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제3장 1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볼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 제3장 1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볼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3.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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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3, 어떻게 볼[見] 것인가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철학을 흔히 시대의 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시대야말로 철학의 어머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철학 또한 당대의 산물로, 그 시대에 태반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흙이 없고서 꽃과 열매를 기대할 수 없듯이, 사상과 철학 또한 당대 현실을 떠나고서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즉 치세에는 치세의 철학이 있고, 난세에는 난세의 철학이 있는 이유입니다. 한말위진漢末魏晉시대라는 난세에 정통론正統論보다 시세론時勢論이 더 우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철학사적으로 볼 때, 위진 시대의 철학이 도가에 바탕을 둔 ‘현학玄學’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 현학의 대표자 ‘왕필王弼’의 주저가 [주역주周易注]이자 [노자주老子注]였던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주역周易]은 고정이나 정체를 거부하는 동양 사상의 자연관, 우주관을 대표하는 근본 경전입니다. 즉 [주역周易]은 변화의 서입니다. [노자老子] 또한 이런 ‘변화’를 핵심으로 하는 도가의 근본 경전입니다. 이는 곧 왕필이 ‘안정’보다는 ‘변화’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자, 시대와 철학의 관계를 잠시 보것습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열국列國은 제자백가 가운데 법가(상앙, 이사)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진秦에 의해 통일되었습니다. 난세에는 과연 가혹하고 강력한 법치가 빛을 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의 가혹하고 강력한 법치주의는 백성의 반발(진승, 오광의 난)을 샀고, 이로 인해 진은 곧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초패왕 항우와 겨뤄 중국을 재통일한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도가적 성격이 강한 황로학黃老學을 채택했습니다. 법가의 끈을 좀 헐렁하게 풀어놓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은 소출을 증대시켰고 산업을 증진시켰습니다. ‘자유’와 ‘개성’의 문화가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꽃은 또 시들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위정자들이 볼 때 치세에는 ‘안정’과 ‘질서’가 중요한데 ‘자유’와 ‘개성’은 불안과 무질서를 초래한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이에 한무제漢武帝는 “백가를 배척하고, 유가만을 숭상한다罷黜百家, 獨尊儒術"는 이념을 채택하여 중앙집권체제를 다지고 백성들의 손과 발, 입을 묶어놓았습니다. 그것은 한제국을 일시적으로 세계최대의 제국으로 번영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했습니다-이 과정에서 서역을 개척하면서 인도의 불교가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고, 이 불교가 중국의 도교와 만나 격의화格義化-‘격의格義’란 ‘의미를 헤아려 바로잡고 맞춘다’는 뜻으로 불교를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유교, 도교 등 중국 고유의 사상 속의 유사한 개념이나 용어를 빌려서 설명하는 방법을 말합니다-되먼서 ‘공空’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대승불교로, 선불교로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한대 유학은 기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 소실된 유가 전적들을 복원한 데서 온 문제입니다. 유가 전적들의 복원과정에서 시詩, 서書, 춘추春秋 등 서책들에 대한 대대적인 경전화canonization가 진행되었습니다. 경전화라는 것은 마치 죽은 자를 성인으로 공식 선언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미 시의를 상실한 서책에 새롭게 신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詩는 [시경詩經]이 되고, 서書는 [서경書經]이 되고,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관우關羽가 보았던 춘추春秋는 [춘추경春秋經]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서가 성경이 된 것처럼 서책의 신격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술 더 떠서 동중서董仲舒라는 유학자가 나서서 “하늘은 변치 않는다. 도도 변치 않는다天不變 道亦不變”라고 유학을 절대화시켜 놨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비교적으로 볼 때, 로마에서 한때 탄압을 받던 원시기독교가 니케아 종교회의를 계기로 국교가 되고 신약이 하나의 경전으로, [성경聖經]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유사합니다. 어떤 서책이, 가령 [춘추]의 경우 이것이 사서의 하나이면 기술된 내용에 대한 학술적 차원에서의 비판 작업이 가능해지지만, 이것이 [춘추경]으로 경전이 되는 순간, 기술된 내용에 대한 비판은 바로 경전을 곡해하고 어지럽히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되고 신성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 유교는 종교적 신비주의에 들씌워진 무시무시한 국가종교가 되었음은 물론 선진고경先秦古經들의 한 마디, 한 구절이 절대적 권위를 갖게 되고 그 위엄을 더해가면서 경전들은 다만 그악한 통치의 이데올로기로, 재물과 관직을 얻는 치부와 등용의 수단으로-요즘말로 고시과목으로-백성들의 일상을 옭아매는 도덕의 올가미로 작용하면서 통치사상이 지녀야 할 치세의 본래 이념은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권력의 중심에 선 중앙관료들과 환관, 외척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이런 어지러운 틈에 동탁, 원소 같은 지방의 군벌 호족豪族들이 득세하면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후한말의 난세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난세는 마치 종양이 몸을 망치게 되는 것처럼 내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특히, 혈족을 중심으로 대를 잇다보니 어린 황제들이 연이어 등극하게 되고 권력의 중심은 자연 그의 어머니인 황태후와 오빠인 외삼촌, 즉 외척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황제가 커가면서 이들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자연 환관과 손을 잡게 되니, 이 과정에서 환관과 외척 간의 업치락뒤치락하는 싸움 끝에 황제 보호를 빌미로 군벌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고, 민중들은 민중들대로 못살겠다고 붉은 두건黃巾을 쓰고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난세에 태어난 ‘현학玄學’이 기성 이데올로기인 유교에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때의 유교는 번쇄한 관료적 형식주의로 가득 찬 것입니다. 한시漢詩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한 편의 한시를 지으려면 까다로운 운율규칙을 준수해야 하고, 선진고경에 대한 유교적 소양을 지니지 않고서는 애초부터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배계급은 번거로운 형식의 울타리 안에 자신들을 가두고 백성들과 자신들을 분리시켰던 것입니다. 일종의 ‘구별짓기distinction’라는 계급적 문화인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유교의 형식주의에 심리적 반감antipathy을 갖고 있는 ‘현학玄學’은 자연 간결함을 중시하고, 실질을 강조하며, 현실을 우선하고, 변화를 따르고자 했습니다. 왕필은 [주역]을 주해하면서,

