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제3장 2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볼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 제3장 2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볼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3.2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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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3장 1편 보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여기, 쾌도난마 같은 칼을 휘두른 영웅 중에 조조曹操가 돋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무제기武帝記’)는 말했습니다.

“말쑥한 성정을 지니고 절약하고 검소할 뿐 화려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雅性節儉 不好華麗

조조의 악부시樂府詩가 민요를 닮아 말쑥하고 꾸밈없는 이유가, 형식에서도 까다로운 한시보다 자유로운 형식의 산문시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조의 근검 정신은 ‘무無’를 그 신조로 하는 현학과 통하는 것으로 명분名分보다는 실리實利를 추구했던 그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즉 그는 출신이나 가문 등이 아닌 실력이나 능력에 의해 인재를 등용하는 실용정책으로 인재가 모여들게 했습니다. 즉 그는 요즘말로 해서 ‘정실주의nepotism’보다는 ‘실력주의meritocracy’를 따랐습니다. 비록 도덕적인 약점이 있더라도 실력만 좋으면 기용唯才是擧했던 것이니-그는 말했습니다. “만약 반드시 청렴한 자만을 등용했었다면 제 환공이 어떻게 패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천하에 위수 가에서 낚시질하는 천한 신분의 재능 있는 자가 없다고 할 수 있었겠는가. 또 형수와 내통하고 뇌물을 받았으나 무지에게 인정받았던 진평과 같은 인재가 없을 수 있겠는가”-그가 일반적인 도덕과는 좀 거리가 있었고, 세상의 통념이나 관행과도 거리가 있던 개성을 지닌 정치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소농민을 유랑민으로 만드는 지주들의 겸병兼倂을 일절 금하는 과감한 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원씨가 다스릴 때는 호족들이 제멋대로 굴고 친척들이 땅을 겸병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가난하고 약하여 조세를 대신 납부해야 했으니 가재를 팔아도 그에 따를 수가 없었다.”

                                               - 조조, ‘억겸병령抑兼倂令’

이게 바로 조조가 내린 ‘토지 겸병을 금하는 명령’입니다. 조조, 그는 백성들에게는 인자한 군주였으나 지주계급에게는 잔혹한 저승사자였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왜 조조가 ‘악’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에서 오랜 동안 지배담론으로 기능해왔던 유교질서 체제와 그 안에서 이득을 보고 있던 지주계급들의 지배적 정서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지주계층이 주로 지식을 재생산해 왔고 권력을 장악해 왔기 때문에 유교가 가장 좋은 이론이고, 군자가, 유비가, 이를 따르는 관우가 가장 훌륭한 삶의 모델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지 당대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자신들에게 이롭지 않으먼 백성들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조는 조선시대 주자학의 정통논쟁 때문에 맹자-성선설에 밀려 기휘 대상이 되었던 순자-성악설처럼 금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고 반대로 유비, 관우는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역사서 [삼국지]가 ‘위정통魏正統’을 역사적 사실로 기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 역사가 한漢-위魏로 이어져 오고 있는데도 소설[삼국지]에서는 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기대고 있는지를 해명하는 하나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사상은 그것을 낳은 사회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즉 정통문제는 당시 중국적 사회 현실의 반영입니다. 송대宋代에 중국의 봉건 철학을 완성한 사상가 주희朱熹는 내적으로는 지주와 전호佃戶(소작인)와의 계급 갈등, 외적으로는 한족과 오랑캐金와의 민족 갈등이라는 내, 외부적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이 모순을 개혁하려고 왕안석이 여러 가지 신법新法을 내세웠으나 대지주들인 기득권의 반대로 실패하자 민중의 삶은 더욱 도탄에 빠지게 되고,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복적인 역사적 형식으로서의 [수호지水湖志]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이렇게 하여 주자가 표면상의 구실로 내세우며 들고 나온 명분론이 이른바 ‘촉한정통론’입니다. 그 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재해석한 [통감강목]에서 촉한(유비)을 정통으로 보았습니다. 군신, 부자, 부부, 장유 간에 유별이 있는 것처럼 지주와 전호(소작)간에도 신분의 차별이 있고, 중국과 이민족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촉한 정통론’의 실질적인 이유는 이게 아닙니다. 주자는 지주계급(형세호形勢戶)을 싸고돌았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군웅들을 제거하고 정치 경제적으로 개혁을 단행, 공리공론보다는 실질을 추구하고 겸병을 폐지하는 등 지주계급의 이익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피해를 본 계층은 지주계급이고 이들을 사상적으로 지원하였던 유교세력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조는 나라의 군주로서 지주계급의 이익보다는 백성의 이익을 우선하였기 때문입니다. 후일 지주세력인 사대부가 권력을 장악하자 조조를 뱀과 전갈 보듯 하고, 유비를 성군으로 조작하여 정통으로 내세우게 되었던 내부적인 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역사 이래 중국은 끝없는 오랑캐의 외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특히 송대 이후, 중국 한족漢族은 여진족金에게 시달림을 받았고, 후일에도 몽고족元과 만주족淸에게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중국민중의 자존심은 심하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에 몽고족과의 민족 모순이 팽배한 중국적 사회 현실이 촉한 정통론을 지지하게 된 현실적인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삼국지]는 몽고족元에 대한 한족明의 민족적 항쟁의 의미가 배경에 깔린 작품입니다. 따라서 실제 역사와 다르게 유교를 기치로 내건 정통 한족의 피를 받았다는 유비를 그 중심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魏 정통론’과는 달리 ‘촉한蜀漢 정통론’을 내세워 명분에 빠지기 쉬운 어리석은 민중을 중국적 국뽕의 현실로 내몰고 인물 묘사를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몰고 간 배경입니다.

그는 글 읽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천성이 너그럽고 온화하고 말이 적으며, 기쁘거나 화나거나 도무지 얼굴에 드러내지를 않고, 원래 마음에 큰 뜻을 품어 오로지 천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키가 7척 5촌이요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팔은 남달리 길어서 두 손이 무릎을 지나며, 눈은 자기 귀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맑았으며, 얼굴은 옥처럼 깨끗하고,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붉었다.

                                                     - 나관중, [삼국지], 창비 

요약하자먼 그는 지적인 데가 없는 게으른 군자이지만 야심을 지닌 인물로, 그 사람의 풍모를 보자면 마치 요순 같은 성군聖君의 상이라는 얘깁니다. 허구도 이런 허구가 없는 것입니다. 

한漢-촉한蜀漢을 정통으로 하는 중국식 ‘국뽕’ 신화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삼국지]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조조를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찌되었거나 대체 조조의 진면목은 어디에 있을까 보것습니다(계속~)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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