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허상 허물어지고 대중평자의 시대로, 김상천 문예비평가 “명시단평” 출간
작가의 허상 허물어지고 대중평자의 시대로, 김상천 문예비평가 “명시단평” 출간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3.01 2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르포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선정되고, 이듬해 수상자로 팝가수 밥 딜런이 선정되자 국내에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르포와 노래 모두 한국문단에서는 문학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밥 딜런의 수상에 충격을 받은 이들은 그의 수상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비쳤다. 문학의 외연 확장이다, 노래는 원래 운문이다 등 작가마다 각자의 의견을 제시한 가운데,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밥 딜런의 수상을 가리켜 “노벨상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시와 소설이 주류적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대중적 형식으로서의 댓글, 단평 등 에세이가 이 시대의 주류형식이 되고 있으며, 바야흐로 “대중평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평자의 시대”는 누구나 단평 등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모두가 애널리스트이자 평자인 시대이다.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이전에는 오로지 지식인, 천재 작가만이 문자문화의 중심에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시와 소설은 문자문화의 중심에 있었던 장르로, “시는 ‘묘사’를 기반으로 하는 모방적 요소가 강한 고대적 형식이고, 소설은 말하기라는 ‘서술’이 더 중요한 근대부르주아의 개념적 인식의 형식”이며 두 장르는 영웅적 인물 또는 부르주아 계급만을 위한, 소수만이 주인공일 수 있는 장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문화의 도래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대중평자’들이 비교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활동을 일상화한 대중서사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특히 댓글문화를 통해 서로가 의견을 자유로이 나누며 비평문화를 꽃피우고 있다며 “다자간의 합의와 설득에 의해, 상호 공감이라는 정서적 교감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 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시와 소설의 발달 단계로 인해 “시는 너무 사실이라는 불멸의 실체에 매여 있고, 소설은 지나치게 가치라는 자의적인 형태에 사로잡혀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대중서사에서는 이러한 단점이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중서사가 무엇보다 ‘상호교감’에 기초를 두고 있기에 논증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논증은 묘사, 서술 형식을 넘어 설득의 논리에 기반을 두기에 매우 역동적이고 생성적인 특징이 있으며 또한 상호적이라는 가장 큰 장점을 갖는다. “‘전체적인’ 시와 ‘단정적인’ 소설의 형식이 대중적 에세이를 통해 ‘상호소통’의 시대적 형식으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김상천 문예비평가의 주장이다. 

명시단평 표지

대중서사시대, 대중평자의 시대를 맞아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얼마 전에는 “명시단평”을 펴내기도 했다. “명시단평”에는 보들레르, 네루다, 브레히트 등 해외의 시인들의 작품부터 김수영, 김남주, 김광규, 송찬호, 백석, 신경림 등 국내 유명 시인들의 작품 총 48편이 김상천 문예비평가의 단평과 함께 수록되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누구나 읽고 쓰며, 즐기는 대상으로서의 시의 ‘대중적’ 텍스트적 성격을 말하고자 했다.”며 “시는 신성한 것이고 시인만이 쓰고 누릴 수 있다는 경전화, 특수화에 대해 저항하고자 했다.”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서명 중인 김상천 문예비평가

그렇기에 “명시단평”에 수록된 단평은 어렵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 기형도의 시 ‘엄마걱정’에 대해 김상천 문예비평가는 “기형도의 시는 한 편의 겨울 판화”라고 표현한다. “음영에 드리운 판화 속에 시적 화자, 유년 시절의 내가 훌쩍거리고 있다. 빈방에 홀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며 기형도가 만들어낸 시적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 시가 어떻게 공간을 형성해냈지 풀어가며 시를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시 48편 외에도 문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밝히는 ‘서문’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궁극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서문’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가지 잘린 버드나무’와 기형도의 ‘엄마 걱정’을 내세우며 미적 범주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김 문예비평가는 “예술적 카타르시스는 ‘그림’과 ‘시’를 매체로 한 것”이며 기호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고 인간이 기호-매개적 존재임을 주변의 언어와 문학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전자문화 사회에서 누구든 의견을 내세우고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말문이 트일 것 같고 입 주변이 근질근질하지만 어떻게 말을 풀어나가야 할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명시단평”의 시 48편과 그에 딸린 단평, ‘서문’, 부록으로 수록된 임화의 문학에 대한 글을 통해 단평이란 무엇이며,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작가는 오랫동안 신성한 존재, 환상적 존재 등으로 추켜 세워져왔다. 작가의 기행은 무언가 예술적인 것으로 통용되곤 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 간 한국문단에서 벌어져왔던 논쟁들은 이러한 환상이 깨어져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특히 문단 내 성폭력 폭로와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작가들의 추행은 작가라는 존재에 씌워져있었던 과도한 신성성이 해체되는 과정인 듯하다. 또한 미투 운동의 본격적 촉발이 SNS라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대중평자들의 활발한 등장과 활동이 기대된다.

Tag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