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장편 소설]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 4장 단정한 유서
[연재 장편 소설]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 4장 단정한 유서
  • 장희태 기자
  • 승인 2018.04.0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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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유서
 
 
나는 아버지가 남긴 말을 천천히 되뇌어본다. 유언이 주문처럼 입속을 맴돈다.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살아라.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면 고맙겠다. 부디 남은 형을 잘 돌봐주길 바란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정말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아버지의 유언을 다시 보니, 아버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종이를 들여다볼 사람이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정작 나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건 엄마에게 대신 사과를 해달라는 염치없는 부탁과, 죽은 아버지의 온갖 뒤치다꺼리와, 모자란 큰아버지와, 삼억이 넘는 빚과,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살라는 어이없는 훈계뿐이다. 
“뭘 더 어떻게 무서워하라고 개새끼야!”
눈앞이 안개처럼 하얗게 물들더니, 잠깐 기절했다 깬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몸이 떨리고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나는 다 타들어간 담배 필터를 잘근거리며 천천히 숨을 고른다. 날이 밝는 것처럼 시야가 조금씩 깨끗해지며, 사물들이 저마다의 형태와 빛깔을 되찾기 시작한다. 찢어진 유언장이 발치에 쌓여있고, 형사가 거실 장판에 담뱃재를 털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가늘게 눈을 뜨고 날 노려본다. 
“이러니 살맛이 났겠나?” 
형사가 담배연기를 내 쪽으로 훅 내뿜으며 비아냥거린다. 그는 신발장에 있던 아버지의 구두에 커다란 맨발을 쑤셔 넣고 있다. 아버지가 직원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갈 때만 신었던 단 한 켤레뿐인 구두. 거실 벽에 걸린 커다란 금테 액자 속에서 아버지는 빌려 입은 듯 좀 끼는 턱시도를 입고, 그 구두를 신은 채 활짝 웃고 있다. 레이스가 달린 엄마의 하얀 장갑을 꽉 붙잡은 채 말이다. 이제 아버지는 그 사진 아래에서 구역질나는 냄새를 풍기고 있다. 

“빚이 많더군, 사채까지 손을 댔어.”
아버지는 택시회사와 낚시, 할머니와 큰아버지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도박이나 경마 같은 것은 물론이고, 복권 한 장 사는 것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사채라니?
“슬프지만 흔한 일이지. 빚을 갚지 못해 자살한 가장의 이야기”
나는 정신없이 바닥에 흩어진 유서 조각들을 주워 모은다. 유서가 왜 잘게 찢어져 있는지 잠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상호. 퍼즐처럼 재조립된 고지서에 적힌 채무인은 아버지가 틀림없다. 비록 오너가 아닌 월급사장이었지만, 아버지는 회사에서 두 번째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자네는 운이 좋아”
“운이 좋다구요?”
형사가 거실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끈다. 누런 장판에 시커먼 구멍이 뚫린다.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두지 않았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까. 정말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어······. 우리 아버지가 미워질 정도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자네 아버지는 경영자 보험, 그리고 같은 회사의 생명 보험에도 가입돼있어. 모두 이십년도 넘은 오래된 계약들이지. 자네 가족이, 그러니까 자네가 수령할 돈은 세금을 빼도 오억이 훌쩍 넘어, 하루아침에 이만큼 벌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나. 자네는 정말 운이 좋은 거야. 운이 아니라면 직접 기회를 만든 건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온풍기 바람이 세진 것 같다. 미풍에서 약풍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강풍으로. 뜨겁고 축축한 바람이 팔다리를 휘감는다. 나는 창틈으로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1월의 싸라기눈을 필사적으로 노려본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저는 지금 십년 만에 여기 왔어요. 보험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다가·····.” 
형사는 귀찮다는 듯 굵은 팔을 들어 내 말을 제지한다.
“아아, 나한테 그런 말을 일일이 할 필요는 없지. 난 이만 가봐야겠어. 이제부터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아마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형사는 아버지의 구두를 구겨 신은 채 그대로 일어난다.
“이대로 가는 겁니까?”
“그럼 뭐 같이 유골이라도 뿌리자는 말인가? 곧 병원에서 사람들이 올 거야. 장례를 치르든 묻든 마음대로 하라구. 이건 왜 이렇게 작아······.”
형사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낡은 철문을 젖히고, 몇 걸음을 옮겨 상체를 아파트 베란다에 기댄다.
“가기 전에 한마디만 해주지.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장례 치르고 나면 최대한 빨리 사망신고부터 하고 보험금을 받아. 그리고 맨 먼저 빚부터 갚으라구, 저기 아버지 꼴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집요하게 내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던 의심 많은 형사는, 그 말을 남긴 채 얼떨떨할 정도로 순순히 사라진다. 그는 긴 복도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뒤 한번 돌아보지 않는다. 기둥처럼 두꺼운 팔다리가 종잇장처럼 가늘어지더니,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된다. 십년 만에 온 아파트 2002호에서, 나는 자살한 아버지의 시신과 단 둘이 남는다. 
 
