 기념행사로 채워진 한 해

2017년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17년 한 해 동안 연극, 뮤지컬, 음악회, 강연, 연구, 기념식까지 윤동주에 관련한 프로그램만 50여 회 이상 진행됐으며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윤동주가 명실상부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해이기도 했다.

김응교 교수가 시낭송 콘서트 “윤동주를 노래하고 기억하다”에서 윤동주의 생애와 시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DB>

음악회와 공연, 뮤지컬 등으로는 트루베르가 신보 "윤동주의 바람"을 통해 윤동주 시인의 '바람이 불어'를 노래로 선보였으며, 서울예술단은 배우 온주완과 함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CJ토월극장에서 공연했다. 이밖에도 한국과 일본의 문인들이 도쿄에서 모여 윤동주 추모의 밤 행사를 개최하거나, 영화 '동주'의 상영회가 지역 도서관에서 열리기도 했으며, 윤동주의 작품 세계를 알아보는 세미나와 특강이 전국 각지에서 개최됐다.

12월 30일 저녁에는 미국 뉴욕과 뉴저지 동포들이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청년밴드 '눈오는 지도'가 윤동주의 삶을 주제별로 나눠 발표하고 시를 낭송하며 공연 무대를 마련할 예정이다.

새로운 문예지 등장과 문예지 지원 사업 부활

“문예중앙”, “작가세계” 등 전통 있는 문예지들이 속속 휴간과 폐간을 선언하는 와중 새로운 문예지들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1월 창비에서 선보인 “문학3”은 종이 지면에만 국한하지 않고 웹사이트와 현장 활동까지 범위를 넓히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5월에는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작품이 꾸려지는, ‘느슨하고 평화로운 문예 공동체’를 표방하는 문예지 “베개”가 등장했다. 이어 6월에는 고양이를 통해 우리 안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양이 문예지 “젤리와 만년필”이 창간호를 선보였다. 12월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준비한 문학웹진 “비유”가 창간되며 작품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마저도 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문예지들의 변화는 16년부터 이뤄졌던 일이다. 그러나 17년에 일어난 문예지들의 변화와는 속성이 조금 다른 것으로 비춰진다. 16년에 등장했던 문예지들이 출판사 – 편집위원 – 독자라는 뼈대를 유지한 채 내외형적 혁신을 꾀했다면, 17년에 등장한 문예지들은 종이 지면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독립출판, 출판사 – 편집위원 – 독자 구조에 의문 제기 등 구조적인 부분부터 차이를 보였다.

최근 창간된 문예지들이 참여한 요즘 문예지 공동 낭독회 <사진 = 뉴스페이퍼 DB>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권의 성립과 함께 문예지 지원 사업 등이 부활했으며, 지원 사업 대상으로 새로운 문예지들을 선정하여 놀라움을 빚어내기도 했다.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 심사위원들은 당시 실험적인 문예지들이 지원 받게 되었다고 밝히며 “문예지의 혁신을 포함한 문학장의 변화가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는 자리에서 그 변화의 의미를 새겨보면서 문예지 심의를 진행하고자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이번 심의결과는 문학을 둘러싼 좀 더 과감한 실험정신이 앞으로 좀 더 많이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런 정신을 담는 문예지에 과감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전환적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문예지가 지원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단 내 성폭력으로부터 1년... 경각심과 상처 함께 남겨... 

16년 10월 SNS에서 촉발됐던 문단 내 성폭력 폭로는 한국문학 안에 내제되어 있는 여성혐오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시인, 소설가를 비롯 여러 작가가 성추문에 연루됐으며 신인부터 원로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도 폭넓었다.

배용제 시인도 폭로 대상 중 하나로, 당시 SNS에는 배용제 시인에게 문학을 배웠다는 학생들이 배 시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한 바 있다. 배용제 시인은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지난 9월 1심에서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김요일 시인 또한 여성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남현 판사는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대응 태도만을 탓하고 있고 추행의 정도가 가볍지 않다”면서도 “추행을 위한 별도의 폭행·협박이 선행되지 않았고 피고인이 동종 전과로 처벌받은 적이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한편으로는 무고로 인해 고통 받은 이들도 생겨났다. 박성준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 폭로 당시 데이트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비판을 받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박성준 시인을 가해자로 지목한 폭로자가 해당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사과하며 누명을 벗게 됐다.

