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제1장 2편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아킬레스의 분노.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 제1장 2편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아킬레스의 분노.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4.0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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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아킬레스의 분노Achilles's Wrath

제1장 1편 보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미국과 이란의 줄다리기는 그리스 이래 계속되어 온 역사의 끈질긴 악연 때문이라는 거, 즉 미국이 서구적 사유와 정신세계의 기원인 그리스를 대변하고, 이란이 동양적 사유와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페르시아를 상징한다는 거-‘이란Iran’은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에 거주하던 아리안족의 일부가 남쪽으로 이동해 세운 국가입니다. 아리안은 ‘고귀하다’는 뜻으로 1935년 ‘아리안의 나라’라는 뜻에서 국호를 이란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란 남서부 해안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파르스Fars라고 불렀고, 이것이 라틴어화해서 ‘페르시아Persia'로 변한 것입니다. 참고로 기독교 세계가 서방의 카톨릭과 동방의 정교로 갈라선 것처럼, 이슬람 세계도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로 갈아섰다고 합니다. 똑같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지만 민족, 언어, 종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란은 아리안계 민족으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며 시아파입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민족이고, 수니파입니다. 여기, 수니파와 시아파는 기독교의 분열과 크게 다르지 않게 632년 선지자 무함마드가 숨진 뒤 후계자 승계문제를 놓고 갈라져 1400년 이상 갈등관계에 있다고 합니다-그런데, 이 두 나라가 고대세계를 양분했던 세계의 두 마리 용들이었다는 거, 다시 말해 두 나라가 트로이, 페르시아 전쟁을 고비로 그리스를 중심으로 서구의 역사가 재편되었다는 거, 그렇다면 대체 두 나라는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 마치 동양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의 [사기]가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듯이, 서양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이 모든 의문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그대로 '역사history'가 '조사'를 의미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망각되기 마련이다 그리스인이나 이방인이 이룩한 위대하고 놀라운 갖가지 업적, 특히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정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이 책은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인 헤로도토스가 이 망각을 염려하여 자신이 직접 연구, 조사한 것을 적은 것이다.”

                                                              -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1권

자, 그렇다면 여기, 망각되어서는 안 될 위대하고 놀라운 업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그리스적, 문명적 자부심self-respect pride입니다. 즉 원시인에 불과하던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저 척박한 환경-그리스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바위로 된 땅을 지닌 나라입니다-을 극복하고 오늘 우리들에게 그리스를 공부하게 하는지-사실 모든 공부는 그리스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도 헤겔도 니체도 괴테도 루카치도 모두 그리스에서 그 사유의 샘물을 길어오고 영혼의 젖줄을 대고 있는데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찌 그리스를 외면한단 말입니까-를 알려주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리스 문명과 사상에 대한 깊은 고전적 이해를 견지했던 독일의 대철학자 헤겔([역사철학강의])은 말했습니다. 

“그리스에 오니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가 이렇게 고향같이 느껴졌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곳에 정신의 토대가 단단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그리스 정신의 단단한 토대는 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선 고난에서 나왔습니다. 함석헌([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말처럼, '고난에 뜻이 있다'는 말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를 두고 한 말이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 식민의 역사와 일치합니다. 북방에서 흘러 온 그리스인도 초기에는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원시인의 하나였습니다. 즉 그들 또한 처음에는 자연채집경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모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척박한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경작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문명세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문화를 뜻하는 ‘culture'라는 말도 본래는 경작하다cult를 뜻하는 그리스어, 라틴어 쿨투라cultura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문화는 경작을 통한 경제적 여유의 문명적 산물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여러 가지 곡식과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를 재배했습니다. 그러나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그리스인이 바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농업혁명의 결과 불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시점과 일치합니다. 처음에는 올리브나무에서 나온 기름과 포도에서 짜낸 포도주를 이웃 아시아 땅에서 만든 곡물이나 옷감과 교환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상업의 길로, 나아가 식민지 개척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유목민에서 농경민, 다시 상업민으로 변신한 그리스인은 에게해를 넘어 지중해를 장악하고 피할 수 없이 당시 흑해의 길목을 지키면서 이익을 독점-지금도 세계 밀의 주요공급처 역할을 하고 있는 흑해 배후의 우크라이나 지방은 당시에도 지중해 지역 식량의 주요 공급처 역할을 했습니다-하고 있던 해상세력인 트로이와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두고두고 페르시아와 적의敵意를 갖게 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트로이는 페르시아의 영향권에 있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의 트로이 공략이 원인이 되어 페르시아의 그리스에 대한 적대감이 생겼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연장선성에서 페르시아 전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크게 그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구세계, 즉 스퀴피아(현재의 우크라이나), 메소포타미아,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하면서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하는 대역사에 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그가 태어날 무렵(그는 기원전 480년경에 태어났습니다)부터 시작되어 기원전 5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페르시아 전쟁은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던 전쟁입니다.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방지역, 즉 인도서부지역에서 에게해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 모두가 그리스에게 덤벼든 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들 민족들은 모두가 페르시아 왕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위대한 왕이라고 부르던 이집트의 왕들마저도 페르시아에 복종했습니다.

What matters,

중요한 것은 이처럼 크나큰 시련을 그리스인들이 극복해냈다는 점입니다. 세계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살라미스 해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거친 파도와 맞서 싸우듯이 침략자를 맞아 싸워 이겨냈습니다. 바로 이것이, 크나큰 시련과 고난을 극복해 낸 이것이 그리스인들에게 특별한 문명적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이렇게 자연과 싸워 이긴 자유정신과 이민족과 싸워 이긴 독립정신이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서구적 정신과 사유의 근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민족과 싸워 이김으로써 에게 해를 넘어 지중해를 장악한 해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고난을 극복해 낸 문명적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리스인은 죽지 않는다는 신념이 내면화되고, 파르테논 신전으로 상징되는 위대한 그리스 신화와 서사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고, 경제적 풍요에 따른 정신적 여유schole를 바탕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상징되는 이른바 황금기의 그리스 고전철학이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늘 바바리안barbarian, 즉 이민족을 야만시하고 배타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는 서구적 중화주의의 오만hubris이라는 문명적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바로 여기, 서구적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기원 신화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와 [오디세이아Odysseia]입니다.

......

지금으로 보자먼 미국과 중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고대세계 이래 그리스와 페르시아로 상징되는 서방과 동방은 오랜 라이벌宿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시때때로 구원舊怨을 다 씻지 못하여 지금도 저렇게 으르렁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고전은 세계를 비추는 오래된 청동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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