날개뼈가 불거진 아버지의 등에 가만히 손을 올려본다. 맹렬히 부패하고 있는 아버지의 몸은, 온풍기 열기로 가득 찬 방안에서도 놀랄 만큼 따듯하다. 택시 유니폼에 얹은 언 손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껴 화들짝 몸을 뺀다. 

베란다 커튼을 뜯어 거실바닥에 고인 아버지의 체액과 구더기를 샅샅이 닦는다. 땀에 전 오렌지색 랑방 셔츠를 벗고, 한신택시 조끼에 꿰어진 아버지의 팔 한쪽을 빼낸다. 멋대로 늘어지는 팔이 장판 위로 물건처럼 떨어져 꺾인다. 다른 쪽 팔을 단단히 붙들고 허리를 안아들어 완전히 조끼를 벗긴다. 
몸통이 눌리자 아버지의 코와 입에서 뜨겁고 시큼한 가스가 날숨처럼 새어나온다. 풍압에 밀린 비대한 구더기들이 투둑 소리를 내며 몇 마리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버지의 죽음을 먹고 자란 작고 완강한 생명들을 커튼으로 문질러 지운다. 
등산바지에 어울리지 않게 매어 있는 아버지의 정장 벨트를 푼다. 버클 가장 안쪽에 졸라매듯 잠겨 있어 몇 번이나 손이 엇나간다. 세 사이즈는 커 펄럭거리는 고어텍스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김밥과 복권, 생수 한통을 산 편의점 영수증이 바닥에 떨어진다. 신고 있던 페이크삭스를 벗어 까맣게 탄 맨발에 씌우고, 벗어놓은 오렌지색 랑방 셔츠 팔통을 아버지의 팔에 끼운다. 단추까지 꼼꼼히 잠그고 나니 이마에서 쏟아진 땀이 셔츠를 적신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냉장고를 열자 마시다 만 생수와 위청수 몇 병이 보인다. 도로 문을 닫고 싱크대로 가 수돗물을 들이킨다. 

화장실 문지방에 서서 바지를 내린다. 잠시라도 시신에서 눈을 떼 변기에 앉으면, 아버지가 소리없이 걸어와 나를 내려다 볼 것만 같다. 아버지를 곁눈질로 힐끗거리며 바닥 타일에 오줌을 눈다. 디올 옴므 모델보다도 비쩍 마른 아버지는, 태어나 처음 입는 랑방 셔츠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샤워기로 타일 틈새의 소변을 대충 흘려보내고 소파에 앉는다. 아버지의 채취가 남아 있는 희고 가벼운 이불을 덮은 채 그를 살핀다. 그가 차고 있던 벨트를 허리에 두를 때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린다.
 
병원 사람들이다. 방수 옷에 장화까지 신은 두 남자가 아버지를 들것에 눕혀 구급차에 싣는다. 
“이미 돌아가셨는데 앰뷸런스로 갑니까?”
“뭐, 장의차가 오기도 하는데 이쪽이 더 쌉니다. 15만원이니까, 절반 정도.” 
혼자서만 운동화를 신은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배를 태우며 사망경위와 내 신상 몇 가지를 묻는다. 나는 미숙이 준 십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내밀며 운동화에게 저녁에 영안실로 가겠다고, 유품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운동화는 잠시 팬티에 벨트만 두른 날 물끄러미 보더니, 보호자 확인을 끝내고 방수 옷들과 함께 구급차에 몸을 싣는다. 모두가 사라지자 소파에 누워 아버지의 새하얀 이불을 끌어안는다. 
 
