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학회의 절박한 민주화와 광역화 개혁
한글 학회의 절박한 민주화와 광역화 개혁
  • 김정수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8.03.0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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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정수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한힌샘 주 시경(1876~1914)은 열 일곱 살 적부터 한겨레말을 깊이 파고들어 깨달은 것을 가르치고 펼치는 일만 하다가 서른 아홉 살에 떠났다. 한겨레말에 대한 연구, 교육, 운동, 세 가지가 그의 평생 사업이다. <국어(조선어) 문법>, <국어 문전 음학>, <국어 연구안>의 일부, <말의 소리> 등의 저술은 현대 국어학의 주춧돌이 된 그의 연구 결과요, 이화 학당, 숙명 여자 고등 보통학교, 중앙 학교, 휘문 의숙, 보성 중학교,  배재 학당 등 열 넷이나 되는 학교는 그의 교육 현장이었으며, 국문 동식회(1896~1906)와 국어 연구학회(= 조선어 학회/ 한글 학회)(1908. 8. 31~)는 그의 운동 무대였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학술 단체는 이처럼 세종 임금을 이어받아 한겨레말과 한글을 중흥시킨 주 시경과 그 제자들이 120 년 넘게 이끌어 왔다. “국문 동식회”라는 이름이 나타내듯이 말글 살이를 한결같게 하고자 한 주 시경의 염원은 조선어 학회를 통해서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이라는 언어 혁명으로 실현되어 오늘에 이르도록 글의 질서를 단숨에 높였고, <조선말 큰사전>(1957)으로 한겨레말의 규모를 반듯하고 넉넉하게 확보했다. 

뿌리와 열매가 이처럼 위대한 한글 학회, 오늘은 어떠한가? 큰 나무 같은 이 극로, 최 현배, 허 웅 회장들이 떠난 뒤로 모든 것이 유난히 작고 초라하게 변한 까닭이 무엇인가? 세종 때의 집현전은 영재들의 집이었고, 왜정 때의 조선어 학회는 당대의 국어학자와 애국 지사들이 집결한 민족혼의 화산이었다. 이제는 여러 많은 학술 단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데다 모이는 이도 고만고만하고, 뜨겁던 그 불김은 느끼기 어려울 만큼 사위었다. 그 원인은 학회의 안팎에 있다. 

