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제4장 2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쓸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 제4장 2편 : 나관중의 '삼국지' - 어떻게 쓸 것 인가.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문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3.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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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

4장 1편 보기

“한나라 말기는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영웅호걸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 중에서 원소는 네 주를 근거로 하여 호시탐탐 노렸으며 강성함은 대적할 자가 없었다. 태조는 책략을 이용할 계획을 세워 천하를 편달하고, 신불해와 상앙의 치국방법을 받아들이고 한신과 백기의 기발한 책략을 사용하여 재능 있는 자에게 관직을 주고, 사람마다 가진 재능을 잘 살려 자기의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한 계획에 따랐다. 옛날의 악행을 염두 해 두지 않았기에, 국가의 큰일을 완전히 장악하고 대사업을 완성시킬 수 있었으니, 이는 오직 그의 명석한 책략이 가장 우수했던 덕분이다. 따라서 그는 비범한 인물이며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 진수, [삼국지] 위서 무제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그런 그도 원소 휘하의 서기 진림陳琳이 조조를 치기 위해 쓴 격문을 보고-‘격문’은 널리 세상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의분을 고취시키려고 쓴 글을 말합니다-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고 식은땀을 줄줄 흘려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글이다 好文章”

[삼국지]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 바로 여기, 명문의 발견에 있음을 봅니다.

......
사공 조조의 할아비 중상시 조등은 좌관 서황과 함께 사도로 흘러서 온갖 요사한 짓을 다하고 탐욕과 횡포를 일삼아 교화를 해치고 백성을 괴롭혔다. 그의 아비 조숭으로 말하자면, 본래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 성장했으며 뇌물을 써서 벼슬길에 올랐다. 그는 황제께 아첨하고 황금과 벽옥을 수레로 권문에 바쳐 재상의 지위에 오른 뒤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힌 자였다. 조조는 더러운 환관의 후예로, 인덕이 없고 교활하며, 표독하고 난을 일으키길 좋아하니, 세상의 재앙을 즐기는 자이다.

                                               - 나관중, [삼국지], 창비

거병의 명분과 조조 타도의 근거를 두루 아우르고 있는 진림의 글은 조조의 두통頭風을 낳게 할 만큼 뜨거웠습니다. 진림의 격문은 과장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조조의 부끄러운 가계와 그간의 잔인했던 행적에 근거한 글이니만큼 더욱 매서웠습니다. 여기, 우리는 천하를 진동시키고 영웅 조조의 두통을 낳게 했다는 격정적인 문장의 힘을 봅니다. 이런 진림을 원소를 무찌르고 난 후 조조는 자신의 부하로 받아들입니다. 여기, 우리는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능력을 존중하며 관행과 통념을 비웃고 있는 제너러스한 영웅의 면모를 또한 봅니다. 

그런 그가 격전에 마주한 병사들을 어떻게 사로잡고, 고달픈 백성들을 어떻게 주물렀으며, 어떻게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 두 시를 보면 그가 어떻게 해서 뛰어난 병법가가 되고, 군주가 되고, 난세의 영웅이 되었는지 그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북쪽 태항산에 오르려니/힘들어라 어찌 이리 높고 높으냐
양장처럼 고개는 굽어 있고/수레바퀴도 이 때문에 꺾어진다
나무들은 어이 그리 쓸쓸하냐/북풍의 소리는 정녕 슬프고나
곰과 황달곰은 나를 보고 웅크리고/호랑이와 표범은 길을 끼고 운다
계곡에는 인민이 적고/내리는 눈은 왜 이리 부슬부슬하나
목을 뻗어 길게 탄식하나니/먼 여행은 품은 생각 많아라
내 마음은 왜 이다지 답답한가/한번 동쪽으로 돌아가려 하여도
물 깊고 교량마저 끊어져/도중에서 배회하고 있다
정신이 아득하여 옛 길을 잃고/어스름에도 묵을 곳이 없어라
가고 가서 나날이 멀어져/사람도 말도 동시에 굶주렸도다
주머니를 지고 가서 땔나무를 취하여/얼음을 쪼개어 죽을 만든다
슬프구나 저 옛날 동산의 시여/끝없이 나를 애처롭게 하여라

                                                    - 조조, ‘고한행苦寒行’

어떤가요. 참으로 비장하고 아름답지 않은가요. 이 시는 과연 [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또한 그 시대를 대표하는 탁월한 시인이었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할 만큼 높은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원소 군대의 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우뚝 솟은 태항산맥을 넘어 행군할 때의 혹독한 추위와 험준한 산길에서 고통 받은 체험을 그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 ‘동산東山’이란 [시경詩經]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전장에서 고생하다가 돌아오는 병사의 심정을 애틋하게 노래한 천고의 명편입니다.
......

