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숙독에 길이 있다 - 서장 1편 -
[연중기획]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숙독에 길이 있다 - 서장 1편 -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3.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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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지금 정신의 기갈을 느끼고 있습니다.”

- 늘샘 김상천의 말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최근 어느 문학전문 헌책방 사장님과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뜻밖에도 철학서가 잘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철학이라면 기본적으로 존재의 본질을 다루는 심오한 학문인데, 이렇게 심오한 철학서에 독자들의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걸까요.

우선,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뚜렷한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양극화 등 분배문제와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가 산적해 있기도 하지만, 국민대중이 가난이라는 천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경제지표가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저녁이 있는 삶’에서처럼 지나온 삶과 소소한 일상을 돌아볼 만큼의 작으나마 여유가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 가령 의학, 법률, 금융 뭐 이런 것들을 넘어 삶의 양식culture, 즉 시, 낭만, 사랑, 아름다음 같은 정신적인 활동에 양분 구실을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상황은 자연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 등 보다 존재론적이고 근본적인, 그야말로 래디칼radical한 질문을 수반하게 되니, 이를 다루는 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개설되는 철학 강좌마다 수강생들이 개미떼같이 몰리는 등 고급문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서 저 서양의 고대 그리스 이래, 철학은 바로 이렇게 삶의 '여유schole' 를 지닌 한가한 계층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황금기, 해외 무역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지니게 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유한계층인 지식인들을 통해 고전 시기의 철학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요는 우리는 지금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고, 물질적 충족 못지않게 정신의 허기를 달랠 지적 갈증의 기운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중들은 자연 삶의 본질과 웅숭깊은 지혜를 담고 있는 고전古典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전 중에서 나는 문예물에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왜 문예인가. 문예는 사전적으로 ‘미적美的 현상을 사상화思想化하여,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고전적 문예물은 마치 잘 익은 술과도 같습니다. 애주가가 숙성된 술에서 그 고유의 깊은 풍미風味를 맛보듯, 고전적 문예작품을 탐독하는 이 또한 난숙爛熟하게 쓰여 진 고전에서 인생에 대한 깊은 심미審美를 얻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 고전을 고전답게 하는 고전의 난숙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고전은 일종의 원형모델입니다. 고전이 하나의 원형모델이 된 것은 고전이 위기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위기에는 다들 ‘지금 뭐가 문제지’, 하고 첫 장부터 다시보기 시작하는 것처럼 근본basic을 돌아보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강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저 그리스 제국의 와해 무렵에 인간의 본질과 정치체제 등에 관한 관심으로 서양고대철학이 화려한 꽃을 피워냈고, 저 중국 고대의 선진시기, 주周제국의 해체기인 춘추전국시기에 노자, 공자, 순자, 한비자 등 제자백가들이 앞을 다투어 위기의 해결책을 내놓는 가운데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선진고경先秦古經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 조선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급했던 상황을 전후하여 숙종, 영, 정조 년간에 조선의 문화는 그 고비에서 극성기를 누렸습니다. 그 정점에 [춘향전]을 비롯, [열하일기熱河日記]가 있습니다. 역시 위기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 고전은 인간의 ‘근본’에 대해 천착한 역사적 산물입니다. 고전이 고무줄 같이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고,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성’을 지니게 된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전이 오늘, 여기 나에게도 하나의 꺼지지 않는 불멸의 텍스트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사례만 보것습니다. 

모택동은 어린 시절 이후, [삼국지]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거기서 하나의 빛을 발견하고 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삼국지]를 다만 책으로만 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삼국지]를 본보기로 후대에 ‘정강산’과 ‘연안’ 등 내륙의 농촌을 혁명의 근거지로 삼아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으로 중국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는데, 그 핵심은 바로 [삼국지]의 ‘삼분계三分計’였던 것이고, 이 삼분계의 핵심은 바로 촉蜀지방을 근거지로 천하를 삼분하자는 제갈량의 지략이 담긴 놀라운 거점據點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즉 [삼국지]는 다만 고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살아있는 화두라는 얘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고전은 결코 말라비틀어진 고목이 아니라 퍼도퍼도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 같은 것입니다.

나태주의 시에 '풀꽃'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자, 이 시가 왜 그렇게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삶을 깊이 있게 관찰한 결과입니다. 여기, 화자는 '하나의' 풀꽃을 바라보먼서 인간사의 비밀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즉 네가 이렇게 예쁜 것은 마치 풀꽃이 자세히 보아서 예쁜 것과 같고, 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 역시 풀꽃이 오래 보아서 사랑스러운 것과 다르지 않다는 보편적 깨달음 때문이라는 겁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건 비단 시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자, 이걸 그대로 독서에 적용해 보먼, 즉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풀꽃과 인간이 예쁘고 사랑스럽듯이, 책 또한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더욱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건 하나의 명제에 값합니다. 여기, '자세하고', '오랜' 것은 그대로 숙독에서 빠져서는 안 될 필수 덕목입니다.

익히 아는 대로, 독서에는 실로 다종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속독速讀, 통독通讀이 있는가 하면 남독濫讀, 다독多讀이 있고 또 발췌독拔萃讀도 있지만 정독精讀, 숙독熟讀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방법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치는 기본적으로 삶의 문제이고 취향taste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숙독을 편들어 야그하고 있는 것은 우선 정밀한 주해를 요구받고 있는, 문예비평가라고 하는 어쩔 수 없는 그 직업적 본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숙면熟眠, 숙성熟成, 백숙白熟, 수육熟肉, 난숙爛熟이라는 가치 있는 말들이 있거니와 우리는 독서에서 또한 숙독熟讀이라는 하나의 의미 있는 대안을 발견합니다.

2편 이어서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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