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열차 타고 서울에서 런던까지’, 평화 기원한 두 거장, 황석영과 르 클레지오
‘평화의 열차 타고 서울에서 런던까지’, 평화 기원한 두 거장, 황석영과 르 클레지오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3.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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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상훈 기자>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얼굴에는 먼지와 재를 뒤집어쓴 단발머리 여자아이가, 놀라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눈은 전쟁의 공포를 질문하면서 동시에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 사진이 저의 문학적 이미지의 자양분을 제공해줬다.”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 등으로 수식되는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한국을 찾아 황석영 작가와 대담을 나눴다. 3월 12일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교보인문학석강에서 두 작가는 서울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대담 도중 르 클레지오는 한국 전쟁 속 한 사진이 자신의 문학적 이미지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밝혔다. 

ⓒ NARA

르 클레지오는 자신의 아버지가 구독하고 있던 잡지에서 한국전에 관한 사진이 올라왔고, 사진을 통해 한국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한국전쟁을 잘 몰랐지만, 3차 대전에 버금갈 정도로 큰 희생이 있었고, 서울은 완전히 폭파된 상황이었다.”며 “(사진 속) 아이의 눈은 전쟁의 공포를 질문하면서 동시에 희망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사진이 문학적 이미지의 자양분을 제공해줬다고 말한 르 클레지오는 “이 이미지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것이 제가 ‘빛나’를 쓴 것들”에 이어졌다고 밝혔다. 

"빛나" 표지

“빛나 – 서울 하늘 아래”는 르 클레지오가 지난 17년 말 출간한 소설로,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는 르 클레지오가 서울의 사람들과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인 ‘빛나’가 불치병을 앓는 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되며, ‘빛나’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 총 다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실향민, 이웃 간 연대와 관계의 이야기, 버려진 아이와 그 아이를 품는 간호사, 탐욕과 거짓에 희생당하는 가수, 빛나 자신이 스토커로 인해 느낀 일상의 공포와 도시에서의 삶 등 소설 속 담긴 다섯 가지 이야기는 외국 작가가 썼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서울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르 클레지오 <사진 = 김상훈 기자>

사진 속 아이가 보여준 공포와 희망을 소설 “빛나 – 서울 하늘 아래”까지 이어온 르 클레지오는 폐허에서 재건된 서울의 모습에서 시대적 상징을 느꼈다며, 남북한의 긴장 관계가 해소되고 평화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르 클레지오는 “사진 속 아이가 평화의 기차에 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평화의 기차’란 황석영 작가가 지난 2008년 제안했던 것으로, 세계적 작가들이 열차에 타 파리에서부터 베를린을 거쳐 모스크바, 옴스크, 이르쿠츠크, 울란바토르, 베이징, 평양, 개성, 서울까지 대장정을 통해 세계화합을 추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르 클레지오는 “이 이야기를 듣고 평화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상징이라 생각했기에 바로 동의했다. 기차가 떠나는 순간 1등으로 타겠다고 이야기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황석영 <사진 = 김상훈 기자>

황석영 작가는 “여태까지 진행을 못 하다가 정권이 바뀌어 다시 진행할 생각”이라며 “내년은 3.1운동 100주년이고 8.15 광복절도 대단히 중요할 텐데, 내년 광복절을 기점으로 기차를 만들어 타고 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대담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주요 문제로 떠오른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됐다. 르 클레지오는 “여성들이 독립하고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생각한다.”며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봉급, 동일한 직종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신촌의 한 동네를 걸을 때 ‘내가 여자라면 이런 곳을 걸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여성들이 대중교통을 탈 때, 외진 동네를 거닐 때 두려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석영 작가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나서, 망명하고 징역을 살며 10년을 허비하고 감옥을 나온 후에, 우리가 독재자와 싸우면서 독재자의 방식을 체득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때부터 여성의 몸으로 세상을 보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에 작품 속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키며 역할 바꾸기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에 이르러서는 “여성의 분노 또는 수치감, 모욕감이 일상 속에서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이라고 표현하면서도 “미투가 만인이 공감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운 나쁜 사람은 걸리고 운 좋은 사람은 안 걸리고 지나가고 있는데, 이게 오랫동안 지속 되서는 안 될 것”이지만 “토론이 좀 더 심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부터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행사 후 사인회가 진행됐다 <사진 =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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