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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제2장 2편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호메로스의 현재성.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4.12 20:41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아킬레스의 분노Achilles's Wrath

2장 1편 보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그런데도 우리는 신들의 전쟁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대체 왜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신들의 이야기神話에 사로잡히고 말까요. 우선, 줄거리부터 보것습니다. [일리아스]는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스의 분노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왜 분하여 성을 냈을까요. 그리스 사령관 아가멤논이 최고의 전사 아킬레스의 노획물인 브리세이스 소녀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군이 트로이군 대장 헥토르에 의해 전멸하다시피 될 때까지 아킬레스는 꼼짝하지 않습니다. 아가멤논, 그 새끼가 미워서 전쟁이고 뭐고 고향에 가것다는 심보였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매우 이기적인 분노에 해당합니다. 그러다가 그리스 장병들이 다 죽어가고 부대의 최후방어선이 무너지려던 때 이를 보다 못한 아킬레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의 투구와 창 갑옷을 입고 대리 출전합니다. 그러나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에게 그가 죽게 되자 이에 분노한 아킬레스가 드디어 출전하게 되고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친구의 원한을 갚고 트로이를 점령하게 되며 그도 결국 파리스에게 죽게 된다는 야그입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아킬레스의 분노는 이타적인 분노가 되는 것입니다. 아킬레스가 친구를 위해 죽었으니 그의 죽음은 명예로운 죽음이 된 것입니다. 

자, 비극적인 전쟁영웅서사인 이 작품이 저 우뚝 솟은 올림푸스 산처럼 우리의 주의를 끌고 서양문학의 기원이자 마르지 않는 수원으로 오늘에도 지속적으로 서구적 사유의 젖줄이 되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까놓고 말해서 이 작품은 [삼국지]처럼 국뽕 신화의 기원인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가 트로이라는 나라와 싸워 이긴 전쟁서사이고, 그 중심에 영웅 아킬레스가 있고 아킬레스, 그는 자신이 뻔히 죽을 운명인줄 알면서도 친구의 원수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이니, 이는 곧 하나의 고대적 모럴로서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야 한다는 암시implication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품 전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아킬레스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운명, 사건들의 시말이 신에 의해 예고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일리아스]는 모든 것은 신에 의해 정해졌다는 신정론의 시적 실현인 셈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와 특징을 압축파일처럼 잘 보여주고 있는 게 그 유명한 도입부입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스의 분노를,/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천병희 옮김

 

여기, 도입부는 하나의 기호로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노래하소서' 라는 것을 통해 고대의 문학 형식이 시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대 시가는 왜 노래일까요. 잘 알다시피, 노래(음악)는 사람들의 감정을 통일시켜 조화롭게 만드는데 기여합니다. 즉 노래는 동화와 조화의 언어입니다. 즉 부족 또는 생존공동체 단위로 삶이 유지되었던 고대국가에서 노래와 시는 하나의 국악이자 하나의 제도로서 중시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노래를 관장하던 여신이 바로 제우스, 최고통치자의 딸들인 무사Mousa 여신들입니다. 오늘 음악music의 기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사들은 영감이나 창작의 딸이 아니라 기억의 딸이라는데, 즉 모방과 재현의 딸이라는데 그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사의 핵심 역할은 창작이 아니라 보존입니다. 이 무사들의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사실은 무사들의 존재 의미가 바로 화합을 통한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질서의 유지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질서를 상징하는 현실적인 존재가 바로 고대시가의 영웅입니다. 곧 서사시의 영웅은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엄격하게 말해서 개인이 아닙니다(루카치, [소설의 이론]) 다시 말해 아킬레스가 그리스를 대변하는 도덕적인 질서의 상징으로 그가 개인적인 분노를 넘어 자기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다는 점, 바로 여기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 집단의 생존을 우선시 하는 고대적 모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집단의 정서를 드러내는 방식이 바로 '분노'라는 사실입니다. 분노라는 극적 페이소스가 집단의 맹목적인 일체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방식임을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분노가 어떻게 집단의 맹목적인 일체감을 유지하는 방식인지 보것습니다. 우리는 노전사 네스토르가 아가멤논과 아킬레스를 화해시키기 위해 아가멤논에게 던지는 다음 말을 통해 일차적인 분노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제우스의 후손이여! 그대가 우리 의사에 반해/ 아킬레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의 막사에서 브리세이스 /소녀를 빼앗아 온 뒤로,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한 생각을 지닌 자는 아마 이전이든 지금이든/달리 아무데도 없을 테니 말이오 그때 나는 그러지 말라고 /진심으로 말렸으나 그대는 자신의 거만한 마음에 복종하여/ 불사신들도 존중하는 가장 용감한 자를 모욕했던 것이오/ 그의 명예의 선물을 빼앗아 가졌으니 말이오."

