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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체제 순응으로의 문학계, 그 첫 진입에로의 출발 ‘신춘문예’
남윤수 작가 | 승인 2018.01.09 13:41

[뉴스페이퍼 = 남윤수 작가] 한국의 문학계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문예인들로 하여금, 통상 문학계의 시발점으로 상징되고 있는 신춘문예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SNS에 올렸던 글을 좀 더 수정 보완하여 이렇게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 2018년도 신춘문예 당선자 105명의 이름과 작품들이 메스컴에 발표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신춘문예는 수십 년 동안 매년 열리는 문학계의 대표적인 축제로 손꼽힌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당선자들이나 심사위원들을 향해 축하의 말을 한다거나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작품이나 심사평 또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춘문예라는 큰 축제에 대해 가슴 한 켠으로부터 올라오는 불편함과 거부감은 오래 전부터 계속 지속되어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매년 이런 한국의 극단적 경쟁문화의 한 전경을 보여주고 있는 신춘문예 시스템을 긍정하고 옹호해야 되는 것인지 말입니다. 

한해 (중·고등학생 300명, 초등학생 50명을 포함하여) 약 14,000명의 자살자를 양산해내는 한국에서 선택되고 있는 경제체제가 신자유주의체제라는 것을 이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진자본주의에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주요한 동력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 바로 ‘경쟁’구도 체제입니다. (이 체제는 오래 전 자본가들이 피지배계층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연대하여 저항하지 못하게끔 서로 간의 반목을 유도하는 지배 수단으로서의 기원을 가집니다.) 알다시피 문학계뿐 만아니라 예술계, 그리고 신자유주의 사회의 특징은 흔히 상과 상금을 걸거나 보상을 해주겠다고 전파하고 약속하면서 너도 할 수 있다, 너도 될 수 있다, 라는 세뇌를 통해 모두에게 승자가 될 거라는 망상을 부추기고 성공 자체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의 실체는 사실상 최종승자는 극소수밖에 되지 않는 승자독식형입니다. 반드시 한사람을 위해 다른 수많은 사람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의 패자를 희생시키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는데, 문학계에서는 왜 오랜 세월동안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자각하거나 인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과시적으로 활성화 시키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쓰여 지는 문학이 오히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하부구조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을 자살충동과 더불어 경제적 완충지대가 없는, 벼랑 끝 삶으로 내몰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동력 원천인 ‘경쟁’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일까요. 가만히 한번 생각해보면 문학계가 현재 상당히 모순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좀 더 이해를 돕고자 제가 직접 선진자본주의의 입론과 결부지어 천착해놓은 [예술계와 권력 그리고 자본주의]에서의 한 부분을 발췌하여 옮겨보겠습니다. 

‘……현재의 예술계는 (수상·지원금·데뷔프로그램 제도를 기점으로 하여)거의 모두가 잠재적인 예비 경쟁자이자, 구성원 전체가 경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압박 아니면 보이지 않는 적대감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다시피 경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다수의 열패감은 생래적으로 소수의 승리감을 수적으로 압도할 수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극소수를 제외한) 예술계 전반이 ‘내가’ 뭔가 성취하지 못했다는 결핍의식으로 점철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이라는 적자생존의 정글이라는 경제공간에서 펼쳐지는 악질적인 경쟁 공방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며 오히려 예술계에서, 예술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가 구축되고 있는 어이없는 모순이 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보편의 문제에 등급을 매기고 우월성을 따지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 신춘문예의 엄청난 경쟁 수나 다른 정책 공모에서의 치열한 경쟁구도와 같이 끊임없이 자기 우월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체제는 예술인들로 하여금 예술 활동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라 수상, 데뷔, 등단에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찾고 완성하게끔 만들어 버린다. 일 자체, 예술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상과 상금, 명예욕이라는 외적보상을 위해 문학, 영상, 연기, 미술, 음악 등을, 그러니까 예술 활동을 추구(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의 문제는 뒤로 가고 어느새 예술이 자기기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예술자체가 인간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경쟁’이라는 것에 정말로 ‘선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경쟁 자체가 이미 공격성이라는 동력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데, 그러니까 누구를 이기려는 목적의식이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인데, 거기서 포용과 연대, 공동체의식이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일까?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경쟁은 자의식을 강화시키며, 강화된 자의식은 내면에 권위를 형성케 한다. 그리고 그 권위는 각 개인을 타자들로부터 고립시킬 수밖에 없는 벽으로 세워진다. 이 보이지 않는 단절감은 집단적으로 무의식화 되면서 (모두가 경험하고 있다시피) 근원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고 불신하게 되는 사회기조를 형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 자체가 기질에 안 맞는 예술가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마 대다수일지도 모른다.) 경쟁에 대한 압박과 부담, 그로부터 오는 불안과 두려움이 본래의 창의성을 해치고, 창조성을 제한하며 예술의 근간인 감수성을 메마르게 한다는 것은 (숱한 경쟁상황을 겪어본) 예술계에 속한 이 라면 이제는 그 누구라도 인지하거나 납득하는 상황에 당면해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예술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야기하는, ‘시기심’과 ‘자격지심’을 유발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모든 문제의 상당한 발화 요인으로서 기여되고 있는 ‘경쟁적’ 예술계 구조자체를 이제는 선순환 형태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 발췌부분을 줄이겠습니다. 

물론 경쟁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이라는 것도 분명 이 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각 개인의 의식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없게 왜곡되고 분노조절장애의 양상만큼이나 공격적으로 변모될 정도로 (그러니까 무의식에 영향을 줄 정도로) 경쟁이 너무 지나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경쟁’이 어떤 방법으로서의 일부적인 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이제는 대체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전 생애 동안 자본론의 집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맑스, 자본주의에의 역사적 지평을 꿰뚫고 그 지향 방향을 치열하게 모색한 칼폴라니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그토록 주장하고 있는 선진자본주의의 폐해와 위험성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계는 오히려 이들의 말과 힘을 빌려 오랫동안 선진자본주의를 비판해온 입장에 서 있습니다. 

칼폴라니와 맑스 뿐만 아니라 경제전문가는 말합니다. 경쟁에서의 귀결은 결국 독점이자 획일화 라고 말입니다. (이 점은 현재 경제사회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이나 골목 상권의 무분별한 프렌차이즈화를 통해 충분히 확인 할 수 있으며, 예술계와 문학계 역시도 이러한 경향성이 횡행함으로써 주변부·예비 예술가들이 결과적으로 예술계 공간에서 배제되고 축출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판단합니다. - 이는 곧 다양성 상실과 예술 활동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대중들까지 예술로부터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봤을 때, 문학계는 오랫동안 자본주의를 비판해왔지만 사실상 이처럼 선진자본주의의 구성원리와 유사한 형태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려면 최소한 자신이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원리를 스스로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의심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105명의 신춘문예 당선인들은 이제 곧 문단 체제로 진입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들이 마냥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학계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대기업이나 다국적·초국적기업의 행태와 별 다를 바가 없는, 경쟁에서 이긴 승자만이 상금을 휩쓰는 (또는 생활자금과 생계수단을 확보하는), 극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이기 때문입니다.

 

남윤수 작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제 7회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데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지원센터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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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수 작가  info@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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