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장편 소설]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 5장 유라
[연재 장편 소설]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 5장 유라
  • 장희태 기자
  • 승인 2018.04.1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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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유라

 

맞닿은 몸이 오늘따라 데일 듯 뜨겁다. 유라는 눈을 감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는다.
“부모님은… 언제 오셔? 늘 하는 말이지만…… 오늘은 정마알… 죄송하네”
말과는 달리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린다. 나는 고개를 숙여 피어싱 네개가 별자리처럼 박힌 귓바퀴에 입술을 댄다. 
“지금 소파 밑에 누워서 널 보고 계실걸”
네일젤이 발린 두껍고 단단한 손톱이 내 등을 파고든다.
“석이 부모님, 이런 인간이라 죄송해요.”
젖은 등이 쓰리고 욱신거린다. 유라는 땀과 희미한 피가 배어있을 자신의 손톱 끝을 게걸스레 핥는다. 지금 당장 죽은 아빠가 앰뷸런스 문을 박차고 돌아와도 섹스를 멈추지 않을 기세다. 
“너 죄송한 일 하는 거 좋아하잖아.”
내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유라는 연달아 ‘죄송해요’ 라며 비명을 내지른다. 후련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토해내듯 사과한다. 절정에 달했을 때 그녀의 버릇이다. 나는 유라의 골반을 단단히 누른 채 빨래건조대에서 흔들리는 트렁크팬티를 노려본다. 유년시절 두 외계인이 다투던 고함소리, 소파에 누워있던 엄마의 실루엣 같은 것들이 떠올라 아래가 더 단단해진다. 나도 죄송하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다. 유라는 지난 육년간, 매번 치밀어 오르는 어떤 것들에게 용서를 빌며 흥분해온 걸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가 생생하다. 
 

엄마의 이혼 소식을 전화로 통보받던 날, 유라는 내 몸 위에서 출렁였다.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그녀의 팔을 꽉 붙들었다. 그때만 해도 유라는 지금처럼 깡마르지 않아,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아랫배와 허벅지의 적당한 살집이 푹신했다. 거칠게 마구 자른 단발 대신 쏟아지듯 매끄러운 긴 머리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내 어깨 근처를 간질였다. 
사정이 끝나자 유라는 곧장 일어섰다. 손끝에서 경련하던 팔뚝이 생생했다. 그녀는 먼지 낀 창틀에 앉아 모텔 이중창을 열었다. 12월의 찬바람이 불어닥쳤고, 유라는 왼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오래도록 바깥을 응시했다. 언 비 내리는 소리가 조금씩 굵어졌고, 파랗고 빨간 네온사인이 유라의 옆얼굴에 번들거렸다. 그녀는 파우치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읊조렸다. 다시는 남자랑 잘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가 꺼내 둔 버지니아 슬림을 집어 물었다. 입을 맞추듯, 유라의 입술 가까이서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 새 담배를 가져다 대 불을 붙였다.
“나는 처음 잤을 때부터, 이 짓을 죽기 직전까지 하게 될 거라 예감했는데”
유라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온몸을 떠는 그녀를 안아들어 욕실로 갔다. 뜨거운 물을 틀고 손을 잡아 끌자 쑥스러운 듯 엉덩이를 빼더니, 막상 문을 닫으려고 하자 울상을 지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문을 열어 놓고 물을 맞았다. 유라는 창문을 닫고 와 내가 씻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머리를 감을 때 즈음 그녀는 자신의 새아버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룻밤에 이만원짜리 허름한 모텔 욕조에는 물이끼가 끼어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서서 린스와 샴푸가 일체형인 뻣뻣한 샴푸로 거품을 내고 있었다. 샤워기 압력이 약해 나는 연신 투덜거렸고, 유라는 작은 팬티만 입은 채 욕실문턱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가늘고 단조로운 물줄기 소리와 머리감는 소리, 바디타올로 몸 문지르는 마찰음 따위가 그녀의 목소리를 희석시켰지만, 그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로 선명히 내게 파고들었다.
 
