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제4장 1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쓸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 제4장 1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쓸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3.2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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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4, 어떻게 쓸[作] 것인가 


"장강은 넘실넘실 동쪽으로 흐르는데
물거품처럼 사라진 영웅들이여
시비승패 모두 눈 깜짝할 사이에 공으로 돌아갔구나
청산은 옛날 그대로인데
붉은 석양은 몇 번이나 지나갔나
......

                                                   - 나관중, [삼국지] ‘서사’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오늘날에도

중국의 출판물 가운데 여전히 가장 널리 팔리고 많이 읽히는 책이 [삼국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중의 하나로서, 이 책이 글쓰기, 문장의 백과사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삼국지]는 하나의 영웅소설로서 소설가 황석영의 말대로, ‘장강대하와도 같은 장엄한 인간드라마’입니다. 그 비교불허의 서사적 재미와 극적 케미가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시 또한 그에 못지않은 비중으로 전편을 감싸고 있는 풍요한 작품입니다. 위의 ‘서사’처럼 [삼국지]를 펼치면 우리는 첫 장부터 대륙적이고 도가적 기풍에 넘치는 장쾌한 시를 만나게 됩니다. 세상 모든 일이 신기하기만 했던 나의 소년 시절, 시골사랑방 한 구석에서 첫 장이 떨어져나간 고본 [삼국지]를 펼치던 그때의 그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여기 ‘서사’의 영향이 그만큼 강력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을 가리키는 말 중에 ‘지대물박地大物博’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중국은 과연 땅덩어리도 크지만 재물도 많습니다. 자연 인물도 많고 시인묵객 또한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히 인물백과, 시백과의 나라입니다. 그리하여 기우장대한 영웅들의 활약에 넋을 빼앗기다가도 잠시 은칼처럼 빛나는 시의 광석들을 대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대붕처럼 하늘을 나는 시인이 되어가는 느낌을 갖곤 했습니다. 그만큼 [삼국지]의 정조는 수많은 시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중에 ‘조조’는 단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지적, 정신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유비는 무공도 별 볼 일 없지만 시문은 전무합니다. 그렇게도 떠받드는 유비라는 영웅에게서 아름다운 시 한 점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비록 허구적 인물은 아니더라도 매우 덧칠해진 인물이었음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키가 7척 5촌이요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팔은 남달리 길어서 두 손이 무릎을 지나며, 눈은 자기 귀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맑았으며, 얼굴은 옥처럼 깨끗하고,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붉었다.

                                                     - 나관중, [삼국지], 창비 

여기, 유비에 대한 인물묘사 대목을 보면 동양 고대의 영웅적 캐릭터에 대한 전형적인 표현으로 그가 매우 허구적이고 이상적인 인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청나라의 역사학자 장학성의 말대로 삼국지가 7할은 사실이고 3할은 허망한 것七實三虛이라는 것, 그러니 소설은 하나의 이상적, 관념적 굴절형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상적, 관념적 문장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동안 ‘문장은 도를 실어 나르는 도구文者 載道之器’에 불과하다는 재도론載道論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해왔습니다. 여기서 ‘도道’는 유교를 말합니다. 그러니 유교적 재도론은 도덕성을 중시하여 비유교적 이념을 배제하는 구실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장은 다만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수단에, 그릇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글이 시작될 때에는 먼저, 성인군자의 말씀이나 선진고경, 특히 [시경]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문학으로 인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만 열었다 하면 공자孔子 말씀이요, 글만 썼다하면 [시경詩經] 구절이었습니다. 들뢰즈/가타리([안티 오이디푸스])는 재현은 욕망의 억압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슬픈 코스프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조조 이후 ‘문장은 경국의 대업이자 불후의 성사文章經國之大業 不朽之盛事’라는 새로운 문장관이 형성됨으로써 재도론에 대한 반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문장을 경국의 ‘대업大業’으로 본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즉 경국론經國論에서는 문장을 도의 말단으로 취급하던 사고에서 벗어나 문장을 근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장 그 자체로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즉 문장을 수단으로 보던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 문장을 목적으로, 자율적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문학은 드디어 유가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개성의 해방을 촉진하며 심미성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조조曹操를 비롯, 그의 아들 조비曹丕, 조식曹植과 왕찬王粲, 진림陳琳 등이 주도가 되어 ‘건안문학建安文學’이라는 중국 문학사상 황금기의 꽃을 피우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조曹操!

그는 유비와 달리 날카롭고 세련된 모습을 지녔다고 합니다(이문열 평역, [삼국지], 민음사). 이는 그가 뛰어난 정치적, 군사적 역량 못지않게 출중한 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그는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을 다듬고 보완하면서 무인으로서의 기본기를 닦았습니다. 그는 일찍이 주해한 [손자병법] ‘서문’에서,

“내가 보기에 병서와 전술을 다룬 책은 많으나 손무가 지은 것이 심오하다.”

吾觀兵書戰策多矣 孫武所著深矣

고 했을 정도로 병서와 전술서를 두루 꿰고 무공을 닦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삼국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가 적과의 전쟁에서 자연물과 지형지물, 인간들을 이용하여 펼치는 다양한 사례 등을 볼 때 우리는 그가 단순한 전략가가 아님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무공에만 힘을 쏟은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가 무공에만 힘쓴 장군이었다면 별이나 바라보는 똥별장군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불과 26세의 나이에 ‘의랑議郞’이라는 벼슬에 오릅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의랑議郞’이 어떤 직책인지 보겠습니다. ‘의議’는 의논한다는 뜻이고. ‘랑郞’은 벼슬자리에 따라붙는 말입니다. 당시 의랑이라는 직책은  중국의 [상서尙書], [모시毛詩], [좌전左傳], [곡량춘추穀梁春秋] 등 선전고경과 이를 주해한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주석서에 능통한 자에게 부여되는 직으로 황제의 측근에서 그의 자문에 응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그가 일찍부터 병서뿐만 아니라 고서에도 매우 능통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젊은 나이에 벌써 시문에 능한 사백詞伯이 된 것입니다. 

그런 그가 만약 시인으로서만 살았다면 그는 겨우 조상대대로 이어온 환관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 봅니다. 그러나 그가 또한 무인으로서만 살았다면 [삼국지]의 장비나 관우처럼, 아니 저 [일리아스]의 용장 아킬레스처럼 분노에 사로잡힌 장수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무인이었기에 문약함을 벗어날 수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 문인이었기에 무인의 횡포함을 벗어날 수 있었던 전인적 인간이었습니다. 결정적 시기, 그는 마치 저 프랑스 혁명의 아들 나폴레옹처럼 철저하게 문무를 익혀 강자를 두려워 않는 청년 관료로, 비범한 전략가로,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성장했던 문제적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조조, 그는 모두가 두려워 벌벌 떠는 앙팡테리블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난세를 맞아 젊은 시절에 닦은 문무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유영하며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2편 이어서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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