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시인 특집] 좋은 시 10. 기억과 수감자 - 문보영 시인
[신인 시인 특집] 좋은 시 10. 기억과 수감자 - 문보영 시인
  • 문보영 시인
  • 승인 2018.03.0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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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에서는 데뷔 5년 미만의 신인 시인들 중, 작품이 뛰어난 시인을 선정하여 미발표 신작 시와 시에 관한 짧은 단상, 에세이 등을 연재합니다. 시인들의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억과 수감자
  
  
밤, 퍽퍽해
돌아누운 사람의 등처럼
  
창문은 안도하는 표정과 뜯어말리는 표정이 같았다
  
밤에 관해서라면
밤의 내부도 외부도 아닌 곳에서만 잠든다
  
아까시가 자랐다
  
창문은 커졌다
너무 큰 창문을 보면 
철창을 죽죽 그어주고 싶지
  
그러면
철창을 붙들고 놓지 못하는 수감자가 생길 것이고
  
내가 병드는 것과 
너의 동의가 무관하듯
식물들이 밤에만 자랄 것이고
  
아까시가 자랐다 밤에
  
창문과 너는 융통성이 없어
한번 보여준 것을 끊임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는 뭐든 잘 잊지 못한다
  
밤이 
창문을
돌아누운 너를
식탁보에 내린 어둠을
누그러뜨리는 동안
  
창문의 내부도 외부도 아닌 곳에서만 
나는 창문을 기억했다
  
옆에 없는 사람이 깰까 웅크려 잔다
어딘가의 안에서 지나가는 내가 보인다

 

시작 노트
  
막차를 탔습니다. 지하철이 끊겼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기관사는 언제나 빠짐없이,를 힘주어 발음합니다. 꼭 까먹고 내리지 않는 사람이 한두 명 있나봅니다. 느리게 발음되는 ‘빠짐없이’에서 약간의 짜증과 피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누군가 나에게 옵니다. 그러나 나가질 않습니다. 자는 척하며 앉아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지 않고 그냥 둡니다.

 

문보영 시인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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