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놀로그
나란히 앉아 재미없는 드라마를 본다
엉킨 공간을 손으로 빗어 내리며
끊어져 흩어진 머리카락들은
네가 쓸어 담겠지
착한 사람
물때가 낀 오래 된 유리컵도
결국 네가 씻어낼 거야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즐겁니
오늘도 낯익은 눈빛을 하고
나는 너의 눈빛들을 모두 알아
그중 넷째 눈빛을 가장 좋아해
차라리 단단해서 금방 말라버릴 것 같은
실은 거짓말이야
셋째를 가장 좋아해
찌르면 주저 없이 푹 들어갈 것 같은
미안, 이것도 거짓말이야
너에 대해 잘 안다고 우기는 일
저기 나오는 사람들은 늘 거짓말을 하잖니
마지막에는 꼭 다시 만나게 되는
알고 있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는 게
실은 너를 아주 아프게 하는 일이라는 걸
내 어깨에 기대지 마
나는 원하는 게 아주 많고
너는 늘 그 반대야
너와 손바닥을 맞댈 때면
나는 우리 손의 끝에 대해 생각하지만
너는 그저 손가락을 접어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재는 것에 익숙하고
너는 상관없게 만드는 일에 능숙하지
하다못해 로봇의 표정까지도 신경 쓰는 네가
나를 위한 사람이라니
무서워
진심이 아닌 말은
모르는 척을 동반하고
지금 이게 마지막 회인지 물어보려
나는 입을 뗐다
*시작노트
무서운 게 너무 많아. 귀신도 무섭고, 벌레도 무섭고, 사람도 무섭고, 변하는 것도 무섭고, 틀리는 것도 무섭고, 내 마음도 무섭다. 무서운데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무서워서 더 알고 싶어. 무서워하기 싫어서 확신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무서워하는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늘 궁금하다. 무서워서 싫은데도 그래서 계속 생각하게 돼. 설명하려고 해. 그렇게 해서 끝내 어렵게 조그마한 결론을 내도 무서운 걸 마주하게 되면 여전히 무섭다. 나는 이런 과정이 때로는 재밌게 느껴진다. 무서움을 즐기는 걸까 생각하다가도 무서움이 없어지는 게 또 무서워지지.
왠지 사람이 아닌 것을 본 것만 같고, 눈에 띄지 않게 벌레가 내 주위를 맴도는 것 같고, 모르는 사람이 쫓아올 것 같고, 네가 내일은 오늘과 다른 사람이 될 것 같고, 바보 같은 실수를 할 것 같고, 내 마음이 너를 아프게 할 것 같고. 그렇게 또 무서워 해. 무서워하는 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보면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참 시시하다. 무서워하는 것들로 쌓아올려진 사람이라니.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잖아.
조윤진 시인
2018년 한국경제 신춘문예 데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