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시인 특집] 추천 시 8. 축시 - 변선우 시인
[신인 시인 특집] 추천 시 8. 축시 - 변선우 시인
  • 변선우 시인
  • 승인 2018.02.2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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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에서는 데뷔 5년 미만의 신인 시인들 중, 작품이 뛰어난 시인을 선정하여 미발표 신작 시와 시에 관한 짧은 단상, 에세이 등을 연재합니다. 시인들의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축시

  
  
  
천장은 벽으로, 벽은 바닥으로, 우리는 우리에게로. 자꾸만 걸어가고 있었다. 열쇠구멍을 돌리면서, 왼 몸과 오른 몸을 바꿔 입었다. 우리가 도착해야할 곳은 서로의 거기. 춥고 비린내 나는 곳. 거기에선, 다정해질 수 있다. 다정해진 만큼 두려워할 수 있다. 다시, 바닥은 벽으로, 벽은 천장으로, 우리의 혓바닥은 우리의 혓바닥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갔다. 바늘을 타고 노는 내 영혼이, 우리를 지켜보았다. 방주를 탄 짐승처럼, 침몰을 기다리는 종말론처럼. 우리와 이 방은, 물인 것 같다. 저 영혼은 벌써 침수되고 있다. 우리는 바닥과 벽과 천장을 서로의 거기로 밀어 넣으며, 그렇게 흩어지고 빨려 들어가며…. 점을 흉내 낸다. 보이니? 내, 거기. 어서 느껴봐. 너를 접고 접어서 아늑해져 봐. 우리는 서로의 상체와 하체를 바꿔 입었다. 나는 상체만. 너는 하체만. 서로를, 가정하기 시작했다. 거기를 탐내면서, 멀어지는 것 같다. 아직도 방이라는 상자 속에서, 밀어내는 것 같다. 진실이라 말하면서.

 

시작노트
  
  
무언가를 원할 땐, 이기적여진다. 혼자서 끌어당기기 일쑤다. 특히, 원하는 상대가 나 자신일 땐, 더 아프다. 찢어질 것처럼. 정말 찢어져버리면, 내가
둘로 분리되어 다른 길로 빠져나가려 한다면. 기필코, 불러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거다. 이기적임을 인정하면서, 두 발로 서있는 여기를 접고 접어서, 꼭 점처럼. 서로에게 수렴해야 한다. 그런데, 가까워진다는 말에는 멀어지려는 속성이 포함되어 있나보다. 고무줄처럼. 점점 멀어지다보면, 오히려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분리되어버린, 나와 내가 밀고 당기며 ‘나’는, 만들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물이 몰려든다면, 더 완벽해질 수 있다. 부둥켜안고 휩쓸리는 느낌. 아늑하겠다. 내가 나에게 질문하고, 가정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살아내면서 있을 수 있겠다.

변선우 시인
2018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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