 

즉 아가멤논이 거만하게도 '불사신들도 존중하는 가장 용감한 자' 즉 아킬레스의 전리품(브리세이스 미녀)를 빼앗아 그에게 모욕감(‘깔보고 욕되게 한다’는 말, 요즘말로 '디스'에 해당)을 불러일으킨 데에서 아킬레스의 분노가 시작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단순히 따지고 보면 영웅찬가에 불과한 이 작품이 왜 심금을 울리고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지 보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서 바로 영웅 아킬레스와 다르지 않은 나의 초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영웅 아킬레우스가 아닌 인간 아킬레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것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도시에서 값나가는 보물들을 수없이 노획해 와서/모두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에게 갖다 바치곤 했소/그러면 그자는 뒤에 처져 날랜 함선들 옆에 머무르다가/그것을 받아 조금씩 나눠주고 대부분은 자기가 차지했소/그래도 그자는 장수들과 왕들에게 얼마쯤은 명예의 선물을 주었고/또 그들은 그것을 잘 간직하고 있소 한데 그자는 아카이오이족 중에서/유독 나에게만 마음에 맞는 여인을 빼앗아 가졌소."

 

이런 사실은 제아무리 무질서와 불법이 판치는 전쟁통에서도 질서와 규율이라는 관습이 사회적 모럴로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동시에 분노라는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정서구조로 내면을 형성하고 있는 보편적 진실인지를 일깨우는데 기여합니다.

 

"분노란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해서/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연기처럼 커지는 법이지요"(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제18귄)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사람들이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온 정신을 쏟기에 분노에는 쾌감이 수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분노에는 언젠가는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즐거움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는 일상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대중들이, 그리하여 늘 불만이라는 위험한 폭탄을 지고 살아가는 대중들이 왜 분노라는 뇌관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지, ‘민족’을 우선시하는-사실은 명분에 불과하지만-우익 정치가들이 왜 그들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드는지,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우익 정치가들의 독도 도발 등에서 볼 수 있거니와 호메로스의 주제-아킬레스의 분노-를 통해 우리는 또한 매우 재미있는 정치적 시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뭇사람들을 단결시키는데 분노만한 것이 없다는 점이고, 그것이 바로 분노의 카타르시스적 효과에 있다는 뜻밖의 사실에 있습니다. 

What matters more is that~

더 중요한 것은 아킬레스가 개인적 모욕과 분노의 감정을 극복해 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꼭 그처럼 저는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에게 분노했지요/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지요/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즉 아킬레스는 부족의 운명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개인적인 분노(아가멤논)를 민족적인 분노(헥토르)로 장엄하게 폭발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즉 자신을 바쳐 그리스에게 승리와 영광을 안김으로써 그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개인적 감정을 넘어 민족을 우선하는 마음을 그 비교할 수 없는 재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볼 때, 호메로스가 왜 ‘부족의 백과사전’(해블록, [플라톤 서설])이라 평가되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호명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호메로스가 서구 근대의 민족주의 신화와 더불어 오늘 세계화 속에서도 여전히 민족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정치 현실에서 국뽕 신화의 재생산reproduction에 기여하는 서구적 민족주의의 기원을 이루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 국민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자 세계적 고전을 넘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하나의 성서Scripture로 보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저 죽고 죽이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야만의 전쟁사를 문화의 꽃다발로, 영웅서사시라는 장엄한 시꽃으로,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총체적으로 그리고 있(천병희)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공동체의 모럴을 그리스적 교양으로, 그 비교할 수 없이 웅대한 모습으로, 하나의 시적 백과사전으로 표현해 냈다는 사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도 저 천고에 빛나는 명장면을 기억하고 전율해 마지않는 것입니다.

 

"헥토르여, 잊지 못할 자여! 내게 합의에 관해 말하지 마라/ 마치 사자와 사람 사이에 맹약이 있을 수 없고/늑대와 새끼 양이 한마음 한뜻이 되지 못하고/시종일관 서로 적의를 품듯이, 꼭 그처럼/나와 그대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우리 사이에/ 맹약이란 있을 수 없다 둘 중에 한 사람이 쓰러져/자신의 피로 불굴의 전사 아레스를 배부르게 하기 전에는/그러니 그대는 온갖 무용을 생각하라! 지금이야말로/그대는 창수가 되고 대담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더 이상 피할 길은 없다 팔라스 아테네가 내 창으로 곧 그대를/ 제압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이제 그대가 미쳐 날뛰며 창으로/죽인 내 전우들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보상하게 되리라"(제22권)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김상천 문예비평가  info@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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