밖의 원인을 먼저 보자면, 그 으뜸은 무엇보다도 1984년 5월 10일 학술원에서 태동한 국어 연구소다. 학술원에 속한 국어학자는 하나 같이 한자를 사랑하는 이들이다. 이 기관에서 애초부터 벌이고 결국 성공한 것은 한글 맞춤법을 비롯한 이른 바 4대 어문 규범의 개악이다. 1933년 이래 50 년 남짓 우리네 말글 살이를 이끌어 온 한글 학회로부터 어문 규범에 대한 주도권이 갓 태어난 국어 연구소로 넘어 가고 만 것이다. 1988년 1월 19일 문교부 장관의 이름으로 고시된 <한글 맞춤법>은 민간 단체의 규범을 국가 기관의 규범으로 승격시키노라는 명분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당시 군사 정부의 권력을 업은 한자 혼용론자들이 한글 전용론자들을 참패시킨 전리품이고, 민간 단체의 저작권을 정부가 강탈한 것이다. 한글 학회가 1992년 4월 <우리말 큰사전>을 어렵사리 완간했으나, 국립 국어 연구원에서 1999년 10월 <표준 국어 대사전>을 내어 역시 국가 기관의 권위로 눌러 버렸다. 이 연구원이 2004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속한 국립 국어원이 되었고, 한글 학회는 국립 국어원의 지원과 감독을 동시에 받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다음, 학회 안의 사정을 보자. 허 웅(1918~2004) 회장의 뒤를 이은 네 명의 회장은 한결 같이 모두 영남 사람들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11 명으로 된 이사진의 절대다수가 영남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은 14 년 동안 한 차례도 거른 적 없이 이사진에 들어 있는 영남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영남의 인재가 많은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전국 규모인 학술 단체의 임원이 이처럼 특정 지역에 편중된 곳이 또 있을까? 그 원인은 다름 아닌 회칙의 선거 규정과 이를 악용하는 지방 정실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학술 단체라는 명예로운 한글 학회의 정회원은 회비를 내고 총회에 참석할 의무 밖에 없고,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다. 오직 평의원 수십 명만이 평의원회에서 각자가 원하는 이사 후보 11 명씩을 적어 내면, 득표 순으로 이사가 선출되고, 여기서 선출된 11 명이 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한다. 평의원회에서 11 명씩을 적어 낼 때 다수를 차지한 특정한 사람들이 비밀스러운 통문을 돌리면 이사진 100 퍼센트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선출되지 않을 수 없고, 회장과 부회장도 같은 무리 안에서 호형호제하듯 나누게 마련이다. 특정 지역의 인사가 지속적으로 임원진을 독점하게 한 평의원회 또한 지극히 폐쇄적인 조직이다. 정회원은 평의원이 되거나 평의원을 추천할 기회도 권리도 없다. 오직 이사회만이 평의원을 영입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비민주적인 회칙에 불만이 있어도 정회원은 회칙 개정에 참여할 수 없다. 오직 간선에 간선을 거친 이사진만이 회칙을 개정할 수 있다. 10 년 전 김 승곤 회장 때에 이사 네 명이 학회의 민주화를 위한 회칙 개정을 시도했으나 다른 이사들의 방해와 평의원들의 무관심 때문에 실패했다. 전국과 외국에까지 지부를 두고 있는 한글 학회가 영남 지회와 다를 바 없이 전락하게 한 비민주적인 선거 규정과 폐쇄적인 평의원회를 청산하지 않고 정회원을 소외시키는 한 위축과 쇠락은 필연이다. 

한글 학회의 또 다른 위기를 직시하자. 임원과 평의원에서 철저히 배제된 정회원은 그나마 국어학 연구자에 국한된다. 국어학자들은 국어국문학회, 국어학회, 여러 언어학회 등 수십 군데 학회에 분산되거나 중복되게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 전공 분야가 날로 잘게 또 잘게 분화된 결과 학회도 다양한 이름으로 끝없이 생겨 나서 더러는 독립적인 유지가 어려워 질 정도다. 오늘의 한글 학회는 초창기의 빛나는 공적과 반 세기 동안의 군계일학 같은 영광은 아득히 지나갔고, 이제 수십 군데 군소 학회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어문 규범도 이제는 한글 학회의 소임이 아니며, 사전 편찬도 한글 학회의 주요 사업이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자세로 한글 학회를 중흥시킬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한글에 적극적인 관심과 전문 지식과 이해 관계를 가진 사람은 결코 국어학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글 학회의 사업을 지원하고 회관을 짓는 데 큰 재산을 기울여 도운 사람들도 국어학자 아닌 사람이 더 많았다. 한글 학회의 시대적인 사명은 여느 국어학 단체에서도 주관할 수 없는 큰 일을 찾아 도맡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글과 한겨레말에 관련된 모든 전문 분야를 통합하고 관련된 문제들을 포괄적인 시야로 해결해 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정회원의 자격을 국어학 연구자로 국한한 편협성은 당연히 타파해야 한다. 창설자인 주 시경과 그 후계자들이 한결 같이 한글과 한겨레말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며 운동을 구별하지 않았고 한글 학회의 사업이며 활동 자체가 그러했듯이 한글과 한겨레말을 연구하며 가르치며 보급하는 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회원의 자격을 개방해야 한다. 나아가 언어학, 문학, 철학, 사회학, 역사학 같은 인문학, 수학, 물리, 화학 같은 자연과학, 전자, 통신, 컴퓨터 등의 공학, 미술, 음악 같은 예술 분야 등 글자와 말을 다루는 모든 분야로부터 제한 없이 정회원을 받아들이고 학회의 시야를 넓히면,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모인 한글 학회는 새로운 100 년을 열어 갈 것이다. 

 

 

김 정수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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