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집 서울, '그립습니다, 금요문학마당' 통해 최서해 소설가의 문학세계 조명해
문학의 집 서울, '그립습니다, 금요문학마당' 통해 최서해 소설가의 문학세계 조명해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3.17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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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16일 오후 3시, 명동역 인근에 위치한 문학의 집 서울에서는 작고한 문인을 기리고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학행사 ‘그립습니다 금요문학마당’이 진행되었다.

<서해 최학송(최서해)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금요문학마당의 주인공은 서해 최학송 소설가(이하 최서해)였다. 올해로 탄신 107주년, 작고 86년이 된 최서해 소설가는 1924년 초 동아일보에 단편소설 ‘토혈’을 발표하고, 10월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고국’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는 ‘기아와 살육’과 ‘탈출기’ 등이 있으며 ‘카프’의 맹원, 매일신보의 학예부장으로 활동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이명재 평론가는 “최서해 소설가는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극도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로부터 호된 학대를 당했으며, 열 살 무렵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로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막노동도 하고 산지기도 하고 별 고생을 다했다.”는 것. 그러며 이 평론가는 이런 성장환경에 관해 “최서해가 서자 태생이지 않나”하는 추측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명재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어 “이분은 이런 뼈저린 체험을 소설로 다 썼다.”며 “가장 심란하고 거짓 없는 리얼리티를 살려 당시에 각광 받았다.”고 전했다. 서구적, 사회적 열풍이 불어와 “상상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 유행하던 1920년대 초에, “뼈저리게 땀 흘리고 밥 굶고 괄시 받으며 산 생생한 체험”이 있는 최서해 소설가의 작품은 문학사에 빛을 발했다는 것.

이런 최서해 소설가는 “카프의 창립 멤버”이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이명재 평론가는 이야기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원고료 위주의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어 열일곱 정도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것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며, 네 차례나 결혼한 것은 “가난이 지나쳐 배곯는 일이 잦으니 아내들이 집을 나가거나 일찍 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이렇듯 평생 동안 가난한 삶과 싸워온 최서해 소설가는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위병이 도져 세상을 떠났다. 이명재 평론가는 “당시 백병원을 지은 백인제 의사가 집도를 했는데 너무 못 먹어서 위에 밥이 들어가는 통로가 좁아지는 위 협착증이었다.”고 전했다.

<이명재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한편 이명재 평론가는 최서해 소설가는 “한국문단에 샛별처럼 나타난 혜성 같은 존재”이지만, “상상을 무시하고 실 체험으로만 써서 삼사년 각광받고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상상이라는 바탕 없이 현실적 체험해만 입각해서 쓰다 보니 “홍염을 발표한 뒤로는 (체험이) 바닥이 나다시피 해서 글을 못 썼다.”며, 그 부분이 “문학사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것. 작품 역시 “자신의 가난에 대해서 말했을 뿐 의식화된 사회주의는 아니었다.”는 것이 이명재 평론가의 분석이다.

하지만 최서해가 “좋은 환경에서 컸으면 더욱 오래 살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이명재 평론가는 최서해의 시, 아동문학, 시조, 번역, 수필 등의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 “우리 한국 문학사를 좀 더 튼튼하게 올바르게 정립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이날 ‘그립습니다, 금요문학마당’에는 낭독회와 축하공연 등 다양한 코너들이 마련되었으며, 많은 문인들의 관심 속에서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한편 ‘문학의 집 서울’은 오는 21일 오후 3시, 김용택 시인이 함께하는 ‘수요문학광장’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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