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제2장 2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살 것 인가 2편.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 제2장 2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살 것 인가 2편.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3.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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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2장 1편 보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이 중요한 일을 해낸 사람이 바로 공자孔子입니다. 감성적 연대의 힘은 바로 문文에 의한 통치 기술입니다. 공자, 그는 전해오던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역경易經]을 찬술하고, [예기禮記]와 [춘추春秋]를 다듬는 등 중국의 문화와 문명을 기초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공자를 문왕文王이라 받들며, 그를 모신 사당을 문묘文廟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처음 홍주향교洪州鄕校에 갔을 때, 공자를 모신 전각, 대성전이 매우 큰 것을 보고 자못 놀란 바 있습니다. 그 전각 중앙에는 공자의 상 대신 다음과 같이 한자로 써진 위패가 위엄 있게 박혀 있었습니다. 문자가 하나의 사물화된 이미지로 나를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大成至聖文宣王"

여기, 대성지성문선왕은 ‘크게 이룬 최고의 성인으로 문을 베풀어준 왕’이란 뜻입니다. 즉 공자는 중국의 여러 나라 소리를 집대성해서 [시경詩經]을 찬술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성인으로서, 문의 이치를 백성들에게 베풀어준 왕이라는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 ‘왕’이라 칭하는 것은 대역죄로서, 국가반역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공자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은 그의 위상이 어떤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즉 공자는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질서와 문명을 상징하는 자입니다. 서양에서는 유교를 ‘아시아적 가치’ 또는 ‘Confucianism’이라 하는데, 이는 공자를 공부자孔夫子, Confucius라 한데서 나온 말입니다.  그만큼 공자는 동양사상, 특히 중국의 전통 사상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성인으로 추존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공자, 그는 동양사상에서만 본다면 지존 중의 지존입니다.

이런 공자도 그가 살던 춘추시대라는 시대적 공간에서는 그렇게 인기를 누리지 모했습니다. 시대의 스승을 자처하던 공자는 제후들에게 상앙, 한비자, 이사 같은 법가의 현실적인 해결책보다는 ‘인仁’과 ‘예禮’라는 이상적인 정치사상을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나라 문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노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는 당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주周제국을 가장 이상에 부합한 나라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가집단은 선왕의 도를 받들고-유가에서 이상으로 생각하는 ‘군자君子’란 말은 사실 ‘임금, 봉건제후의 아들’이란 뜻입니다-황제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공자 사후 그를 따르는 유가집단이 진시황 때에 이르러서는 분서갱유焚書坑儒-분서갱유는 진시황이 봉건제를 옹호하고 군현제를 반대한다고 하여 이런 사상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시경], [서경], [춘추경] 등 유교서적을 불태우고 법령을 어긴 방사, 유학자 등 460명을 생매장한 일을 말합니다-라는 큰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한무제漢武帝 이후 나라가 안정을 되찾게 되자 그가 비로소 재평가되었습니다. 

공자의 사상을 ‘명실론名實論’과 ‘인성론人性論’으로 대별해 보것습니다. 먼저, 공자의 명실론인 정명론. 명(이름, 말)과 실(실제, 사물)를 어떻게 볼 것이냐-이를 현대 철학용어로 보면 ‘사유’와 ‘존재’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말과 사물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이냐, 이건 사실 인류보편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인류사는 말과 사물의 길항의 역사입니다. 말이 실재보다 우선한다면 실재론realism에 가깝고, 사물을 말보다 우선한다면 유명론nominalism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실재론이 관념론이라면, 유명론은 유물론입니다. 실재론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실상에 바탕하지 않고 허구적 관념, 명에 따라 현실을 보고 있는 형이상학적 성격을 지녔다면, 유명론은 있는 그대로의 감각적 경험 현실을 중시하는 형이하학적 성격을 지녔습니다. 즉 실재론이 ‘보편자’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유명론은 ‘개별자’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로크, 흄, 베이컨 등 영국을 중심으로 감각에 바탕한 귀납적 사고가 발달하고, 이 귀납적 사고가 자연과학적 유명론을 낳았으며, 마르크스의 말대로 유명론이 유물론의 선조가 되어 유럽 자본주의의 기초를 다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이른바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은 매우 보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명과 실, 즉 이름과 사물, 사유와 실제의 관계에서 명 즉, 말을, 담론을, 도덕적 가치를 실제보다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실질적 정의real justice보다 형식적 정의nominal justice에 더 비중을 두었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또한 그가 왜 춘추시대라는 가치의 혼란기에 이름名을 바로잡으려正 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암시합니다. 인간의 행위 동기가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라는 현실을 일반적으로 인정한다고 가정할 때, 그의 이상은 현실과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개별적 이익보다 보편(인의도덕)의 가치가 당시 난세에 통용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정은 그대로 인성론에도 연결됩니다. 가치의 혼란기에 명실론이라는 언어논리名家가 대두되고, 인성론이라는 인류학적 지식이 요구되었던 것은 정의가 실종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성론人性論은 지식인들의 관념놀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중국이 처한 위기상황의 산물입니다. 즉 중국적 인성론은 주대의 영화가 무너지고 춘추전국시대라는 사상 유례없는 대혼란과 무질서가 만연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무법적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안정과 질서를 되찾아 다시 옛날의 주대 같은 번영과 행복을 누릴까 고심하던 시기의 역사적 결과물입니다. 이 중심에 바로 ‘인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악설에 기반을 둔 근대정치철학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당시 수백 개의 공화국으로 사분오열해 있던,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까 고심하던 이태리적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자 인성론 또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되었던 춘추시대의 분열적 상황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자는 “본성은 서로 가까운 것이지만, 습성이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性相近也, 習相遠也.([논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처음에는 서로 비슷하지만, 자라면서 사람에 따라 습성이 달라지면서 서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이렇게 도덕절대주의性相近也와 도덕상대주의習相遠也를 함께 제시했습니다. 곧 동양 인성론의 씨를 뿌린 사람은 다름 아닌 공자였습니다. 그러나 잘 보면 학문과 수양의 차이에 따라 사람들이 서로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습관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도 습관은 자칫 본성을 멀어지게 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임을 볼 때, 그는 결국 도덕 절대주의에 손을 들어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가 씨를 뿌린 인성론은 춘추시대보다 더 엉망진창이던 전국시대의 에피고네epigone들에게 이어졌습니다. 그 중에 맹자孟子가 공자 우파를 대변하며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순자荀子는 공자 좌파를 형성하며 성악설性惡說을 설파했습니다. 자, 여기 계보학적genealogical으로 볼 때, 공자-맹자-유비가 이어지고, 공자-순자-조조가 연결되고 있다는 거, 이건 참으로 재미있는 분류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먼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우리는 먼저 인생론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즉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고 가치 있는 삶인가. 왜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이런 '당위should be'를 제시해주는 것이 인생론의 핵심입니다. 

