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시인의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시리즈 1. ‘목이 메다’ , 정진규 시인
하린 시인의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시리즈 1. ‘목이 메다’ , 정진규 시인
  • 하린 시인
  • 승인 2018.02.1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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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는 하린 시인의 시 단평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를 매주 연재합니다. 첫 감정은 "목이 메다" 입니다.

 

律呂集 39

― 사진*

정진규

이런 눈물을 본 적이 없다 우는 입술을 처음으로 눈여겨 봤다 우는 입술은 흔들림의 본격本格이다 실로 첨예하다 흔들림이 슬픔 쪽으로만 깊게 쏠린다 슬픔이 완성되고 있다 내가 내 안엣것들을 저런 실물實物로 빚는 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내 슬픔이 저토록 온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나뿐인 사실의 본격本格이라고 적어놓는다 이만큼 자꾸 사실보다 더한 사실로 넘어가려는 감동을 내가 울어서 들어낸다 제 자리에 앉힌다 눈물이여, 내가 덜어낸 눈물만으로도 벌써 눈물다워 있는 눈물이여

* 2010년 1월 대지진이 발생 30여만 명이 숨진 아이티 노트르담 성당에서 미사를 보던 한 여성의 눈물. 풀리처상<워싱턴 포스트>속보 사진을 보다

― 󰡔사물들의 큰 언니-律呂集󰡕, 책 만드는 집, 2011.

 

<해설> 

몸 안쪽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던 어떤 설움은 기가 막혀서 턱 걸리고 만다. 거세게 차오르다가 그 차오름이 너무나 겨워 작은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설움 자체가 되어 멈춰 선다. ‘목이 메다’는 그럴 때 인간에게 주어진 행동인 동시에 감정이다. 


당신은 언제 ‘목이 메다’를 경험했는가? 이성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갑작스런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의 몸과 감정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속수무책(束手無策)의 상황. 그런 상황에선 ‘머리’가 끼어들 틈이 하나도 없다. 대표적인 상황이 바로 참사(慘事)다. 천재(天災)든 인재(人災)든 간에 참사가 한 개인에게 찾아오면 당사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설움에 직면하게 된다. 
정진규 시인(1939~2017)은 단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목이 메다’라는 감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2010년 1월 아이티에선 대지진으로 30여만 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그때 눈물을 흘리며 미사를 보던 한 여성의 표정을 사진은 담고 있다. 사진을 본 순간 시인은 ‘눈물이 살아있다’ ‘설움이 살아있다’라는 정서에 휩싸였을 것이다. 참사가 휘두르는 폭력 앞에 어찌할 수 없게 무너진 온몸. 그 ‘온몸’을 감지하고 그것을 곧바로 시에 옮겼을 것이다. 


‘차마’를 품고 미세하게 떨고 있는 ‘우는 입술’이 있다. “흔들림이 슬픔 쪽으로만 깊게” 쏠려서, 쏠린 것이 끝내 복받쳐 올라와서 소리 내지 못하고 입술이 운다. 시인은 그런 입술을 처음 눈여겨봤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예민한 언어 감각으로 ‘우는 입술’을 “흔들림의 본격本格”이라고 명명한다. ‘우는 입술’을 ‘실물實物’로 경험한 시인은 이제 “사실보다 더한 사실로 넘어가려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이 메어 따라 운다. 그러면서 ‘실물’ 자체로 온몸으로 보여주는 ‘우는 입술’과 눈물이야말로 진짜 슬픔이고, “하나뿐인 사실의 본격本格”이라고 언술한다. 


살아가는 내내 당신에겐 목이 메는 설움이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절대 찾아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참혹’을 부추기는 요소들이 도처에 잠재되어 있다. 그러니 당신은 오늘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안녕’을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안전과 ‘안녕’을 돌봐야 한다. ‘슬픔의 완성’은 오직 시 속에서만 존재해야 행복한 삶이다.

 

하린 시인 약력

2008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이 있고 연구서로는 󰡔정진규 산문시 연구󰡕가 있음.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음. 중앙대, 한경대, 광주대, 협성대, 서울시민대, 열린시학아카데미, 고양예고 등에서 글쓰기 및 시 창작 강의를 함. 첫 시집으로 2011년 청마문학상 신인상을, 두 번째 시집으로 제1회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함. 2016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시클󰡕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 사업에 선정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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