“내 첫 남자는 새아버지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처음 하는 이야기구,”
“아홉살 때 아빠가 죽고 오년 만에 재혼한 사람이었는데 밉지는 않았어. 좀 우유부단하고 소심했지만, 엄마보다 세 살 연하에 대머리도 아니었구”
고개를 들어 유라와 눈을 마주치려 했는데, 눈으로 자꾸 샴푸물이 흘러 들어가 나는 할 수 없이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런 이유로 섹스 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음해에 전학을 갔어. 아저씨의 직장 때문이었지. 급하게 어울리게 된 애들한테 소외되기 싫어서 담배를 피우게 됐는데 그걸 들킨 거야. 나는 지금도 새아빠를 아저씨라고 불러. 그때는 더 서먹한 사이었는데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어.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냐고 소리를 질렀지. 담배를 뺏기지 않으려다가 몸싸움까지 했는데, 아저씨가 나를 보는 눈이 좀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어. 나라는 인간이 새로 생긴 가족 구성원의 한명이기 이전에 낯선 타인, 피가 흐르는 한명의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느낌이랄까. 숨을 몰아쉬는 새아빠의 눈동자 속에서 그 감정을 읽었을 때, 내가 우리 셋의 관계를 좌우할 수 있음을 알아챘어. 그 전까지 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망가뜨리기 싫어서 모든 걸 참던 아이였는데”
“그래서 그 눈을 보고 하고 싶어진 거야?”
“당연히 아니지. 물론 그 무렵에는 늘 남자가 궁금했고, 이따금씩은 꿈속에서 멋진 남자에게 안전한 강간을 당하며 팬티가 축축해지기도 했지만, 여중생이 떠올렸을 첫 경험이 그런 아저씨였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글쎄,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단지 그 무렵 유난히 행복해하는 엄마의 무사함이 미웠고, 나를 그런 상황에 빠트리고 떠난 죽은 아빠까지도 원망스러워졌어. 나도 그때의 내가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뭔가를 망가뜨려서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문제를 만들어 주목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여하튼 새아버지라면 그래도 안전할 것 같았어. 아저씨는 엄마와 결혼하기 전부터 내 마음을 사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했거든. 귀여울 만큼 성실한 타입이었지. 어깨에 올려진 손을 가슴께로 가져가기만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뭐, 끝나고 나서는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줄담배를 피웠어. 내 담배가 전부 바닥날때까지 멈추지 않았지. 엄마 만나면서 끊었다더라구”
“그래서?”
“그때부터 그런 버릇이 생긴거지”
“죄송하다고?”
“응, 잘못했다고.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나봐. 아저씨는 자기한테 하는 말인 줄 알고, 다 괜찮다며 나를 계속 다독였어. 나보다 훨씬 더 떨고 있었던 주제에. 사정 후에 돌변하는 남자는 아니었지” 
“언제까지 새아빠랑 잔거야?”
“한번뿐이야. 그 일 뒤로 내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소외되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던 게 어쩐지 우스워지고. 관계는 안했지만 금방 남자친구도 생겼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멀어졌어. 새아빠가 몇 차례 질투 섞인 훈계를 하면서 다툼도 있었지만, 새아빠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드러내놓지는 못했지. 아주 서서히 보통의 가정으로 돌아갔어. 새아빠는 그 뒤로 나나 엄마한테 더 잘하고 있구,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이미 씻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까지 샅샅이 닦은 뒤였다. 나는 선반에서 가장 크고 잘 마른 타올을 꺼내, 쪼그려 앉은 유라의 둥근 어깨를 가만히 덮어주었다. 
“아직도 가족들이 밉니?
유라는 그 질문에 갑자기 추워지기라도 한 듯, 자신의 어깨 위에 얹어진 타올을 가슴께로 끌어 모았다. 그녀는 물에 빠진 새처럼 보였다.
“글쎄. 내가 새아버지를 좋아한다고 하면 네가 날 더러워할까봐 이런 대답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난 여전히 미워. 사실 억지로 미워하고 있어. 아직도 가끔 몸이 떨리고 악몽을 꾸거든. 내가 그런 상황을 만든 게 믿기지가 않고, 때론 새아버지가 마냥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엄마도 그렇고, 이해할수록 마음 약해지는 게 싫거든.”
“전혀 더럽지 않아, 네가 더 좋아지는데” 
“정말?”
“응, 정말”
나는 그날 한숨도 자지 않고 유라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불쑥 떠오른 가족들 생각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유라는 드문드문 깨었고, 그때마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금세 다시 잠들었다. 어쩌면 나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금세 다시 잠들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때 유라는 새아빠를 미워한다고 답했지만, 나는 미움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쨌든 그는 유라의 첫 남자였고, 좋든 싫든 지금까지도 유라의 커다란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빙하처럼 마음속을 떠다니다가, 솔직하게 달아오를 수 있는 순간과 충돌하면 명치께를 다 적시며 녹아내린다. 무엇보다 유라의 “죄송해요” 라는 신음은 내 사정중추를 언제나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뒤흔들어 놓으니까. 그건 세상의 어떤 성적인 존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런 것을 넘어선 유라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유라의 새아빠가 그녀를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인간으로 만든 것만은 틀림없다. 그 사실에 기분이 정말 더러워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죄송하다는 신음이 잦아들고, 우리는 땀에 전 서로의 손을 잡고 욕실로 간다. 그녀는 오늘따라 변기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유라는 절정에 오른 뒤면 아주 길고 느리게 오줌을 눈다. 폐 속 깊숙히 담배연기를 빨았다 서서히 내뱉는 것처럼, 천천히 몸 밖으로 오줌을 밀어낸다. 나는 복잡한 파이프를 거슬러 올라 좁은 샤워꼭지를 통해 뿜어지는 물의 세기를 가늠하듯, 유라의 먼 몸속을 흘러온 오줌줄기의 압력을 선명하게 느낀다. 무엇이 유라를 평소보다 흥분 시켰을까. 그녀를 조준하던 카메라? 몸을 압박하는 붕대옷? 낯선 곳에서의 섹스? 설마 아버지의 시취 때문은 아니겠지. 나는 웃는다. 유라가 문득 부끄러운 듯 왜 웃느냐며 아랫배에 힘을 주고,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유라의 긴 손가락이 내 옆구리를 찌르고, 나는 또 웃는다. 쉽게 멈추지 않는 웃음 끝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아빠가 죽었어.”
나는 차가운 욕실 타일에 소리 나게 무릎을 꿇고, 유라의 가슴 사이에 머리를 기댄다.
“석, 네가 했던 것 중 최고로 재미없는 농담이야”
나는 대꾸 없이 유라에게 허물어진다. 유라는 자신의 허벅지에 얹어진 내 머리를 조심스레 치우고, 막대기 같은 알몸으로 집안의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닌다. 욕조 바닥에 누워 물줄기를 맞고 있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흔든다. 
“정말이야?”
“그래, 넌 정말 창녀 같아 유라”
우습게 말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제멋대로 떨리고 만다. 유라는 한숨을 쉰다.
“석, 난 그 사람들만도 못해. 번번이 화대도 제대로 못 받는걸. 제발 진지하게 말해줄래?”
나는 상체를 일으켜 양손으로 유라의 어깨를 힘껏 움켜쥔다.
“알았어. 부탁이 있는데, 같이 유품 좀 정리해줄래?”
유라는 대꾸 없이 양팔로 내 치골을 꽉 끌어안고, 배꼽 언저리를 한참동안 핥으며 중얼거린다. 
“우리는 정말 동지가 됐네.”

