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제3장 1편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호메로스의 세계성.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 제3장 1편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호메로스의 세계성.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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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아킬레스의 분노Achilles's Wrath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지난 시간에 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국뽕 신화를 재생산하는 우파 신화로, 서구근대민족주의의 마르지 않는 샘 역할을 해왔다고 야그 했습니다. 사실 [일리아스]가 그리스족(아카이오이족)의 약탈과 해적질을 미화한, 그리하여 식민 제국의 역사를 옹호하는데 간접적인 암시를 주고 있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전쟁 서사로서, [일리아스]는 잔혹한 승리의 서사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한 다음과 같은 대목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매우 난감aporia한 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내 가슴은 스스로도 충분히 끓어오르고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그것을 가라앉혀주는 자장가이다. 그것은 내가 애독하는 호메로스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얼마나 자주 끓어오르는 피를 자장가로 달랬는지 모른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자, 여기 호메로스는 물론 [오딧세우스]도 포함 하것지만 일단 [일리아스]만으로 제한 하것습니다. 여기서 ‘끓어오르는 피’는 죽고 못 사는 롯데lotte에 대한 미칠 듯한 사랑과 열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격렬한 파토스적 감정은 분노하고도 통하는 정서로 이는 매우 위험한 감정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괴테가 분명 청년 시절에 겪었을 격렬한 사랑의 경험을 제시한 이 소설에서 호메로스를 통해 자신의 격한 감정을 순화시키고 있다는 것, 즉 호메로스가 그에게 진정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고백인데 이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부분입니다. 분노가 진정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먼 대체 호메로스의 무엇이 질풍노도처럼 들끓는 피를 진정시킨 것인지, 여기 호메로스는 단순하게 ‘아킬레스의 분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는 하나의 코노테이션connotation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일리아스]를 느리고 자세하게, 오랫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왜 젊은 날의 괴테가 호메로스에서 자장가를 발견했는지 그 실마리를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자, 그럼 인자부터 호메로스의 세계성에 대해 야그해 보것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일리아스]는 ‘아킬레스의 분노’에만 그치고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스의 개인적 분개resentment를 넘어, 민족적 분노wrath, 아니 이것까지도 뛰어넘은 보편적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the intellectual legacy of mankind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나씩 보것습니다.  

우리는 [일리아스]가 저 고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의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다룬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여기 전리품(부리세이스 미녀)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두 영웅들의 싸움은 매우 진실되고, 또 그만큼의 가치를 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표현대로 라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개미처럼 흩어져 서로를 뜯어먹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리아스]는 이처럼 비근한 일상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높은 가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그악한 탐욕greed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욕망을 지닌 나약한 존재이니 이를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는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이기심을 극대화시킨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런 고전을 그리 권장할만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정의로운 분배가 행해지지 않은데서 격발이 된 현실에 대해 분개하고 있는 아킬레스의 처사를 부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그만큼 진실한 세계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돼지 같은 아가멤논이 미워서 그리스군이 멸망 직전에 이르기까지 전쟁이고 뭐고 뭉개고 있는 아킬레스는 바로 상사가 미워서 모든 것을 다 때려 치고 싶은 우리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와 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세가 불리해지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아가멤논이 오딧세우스 등을 보내 그를 달래기 시작합니다. 거만하게 굴지 말라 이겁니다. 자, 여기 거만hubris하게 굴지 말라는 것은, 마치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처럼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존을 유지해야만 했던 고대사회에서 부족들의 보편 격률maxim이라 하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분노를 거두라는 겁니다. 자, 여기서 하나의 공명통으로써 기능하고 있는 문학이라는 것을 전제한다고 가정하고 볼 때, 아킬레스가 만약 나라먼 가령, 상사에게 전리품을 부당하게 강탈당했는데 저쪽에서 거만하게 굴지 말고, 좀 겸손하게 굴라고 사절단을 보내 온다먼 이들을 받아야 할까여 말아야 할까여... 

바로 여기에 아킬레스의 분노가 지닌 하나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진실의 무게가 있는 것입니다. 자, 그 진실의 목소리를 들어보것습니다. 

“제우스의 후손인 라에르테스의 아들이여, 계책에 능한  
오딧세우스여! 내가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반드시 이루어질 일을 
이제 기탄없이 그대에게 털어놓지 않을 수 없구료 
그래야만 그대들이 내 앞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지 
못할 테니 말이오 사실 나는 그자가 하데스의 문만큼이나 밉소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생각과 하는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오 
아무튼 나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겠소 
아크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은 결코 나를 설득하지 못할 것이오 
다른 다나오스 백성들도 마찬가지오 쉬지 않고 계속 적군과 
싸워봤자 고맙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 뻔하니 말이오 
뒷전에 처져 있는 자나 열심히 싸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고 
비겁한 자나 용감한 자나 똑같은 명예를 누리고 있소 
일하지 않는 자나 열심히 일하는 자나 죽기는 매일반이오 
나는 언제나 목숨을 걸고 싸우느라 마음속으로 고통을 당했건만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 

착하고 분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 아내를 사랑하고 아끼는 법이며, 나 역시 비록 
창으로 노획한 여인이긴 하지만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소 
그런데 그자는 지금 내 품속에서 명예의 선물을 빼앗고 나를 속였소 
그자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를 시험하지 마시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9권 ‘아킬레스에게 사절단을 보내다, 간청’  

자, 여기 우리는 과연 호메로스의 현재성을, 즉 호메로스와 그 시대가 아니고 왜 ‘호메로스와 이 시대’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아직도 전근대적인 봉건적 갑질문화가 만연해 있고, 그리하여 부당한 대우와 모욕을 감수하며 상처받은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부글거리는 '감정구조an emotional structure'가 하나의 '물질성materialite'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오늘 아가멤논 같은 일부 재벌들의 오만방자한 '갑질gapjil'에 대해 아킬레스처럼 분개하고 공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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