동산에 끌려 나와
해가 바뀌고
오늘이사 돌아가는 내 말머리에 
비는 안갠 듯 내리네, 뿌리네.
꾀꼬리 날아
그 날개 황금 같고
그 사람 시집올 제
말은 얼룩말
어머닌 친히 옷고름 매어 주고
아흔 가지 그 법도 찬란도 했네.
새댁 적엔 이리도 좋았건마는
쪼그라졌을 우리 아내 어떻게 하리.

                                             - [시경], ‘동산에 끌려 나와’ 

즉 그는 이렇게 고문에 대한 소양을 바탕으로 [시경]을 참고하여 삼군을 질타하는 장수인 동시에 병사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바꾸어 전쟁의 슬픔을 노래할 수 있었던, 참으로 인간미가 풍부한 휴머니스트 시인이었던 것입니다. 

사실소; [시경]에 전장에서 고생하다가 돌아오는 병사의 노래가 애틋하게 그려져 있네

가치소; 이것 보게나, 지금의 내 처지가 그 때의 사정과 무엇이 다르리

여기, ‘고한행’을 다시 보겠습니다. 생사가 오고가는 험악한 전쟁터에서 폐부 깊숙이 병사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서 어찌 장수가 될 수 있었겠으며, 또한 주변의 신뢰가 없고서 어찌 한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 권위를 지녔겠는지. 조조, 그는 무엇보다 사람살이의 결을 깊이 있게 어루만지는 글쓰기에, 문에 도통하였던 것입니다. 문은 결입니다. 허신의 [설문해자]에 문文은 ‘상교문象交文’ 라고 했습니다. 문이 ‘교차한 무늬를 상형한’ 문자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문은 텍스트text, 직물입니다. 나와 너와의 만남입니다. 글쓰기는 너에게로 가는 빛나는 타자에의, 아름다운 공감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술을 대하면 노랠 불러야지
이깐 인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침 이슬과도 같은 짧은 인생
지난 날은 고통만 많았구나
비분강개하여 노래불러보지만
근심은 잊을 수가 없구나
이 근심을 어떻게 풀어볼까
오직 두강의 술이 있을 뿐

對酒當歌 人生幾何 
譬如朝露 去日苦多 
慨當以慷 幽思難忘 
何以解憂 惟有杜康 

                                                    - 조조, ‘단가행’ 일부

세계해전사에 이름을 올린 적벽대전 직전, 여기 천하통일이라는 대업-물론 실패했습니다만-을 앞두고 조조는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이런 기분은 시로써만이 달랠 수 있고, 술로써만이 달랠 수 있는 정조의 세계입니다. 그는 대취하여 노래했습니다.

오직 두강주뿐이라고! 눈치 빠른 독자는 벌써 느끼었겠지만 여기 ‘두강주杜康酒’는 정말 죽이는 표현입니다. 사실감이라는 거, 디테일이라는 게 이렇게 진실한 형상의 맛을 안기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이지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놈이며 병사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손바닥 뒤집듯이 다룰 줄 아는 희대의 감정조율사였던 것입니다.

자,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난세의 영웅, 조조가 살다 간 시대 못지않은 난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조, 따지고 보면 그도 당시에는 보잘 것 없는 흙수저 신세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환관의 후예라는 정신적 외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신분적 한계를 딛고 금수저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특히 문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한나라 황제의 후손이라는 금줄을 타고난 유비와 대비되는 대목으로, 문무를 겸하고자 젊음을 불사르던 그의 치열했던 노력과 관련지어 볼 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고 봅니다. 

조조! 그는 일반적인 기준으로만 볼 때, 잔인무도한 인물임에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 역사적 인물이었으며, 그 끝을 측정할 수 없이 속이 깊은 ‘도가형’ 인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겨울바다 같이 인성이 얼어붙은 죽음의 전쟁터에서 호쾌하고도 비의悲意에 넘친 시의 꽃을 피운 대시인이었다는 사실, 바로 여기에 미워할 수 없는 조조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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