얼굴을 들었을 때 유라의 메이크업이 엉망으로 번져있다. 십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버지가 죽은 슬픔이 가느다란 몸 곳곳 어디에 남아 있는 걸까. 나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 서른 네살이 되면 유라처럼 울 수 있을까. 그럼 그때까지 살아 볼 이유가 하나 더 생길 텐데.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몸에 거품을 칠해 씻기고, 집 앞 마트에서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 열 개를 산다. 즉석식품 코너에서 각종 햄버거를 쓸어 담아도 유라는 말리지 않는다. 그 바람에 먹고 싶지 않았던 냉동피자와 사과파이까지 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음식도 내팽개쳐두고 곧바로 유품을 정리한다. 무더기로 널린 아버지의 손 같은 하얀 장갑들과, 평생을 입어온 택시기사 유니폼을 포함해서,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쓰레기봉투에 차곡차곡 담는다. 녹슨 빨래건조대와 온풍기, 스팀다리미와 먼지 쌓인 바둑판, 책장에 꽂힌 젊은 경영법, 실전바둑, 11년 겨울호에서 구독이 끝난 수십 권이 넘는 월간낚시, 낚시용품 상자와 일제 낚싯대들을 모조리 쓸어 담는다. 유라의 길고 억센 손마디가 내 팔을 움켜쥔다.
“석, 왜 그래. 다 멀쩡하잖아.”
나는 대꾸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비누와 샴푸, 곰팡이가 핀 린스와 칫솔 두개, 면도기와 치약, 쓰다 남은 휴지, 유통기한이 지난 생리대 따위를 손에 잡히는 대로 버린다. 신발장에서 운동화와 슬리퍼까지 집어넣고 나자 쓰레기봉투 일곱 장이 금세 가득 찬다. 집안은 칠백리터만큼 휑해지고, 어느새 집어넣었는지 거실 벽에 걸려있던 아빠 엄마의 웨딩사진도 사라져 있다. 유라가 텅 빈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 원망스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잖아”
“그럼 중고나라에라도 팔까?”
나는 쏘아붙인다. 유라는 울면서 잘 손질된 손톱으로 백 리터의 쓰레기 더미를 뒤져 기어이 액자를 끄집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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