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회칙의 노예 규정에 대하여
한글학회 회칙의 노예 규정에 대하여
  • 박용규 연구교수
  • 승인 2018.02.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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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한글학회는 창립된 지 올해가 110년이 된다. 우리 국민에게 한글학회는 민족학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한글학회에서 괴물이 자라났다. 한글학회 회칙이 그것이다. 

필자가 2015년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투쟁에 참여하면서, 거리에서 서명을 받을 때였다. 어르신들은 이런 일에 한글학회가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면서 그 존재감을 상실하였다고 저희에게 호통을 쳤다. 명색이 한글학회 연구위원으로 있는지라 무조건 “죄송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후 필자는 한글학회가 왜 국민으로부터 존재감을 잃어버렸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 이유를 한글학회 회칙 변경에서 발견하였다. 

1988년 영남지역 국어학 관계 인사들이 버스 3대를 동원하여 회원 1백여명을 데리고 와 정기총회에서 간선제로 임원을 선출하는 회칙 개정안을 통과시킨 이후, 한글학회는 내리막 길을 걸었다. 정회원의 임원 직선제 80년(1908∼1988) 전통이 박살이 났다. 평의원제의 등장이었다. 영남지역 인사의 쿠데타였다. 영남지역 이사들이 영남지역 인사를 평의원으로 임명하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국민은 직선제 민주화로 가고 있었는데, 한글학회는 영남 쿠데타를 통해 간선제로 다시 군부독재시대로 되돌아갔다. 한글학회의 평의원제는 박정희시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제와 같다. 박정희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줄 인사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임명하자, 대의원이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었듯이, 한글학회 이사들은 자신들을 이사로 뽑아줄 인사를 평의원으로 임명하자, 평의원이 다시 그들을 이사로 뽑아주었던 것이다.

평의원 정원 51명 가운데 영남지역 인사가 반을 넘었다. 평의원은 종신제였다. 영남지역 평의원이 영남지역 출신을 이사로 뽑았다. 지금도 영남지역 인사가 평의원과 이사의 과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다. 이게 한글학회의 숨겨진 흑역사이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한번도 문제 삼지 않았다. 

영남지역의 국어학자들이 학회를 장악하여 회칙을 고치면서, 한글학회는 민족학회에서 일개 국어학회로 전락하였다. 이후 한글학회는 빛나는 전통을 가진 우리말 운동 분야에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의 시야에서 멀어졌고, 존재감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최현배 선생이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는, 한글학회 회칙이 반듯하였다. 정회원의 회칙 개정 발의권이 보장되었고, 정회원의 임원(이사, 회장) 선출권이 있었으며, 우리말과 한글의 연구와 발전에 애쓰는 이는 모두 정회원이 되었다. 

현행 한글학회 회칙의 비민주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정회원은 회칙 개정을 발의할 수 없다. 이사회만이 회칙 개정 발의권 있다(제39조 : 회칙 개정). 둘째로, 정회원의 임원 선출권이 전혀 없다. 이사회만이 평의원을 추천하여 자신들이 임명한다. 평의원회에서 이사를 선출하고, 다시 이사들이 이사 중에서 회장과 부회장을 뽑도록 되어 있다(제18조 :평의원회 기능, 제19조: 평의원 선출, 제26조 :임원 선출). 셋째로, 정회원은 총회에서 임원(이사, 회장, 부회장)과 평의원 선출 결과를 보고 받을 뿐이다(제14조: 회원 총회 기능). 정회원은 임원에게 박수치는 일 밖에 없다. 그럼에도 연회비는 정회원이나 평의원이나 회장·부회장이나 똑같이 낸다.

현행 한글학회 회칙은 노예의 회칙이다. 정회원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학회의 주인이어야 할 정회원이 한글학회 회칙에 노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폐중의 적폐 회칙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작년에 회칙 개정위원회가 출범하여 1년간 회칙 개정위원들이 현행 회칙 보다 나은 개정안을 만들어냈다. 이 개정안을 이사회에 상정하였고, 이사회는 작년 12월 7일에 원안대로 발의하기로 의결하였다. 참고로 이사회는 11명의 현직 국어학·언어학과 교수로 이루어져 있다. 개정안은 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쳐, 올해 3월에 열리는 정기총회에 상정되어 의결된다.

그런데, 또다시 이사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올해 2월 1일에 이사회는 다시 회칙 개정안을 마지못해 올리지만, 개정안을 반대하는 부대의견을 덧붙여 내기로 결의하였다. 작년 정기총회 의결로 특별위원회가 만든 개정안을 반대하고 비민주적인 현행 회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 표명이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사회는 근거 없는 부대의견 첨부를 즉각 철회하기를 바란다. 이 기회에 30년이나 된 평의원회도 비민주적인 제도의 전형이니, 자정 차원에서 스스로 해산 선언을 했으면 한다. 부끄러운 제도이다. 정회원도 임원 선출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학회 권재일 회장은 회칙 개정안 공개 토론회 개최를 거부만 하지 말고, 즉각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필자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사나 평의원은 이 지면을 통해 반론을 제기하여 주기를 기대한다.

 

박용규

 1999.9 ∼ 2009.8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한국사전공) 졸업(문학박사) 

o 2012. 09 ∼현재 한글학회 연구위원
o 2015. 3 ∼ 현재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현재 한글학회 개혁위원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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