인간의 행위를 놓고 평가하는 윤리적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 도덕 절대주의는 ‘가치가 존재보다 우선한다’고 봅니다. 이에 따르면 어떤 행위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절대적인 도덕적 규정력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너는 결코 누구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격언처럼 어떠한 존재 상황에서도 변할 수 없는 칸트적인 절대적 의무감이 모든 행위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그럽니다. “나는 세상이 비록 나를 버리더라도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않겠다”라고. 관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노인과 어린이는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용장 황충과 겨루어 이길 때도 그가 노인임을 알고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 도덕 상대주의 ‘존재가 가치를 결정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에 따르면 어떤 행위는 특정한 상황을 반영한 가치판단의 일종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 시 불가피한 상황에서 적을 죽이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공한 얘기지만 조조는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도피하던 중,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이를 알게 될까 저어해서 여백사라는 아버지의 친척뻘 되는 사람까지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후환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차라리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이건 맨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경악시킬만한 참으로 무서운 신념으로, 여기서 우리는 조조의 현실 우선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고는 자신이 처한 존재적 상황을 이상적 가치라는 원칙보다 더 중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았을 때, 난세에 이런 불상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자, [삼국지]의 이야기도 이렇게 보니 ‘가치 절대주의’와 ‘가치 상대주의’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의명분을 위해서 나를 희생할 것이냐 아니면 실리추구를 위해서 대의를 버릴 것이냐. 이것은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보편적인 도덕률이기 때문에 우리와 항상 가까이 있는 생활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으리(의리), 으리(의리)하는 세상, 몸이 불편한데도 친구가 부르니 제백사하고 무조건 나가야 할 것인지, 아니먼 내 몸이 그러니 담에 보자고 구실을 달 것인지...

우리에게는 조선후기 ‘북벌北伐’이냐 ‘북학北學’이냐를 두고 벌인 역사적인 논쟁사가 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조선 후기의 역사는 이 하나의 키워드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즉 명청明靑이 교체하고 권력이 재편되고 있는 마당에 명과의 사대관계를 지속시켜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를 놓고 권력이 대쪽처럼 둘로 쪼개지고 당쟁이 일상화되고 왕과 신료들의 생사가 결정되고...결국 나라가 망하기까지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이 중대한 문제를 제대로 톺아보지 못해서 생긴 문제임을 볼 때, 명분과 실리와 관련된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유비(>관우)처럼 명분을 따를 것인지, 조조처럼 실리를 추구할 것인지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난제aporia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저 천둥번개 같은 진시황, 유방, 조조, 모택동 등 역사의 창업자들이 모두 성악설을 신봉, 즉 인간은 본래 아귀처럼 욕망을 쫓는 존재이고, 따라서 강력한 법질서와 예악을 통한 통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실험해 성공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일반화해 볼 때, 우리는 성선설이 대중기만적인 지적 사기에 불과한 허상의 이데올로기였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즉 [삼국지]는 하나의 서사문학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인생론에 대해 실로 많은 암시hint를 던지고 있는 교과서 밖 교과서이지 결코 의혹된 책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의도덕이라는 인문적 가치는 깡, 무시해도 되는 걸까요(계속...)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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