습작생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발당한 박진성 시인은 지난 9월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폭로자 중 하나였던 A씨가 박진성 시인을 강간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후 박진성 시인은 A씨를 무고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수원지검은 A씨의 죄질이 좋지 않지만 초범이고 불안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기소를 유예했다고 밝혔다. 폭로자 B 씨 또한 법원으로부터 허위 글을 작성해 박진성 시인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며 벌금 30만원의 약식 명령을 받은 바 있다.

이외에도 폭로에 대해 반론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도 있었다. 박범신 소설가는 전직 출판 편집자 A씨로부터 박범신 소설가가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고 성적 농담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지적됐다. 술자리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성희롱은 없었다고 주장했음에도 박범신 소설가는 사과문을 쓰고 신작의 출간을 무기한 연기한 채 은거의 시간을 보냈다.

17년 가을 와초 박범신문학제를 통해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박범신 소설가는 장편소설 “유리” 출간과 함께 문학계로 복귀했다. 박범신 소설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수한 오해 속에서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악을 쓰는 건 어른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건의 팩트를 다투거나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문재인 정부 예술분야 주요 부처 장으로 문인 자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블랙리스트를 통해 정권에 부역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래 문체부 장관의 자리는 문화 증진 이외에도 문체부 정상화라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그렇기에 문재인 정권 수립 이후 도종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장관으로 내정되자 대다수의 문인들은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도종환 장관이 16년 9월 국정감사를 통해 블랙리스트 의혹을 공론화시키고 최순실 국정 농단을 추궁했기 때문이다. 도종환 장관은 취임 이후 문체부의 정상화 의지를 밝혔으며 문화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제31회 책의 날 기념식'에 참여한 도종환 장관 <사진 = 뉴스페이퍼 DB>

지난 11월 27일에는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한국문화예술위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체부 산하의 기관으로 예술 분야 대다수에 대한 지원 사업을 공모, 집행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자 일각에서는 ‘문화예술계 기관에 너무 문인이 편중되어 있는 것 아니냐.’, ‘친일문인기념문학상인 미당문학상 심사 전적이 있다.’ 등의 지적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황현산 평론가는 “지원에 편중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친일문학상과 관련해서는 “심사 일을 열심히 했기에 하게 됐을 뿐 친일파라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친일문인기념문학상으로 갈등 일어난 문단

16년 중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비판은 17년에는 대형작가단체인 한국작가회의가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기까지 이르렀다. 

작가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과거 친일문인기념문학상의 최대 비판자 중 하나였지만, 내부 회원들이 친일문인기념문학상을 수상하고 심사하기 시작한 이후 비판을 멈춰버렸다. 한국작가회의의 하부 단체인 자유실천위원회는 작가회의의 형태에 모순을 느끼고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반대 행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등의 단체들과 연대하여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을 반대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미당문학상 시상식장 앞에서 펼쳐진 반대 시위 <사진 = 뉴스페이퍼 DB>

17년 송경동 시인이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이래 친일문인기념문학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활발해졌으며 한국작가회의는 10월 21일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명서의 입장이 너무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으며 한국작가회의 대전지회,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 등이 본회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진통이 잇따르고 있다.

한편 친일문인기념문학상과 관련된 시민 활동은 지속되고 있으나 문제가 해결될 여지가 보이지는 않는다.

마광수 작가 별세... ‘사회적 타살’ 지적

마광수 작가가 지난 9월 5일 자택에서 자살로 세상을 등지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경찰은 마광수 작가가 교수직에서 물러난 후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해왔다고 전했으며, 자택에서는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재산을 남기겠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발견되었다.

마광수 작가 빈소 <사진 = 뉴스페이퍼 DB>

마광수 작가는 한국의 검열문화와 싸우며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1991년에 발간된 소설 ‘즐거운 사라’는 군사정권 속에서 ‘외설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마광수 작가는 해당 건으로 1992년 구속이 되면서 대학 교수직에서 면직되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특별사면을 받아 복권되었지만 ‘즐거운 사라’는 여전히 출판 금지 상태로 남았다. 이후 연세대에서 복직과 해직을 반복하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했으나 해직 경력이 있어 명예교수 직함은 달지 못했다. 마광수 작가의 지인과 제자들이 빈소를 찾았으며,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사회에 대한 성토를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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