“갑이라는 것은 새로 지은 법령이다. 새로 지은 법령은 옛 법령으로 책할 수 없다.”

甲者創制之令也 創制不可責之以舊

며 새로운 해석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즘말로 ‘철학적 해석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통적인 상수역象數易에 반발한 의리역義理易입니다-[삼국지]에서 유비가 노식과 정현의 제자로 소개되는데, 이 정현鄭玄이라는 대학자가 바로 상수역 학자로서 왕필과 적대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신성한 경전에 칼을 들이댄 것으로 재현과 재구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덕절대주의라는 정통론보다는 ‘시세론’, 즉 존재가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도덕상대주의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왕필은 노자의 사상을 토대로 ‘무無’를 근본으로 하는 ‘현학玄學’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노자주老子注]에서 말했습니다.

“뭇 신묘함이 모두 현을 쫓아 나온다.”

衆妙皆從玄而出

여기, 무無의 의미에 가까운 ‘현玄’이라는 워딩이 무철학의 모태이자 현학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왕필은 이론적으로 현질서(有, 漢)보다는 새로운 질서(無, 魏)에 명분을 달아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개인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사회 또한 과욕을 잠재우고 참된 소박지도素朴之道를 회복함으로써 영원한 안녕과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간이簡易함을 모토로 하는 무의 사상은 당시 중병에 처한 유교의 거대하고 복잡한 예교질서에 대한 훌륭한 처방전이었던 것입니다.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실매듭을 단칼에 시원스럽게 베어낼 수 있는 쾌도난마快刀亂麻를 요구하던 당시, 왕필王弼의 현학이 왜 그 시대의 딸이 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2편 이어서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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