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시인의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시리즈 3. ‘짠하다’ , 이지엽 시인
하린 시인의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시리즈 3. ‘짠하다’ , 이지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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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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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는 하린 시인의 시 단평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를 매주 연재합니다. 이번 감정은 "짠하다" 입니다.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 


아홉 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안 그냐.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 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 이지엽, 『해남에서 온 편지』, 태학사, 2000. 

 

<해설> 

‘짠하다’는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조금 언짢고 아프다는 뜻의 표준어다. 그런데 왠지 사투리 같은 느낌이 든다. 지방에서 워낙 많이 쓰는 단어이다 보니 그렇다. 전라도에서는 ‘짠하다’를 가여운 상태에 놓인 사람을 보고 연민을 느낄 때 주로 사용한다. “워메 짠한 거”라고 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받는 느낌은 꽤 진하다. 인식된 대상을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상태에 있구나,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심리를 갖게 한다.   

이지엽 시인의 「해남에서 온 편지」는 바로 그런 ‘짠하다’의 정서를 실감나게 보여준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전라도 해남에서 농사만 짓다가 늙게 된 혼자 사는 어머니다. 그 화자가 종신서원(終身誓願)을 신청한 딸에게 편지를 쓰듯 구수한 사투리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종신서원은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다짐하는 천주교의 의식이다. 자신도 혼자되어 쓸쓸하게 살아가는데 딸마저 그 외로운 길을 가야 하다니……, 어머니 입장에서 이것은 보통 짠한 일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살펴보겠다. 시인은 “아홉 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라고 도입부를 장식했다. 시 속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이 순탄치 못한, 질컥질컥한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배미는 다른 논과 구분되어 있는 논의 한 구역을 나타내는 말이다. 적은 땅이어도 배미를 여러 개 만들 수 있기에, 배미는 경제적 단위가 아니라 수많은 고통의 단위이다. 몸이 꾹꾹 쑤셔 어깨를 두드리는 노모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가운데 부분에서 시인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아가페적 사랑을 표출한다. 동시에 푸념과 신세타령을 살갑게 끼워 넣었다. 딸이 어련히 알아서(비민하것냐만) 잘 챙겨 먹겠지만 농사지은 쌀을 부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푸념하듯 늘어놓는다. ‘IMF사태(외환위기)’로 인해 오빠는 힘들어서 설날에도 내려오지 않았다. 기별만 딸랑했으니(다른 이유에서 안 내려 올 수도 있다) 자식 보고픈 어머니의 마음이 몇 겹이나 커졌을 것이다. 서운함에 어머니는 소주 한 잔 하면서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라며 신세타령을 해댄다. 딸조차(너할코) 수녀가 되어 ‘쏠쏠한’ 재미마저 사라지게 되었으니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을 것이다. 하느님을 위한 일이니 보고 싶어도 견디라고 딸이 당부한다. 그러나 닭똥(달구똥) 마냥 떨어지는 딸 생각을 주체할 수 없다.  

이 시를 읽게 되면 두 번의 짠함을 만난다. 첫 번째는 딸에 대한 어머니의 짠함이고 두 번째는 실감나게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머니에 대한 독자들의 짠함이다. ‘아, 어쩌면 좋은가?’ 어머니의 처지와는 다르게 복사꽃이 미치도록 환하게 피어있다. 복사꽃이 내려다보이는 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딸이 사는 먼 곳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짠한 울림이 여운이 되어 독자들 가슴 속으로 번져 간다. 

사실 이 작품은 사설시조이다. 처음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장르를 앞에서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 ‘시조’라는 용어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작품을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정성을 진하게 우려낸 현대시인 줄 알았는데 사설시조라니…….’ 하고 놀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설시조는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중장에서 시처럼 서정의 무늬를 자유자재로 형상화할 수 있다. 그러니 시와 시조의 경계를 만들지 말고 ‘현대성’을 가미한 현대시조를 한 편의 아름다운 운문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하린 시인 약력

2008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이 있고 연구서로는 정진규 산문시 연구가 있음.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음. 중앙대, 한경대, 광주대, 협성대, 서울시민대, 열린시학아카데미, 고양예고 등에서 글쓰기 및 시 창작 강의를 함. 첫 시집으로 2011년 청마문학상 신인상을, 두 번째 시집으로 제1회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함. 2016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시클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 사업에 선정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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