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숙독에 길이 있다 - 서장 2편 -
[연중기획]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숙독에 길이 있다 - 서장 2편 -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3.01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중들은 지금 정신의 기갈을 느끼고 있습니다.”

- 늘샘 김상천의 말

서장 1편 보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여기, 공통적인 단어 ‘숙熟’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불火’이라는 의미소입니다. 이는 자연의 세계와 달리 인간의 세계는 정신의 불을 통과해야 보다 성숙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은유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Das Kapital]의 초고라 할 수 있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은 대상적 세계의 가공에서 비로소 자신을 현실적인 하나의 유적 존재로서 확인한다.”

여기, ‘대상적 세계’가 하나의 ‘사실소’*로서 현실적 물질세계를 가리킨다면, ‘가공’된 세계는 하나의 ‘가치소’*로서, 창조적 정신세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은 사실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마치 제빵사가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이라는 의미 있는 세계를 만들어 내듯이, 대중들 또한 주어진 사실을 가치화, 시화poetizing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위격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사실소’, ‘가치소’는 늘샘이 사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개념의 막대로, 기호 생산의 기본 원리에 해당합니다. 즉, 밀가루가 사실소라면 빵은 가치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전 작품이 하나의 사실소라면, 이에 대한 해석은 가치소를 이루는 것이고 이를 대상화, 외화外化시켜 사실을 가치로 시화시킴으로서 그 인간 본래의 창조적 본성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가공加工’이라는 창조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가공을 통한 창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꼭 그대로 제빵사가 밀가루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창조적 인간 또한 사실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 사실의 세계를 넘어 세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간직한 인류의 지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고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고전은 과연 깊은 이해를 요구받고 있는 고고학적 문화광산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기, 고고학적 문화광산이라 할 고전에서 무궁무진하게 묻혀 있는 은칼, 금칼을 캐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고전이 하나의 ‘해석소解釋素’*로서의 텍스트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고전은 경전도 아니고, 장식품도 아닙니다. 고전을 숭배하는 순간 우리는 노예가 되고 말 것이고, 고전을 과시하는 순간 속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해석소’ 또한 ‘사실소’, ‘가치소’와 더불어 늘샘이 사용하게 될 중요한 개념 도구로, 고전이라는 텍스트가 창의적인 불씨를 지닌 하나의 의미 있는 풀이의 대상이지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고전이 하나의 경전으로 취급되었던 것은 고대 영감론의 산물입니다. 고전이 또한 하나의 장식으로 취급되었던 것은 근대 천재론의 결과입니다. 영감론과 천재론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은 고대가 신이 지배하던 시대이고, 근대가 지식인이 위광을 떨치던 시대였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영감론은 ‘사실’에 사로잡힌 맹목盲目의 미학이론이고, 천재론은 ‘가치’에 빠진 자홀自惚의 미학이론입니다. 전자가 속류 리얼리즘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경박한 모더니즘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주인공인 시대입니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탈근대철학의 비조 니체의 말대로,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리하여 ‘해석은 재창작이다’라는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진리와 방법])의 유명한 말이 있거니와 즉, 인간은 이제 주어진 텍스트를 가지고 미적 유희를 즐길 줄 아는 자기결정적self-decisive이고 자기형성적self-fomative 존재입니다. 우리가 객관적 사실에 너무 사로잡혀서도 주관적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적 반영이 아니라 미적 형성인 것입니다
What an important thing is not a material mirror but an aesthetic formation

삶의 양식으로서의 문화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능, 먹방, 종편 등 거품처럼 가벼운 B급 문화가 풍미하고 있는 저간의 문화현상은 나의 맴을 슬프게 합니다. 그래서 숙독이 필요한 것입니다. 

유명한 사례를 둘만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율곡 이이가 지었다는 [격몽요결]이 궁금하여 헌책방에서 고본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독서장'이 있어 급한 맴에 먼저 펼쳐 보았더니,

"범독서凡讀書, 필숙독일책必熟讀一冊"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권을 익숙하게 읽어야 한다.

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역시 틀리지 않은 것입니다. 첫 번째 인증입니다.

둘째로, 내가 평생을 두고 사숙하는 도스또예프스끼 형님 야그입니다. 그가 세계명작 [죄와 벌]을 쓸 때, 평소 프랑스어에 능숙했던 그의 손에는 항상 발작의 [고리오 영감]과 위고의 [레 미제라블] 원본이 들려 있었다고 아내가 쓴 회고록이 전하고 있습니다. 과연 '라스티냑' 없이 어찌 러시아의 라스티냑, '라스콜리니코프'가 나올 수 있었을 테고, '자베르' 경감 없이 또한 '뽀로피리'가 어찌 나왔을 것이며, 그리고 '팡틴느' 없이 어찌 우리의 청순한 창녀 '소냐'가 나올 수 있었겄는지. 즉 그는 쇠가 빠지게 닳고 닳도록 자세하고 오랫동안 그 선배 작품들을 사숙하면서 이를 러시아적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창의적으로 모방, 변용하고 성공적으로 개작, 창조해 낸 것입니다. 분명 숙독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공자孔子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논어論語]의 첫 장을 펼치면 팝업처럼 툭! 튀어나오는 저 유명한 경구,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는 참으로 공자 자신의 독서경험에서 터져 나온 감출 수 없는 진실이 아닌지... 그러니 독자여,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유명한 성구도 있거니와 그 책, 모본母本을 찾아 수십 번 수백 번 읽으라는 나의 조언을 무시하지 말기를... 왜냐하면 맛 중에 제일 맛은 ‘깊은' 맛이고, 독서에서 이 깊은 맛을 누리는데 숙독이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숙독입니까? 그것은 깊은 사랑에서 위대한 힘을 느끼듯, 깊은 맛에서 또한 위대한 힘이 솟구치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이 고전은 위기를 딛고 살아남아 ‘생명력’과 ‘보편성’을 지닌 인류의 지적 재산으로서 그 가치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런 고전을 깊이 있게 체득한 두터운 기운을 지닌 자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깊은 지혜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의 경우만은 아니것지만 조조曹操의 경우, 그는 무장이기 전에 시적 소양을 지닌 뛰어난 문장이었다는 사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위기가 상존하는 암울한a bleak 시대, 하나의 의미 있는 전거로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이에 나는 인류의 고전문예작품 수 천점 중에서 고르고 골라, 여기 가히 고전백과사전이라 함직한 9편을 선정하였습니다. 동서양은 물론 우리 것도 한 점 넣었습니다. 이를 통해 나는 여기 ‘뉴스페이퍼’와 공동으로 세계의 예술과 철학을 아우르는 재미있고 섹시하면서도 중후장미*한 고전 지도를, 희망의 북극성The North star of hope을 완성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중후장미重厚壯美’는 늘샘의 조어로, 논지가 엄숙하고 깊이가 있으며 문체 또한 뛰어나고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자, 그럼 항해사 늘샘과 함께 질거운 고전문예 오디세이를 떠나 보것습니다.

1, 삼국지(3월)

2, 일리아스(4월)

3, 오디세이아(5월)

4, 장미의 이름(6월)

5, 죄와 벌(7월)

6, 마담 보바리(8월)

7, 성城(9월)

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0월)

9, 열하일기(11월)

서장 끝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Tag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