형사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오억, 한 달 전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했고, 모자란 큰아버지는 경제 개념 자체가 없다. 아버지의 오억, 빚을 제외해도 삼억 가까운 돈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형사가 떠오른다. 그런 직업을 가지면 의심이 많아지는 법이겠지. 더욱이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하루아침에 유품이 된 아버지의 물건들을 둘러본다. 아버지의 더운 몸속을 돌아다녔을 구더기 몇 마리가 치열하게 장판 위를 기고 있다. 문득 안쪽에서부터 맹렬한 허기가 밀려온다. 
차가운 거실을 닦으며 유라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미라가 된 유라. 나는 치미는 위액과 침을 그대로 바닥에 흘리고 닦으며, 여덟번째 시도한 전화에서 유라에게 울음을 터트린다. 
“배가… 너무 고파. 도저히 저녁때까지 못 참겠어. 제발 빨리 와.”
유라는 붕대에 감겨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달싹이며 병신이라고 반복한다. 나는 전화기에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낡은 소파에 누워 눈을 감는다. 가죽시트가 땀에 번들거리는 등을 거세게 빨아들인다. 추를 매단 듯 무거운 몸이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낚싯대 던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석, 여기까지 뭐 하러 온 거야?”
짜증스런 유라의 목소리. 나는 천천히 감은 눈을 뜬다. 동공에 축축하고 희미한 막이 덮여있어 유라의 실루엣이 흐리다. 몇 번 눈을 깜박거리자 눈꺼풀이 고인 눈물을 자르고, 큰 키의 땀에 절은 유라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일자로 반듯한 단발이 작은 머리통에 찰싹 달라붙어있다. 나는 젖은 눈가를 문지르며 기지개를 켠다.
“그 꼴로 여기까지 온 거야? 꼭 물에 적신 대걸레 같다.”
유라가 현관에서 거칠게 플랫토우를 팽개친다. 
“너 때문에 급하게 온 거잖아. 보일러 잔뜩 틀어놓고 붕대 옷 촬영이라니, 그 변태 새끼. 근데 이게 무슨 냄새야?”
“삼일동안 안 씻은 우리 아빠 냄새, 그리고 유라. 오늘 촬영이 있었던 건 네 인생에서 손꼽히는 행운이야” 
“무슨 헛소리야. 하루 굶었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유라는 팔을 교차해 땀에 찰싹 달라붙은 티셔츠를 단번에 벗고, 발끝을 천천히 밀며 소파로 다가온다.
“페퍼로니랑 말보루는? 사오라고 했잖아.” 
두꺼운 입술이 내 젖꼭지에 가만히 닿는다.
“땀 냄새. 그런 말 안했어 석. 그리고 담배 끊기로 했잖아.”
“내가?”
“헛소리 그만하구, 좀 같이 씻자. 부모님은 어디 가신거야?”
나는 상체를 일으켜 속옷 사이로 드러난 유라의 가슴골을 깨문다.
“넌 정말 개년이야.”
유라는 가슴의 잇자국을 손으로 문지르며 울 듯한 표정을 짓는다.
“말조심해 석. 그리고 너 내일 프로필 사진 찍잖아. 첫 촬영부터 잔뜩 처먹고 가서 내 얼굴에 먹칠할거야?”
“엿 먹으라고 해”
“네가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신입 애들 뒤치다 거리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대꾸 없이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방안은 텅 비어있다. 무엇 하나 볼 것도 만질 것도 없다. 나는 힘없이 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나온다. 생필품을 포함해서 아버지가 사용했던 모든 것들은 거실에 있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주인 잃은 물건들을 천천히 훑는다. 엄마와 이혼 후 한 달간, 아버지는 혼자 거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한 모양이다. 베일 듯 빳빳하게 다려진 여벌의 택시기사 유니폼이 낡은 소파 팔걸이 위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고, 빨래 건조대에는 핸들을 쥐던 하얀 면장갑들이 무더기로 널려 있다. 건조장에 줄지어 매달린 오징어 떼처럼, 주렁주렁 열을 맞춰 햇빛과 온풍기 바람에 하얀 손가락을 흔들고 있다. 

“미안해 석. 그치만 중요한 촬영이니까. 저녁은 내일 끝나고 예약한데서 실컷 먹자. 응?”
겨드랑이 사이로 유라의 양팔이 불쑥 들어와 가슴팍을 감싼다. 순식간에 등이 푹신해지고, 손톱에 쓸린 젖꼭지가 따갑다. 유라의 손톱에는 입자가 굵은 모래색 매니큐어가 촘촘히 발라져 있다. 나는 고개를 틀어 유라의 렌즈 낀 파란 눈에 입술을 댄다. 고비사막처럼 황망한 손톱과 푸른 눈. 그리고 단단한 붕대에 감긴 무른 육체.
“오늘 촬영 콘셉트가 뭐였어?”
유라는 대꾸 없이 팬티를 벗어 발목에 걸친다. 유난히 불거진 복숭아뼈에 절묘하게 걸려 흘러내리지 않는다. 
“창녀 같아 유라”
백십 센티미터가 넘는 긴 다리가 조용히 내 허리를 휘감아 옥죈다. 기분 좋은 압박감. 유라의 살갗에서 햇볕에 데워진 모래 냄새가 난다. 
“바로 그랬어.”
나는 속삭이는 유라의 안으로 들어가며, 이 낡은 가죽소파에서 함께 잠들었을지도 모를 엄마 아빠를 떠올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지가 나타나지 않아 나는 신음을 삼킨다. 엄마 아빠는 언제 마지막으로 몸을 섞었을까. 할머니 몰래 나를 임신시킨 때? 그때가 결혼 전이니, 어쩌면 엄마와 아빠는 부부로써는 단 한 번도 몸을 섞지 않은 것이다. 문득 유라의 둥글게 비어져 나온 골반 뼈가 창처럼 아프게 허벅지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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