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시인의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7. '막막하다', 박완호 시인
[하린 시인의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7. '막막하다', 박완호 시인
  • 하린 시인
  • 승인 2018.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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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는 하린 시인의 시 단평 "당신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를 매주 연재합니다. 이번 감정은 "막막하다" 입니다.>

고비 
 

박완호   


고비에 닿을 무렵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고비를 만나는 법,  
하지만 바로 지금, 이라고 여기는 순간  
고비는 한순간에 미끄러져 간다 
    
너와 함께라면,  
뭐든 달게 받아들이리라하던 때가 있었으나, 돌이켜보면 정작 큰 고비는 바로 너와 나, 우리들 자신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무딘 손끝으로는 만질 수 없는 지도 밖 모래언덕에서 방울뱀처럼 똬리를 틀고 신기루의 몸을 흔드는 너를 어떻게든 만나고 싶었다 
    
사막에서 태어났으나 거기에서 버림받은 낙타는,  
날마다 저를 낳고 버린 모래언덕의 품에 안기는 꿈을 꾸었지만 여태 울타리 밖으로 다리 한번 내밀어 본 적 없었다, 되려  
    
허구한 날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치며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허나  
    
다시 너와 맞닥뜨리는 때가 오면 맨몸으로 너를 맞으리라, 그러나 
 
이미 나는 고비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 너무 많은 당신, 시인동네, 2014. 

<해설> 

‘막막하다’라는 단어를 듣거나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막막하다’를 생생하게 체험해본 사람이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막다른 한계. 그 끝 ‘고비’ 지점에서 의지할 데 하나 없을 때 ‘막막하다’는 아픈 기억으로 각인된다. 그러니 ‘고비’는 막막함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지금-여기’의 상태이고 ‘막막하다’는 ‘고비’를 직접적으로 대변해주는 감정이다. 둘은 한 몸이 되어 불모적 상황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그런데 불모적 상황에선 자기 자신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이는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온몸으로 견디고 있던 육체적 · 정신적 알몸을 통해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자아’나 ‘본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온전히 개인적인 일로만 ‘고비’나 막막함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이나 우정, 의리 같은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서 ‘고비’가 찾아와 막막해지는 경우도 있다. 박완호 시인의 「고비」는 바로 후자의 경우처럼 관계망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고비’를 나타낸 작품이다. 시 속의 ‘너’와 ‘나’는 관계의 불화로 인해 또는 관계의 소원함으로 인해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는 것이 ‘고비’라고 화자는 위로하지만 ‘고비’의 특성상 ‘고비’는 쉽게 극복할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고비’는 극복 아니면 파국이라는 두 가지 결말을 갖는다. ‘고비’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고비’ 이후가 달라지는데 화자의 경우엔 순탄하지 않을 것만 같다. “바로 지금, 이라고 여기는 순간” ‘고비’가 “한순간에 미끄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앞부분에서 필자는 ‘고비’ 상태에 있을 때 ‘자아’나 ‘본질’이 오히려 또렷하게 부각된다고 말했다. 그것처럼 ‘사랑’이라는 본질도 ‘고비’가 왔을 때 그 근원적인 실체를 확연히 드러낸다. ‘사랑’이 있었기에 “너와 함께라면,/ 뭐든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고비에 닿을 무렵” ‘너’는 ‘나’의 곁에 없다. 화자가 “무딘 손끝으로는 만질 수 없는 지도 밖 모래언덕에서 방울뱀처럼 똬리를 틀고 신기루의 몸을 흔드는 너를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것은 ‘신기루’처럼 허상일 뿐이었다. 

‘나’는 왜 ‘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는가? 화자 자신이 낙타의 운명을 닮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낙타는 사막에서 태어나서 사막에서 살다가 사막에게 버림받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너’는 이미 ‘모래 언덕 끝’으로 넘어가 현존하는데, ‘나’는 생애 내내 한계 지점(고비)인 “울타리 밖으로 다리 한번 내밀어” 보지 못한 채 “허구한 날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치고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소극적인 사랑과 소극적인 대처. 그로인해 화자에게 남은 것은 “정작 큰 고비는 바로 너와 나, 우리들 자신이었다”라는 깨달음뿐이다. ‘고비’의 원인이 외재적 요소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내재적 요소였다는 것. 그러나 이미 사랑은 끝났고 ‘나’는 파국 직전의 “고비의 한가운데 서” 있다. “다시 너와 맞닥뜨리는 때가 오면 맨몸으로 너를 맞으리라“는 소용없는 다짐과 함께…. 

박완호 시인은 관계망에서 생긴 ‘고비’와 사막 고비(Gobi)의 상황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면서 독자가 시의 맥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심리적 ‘고비’와 현상적 고비가 경계 없이 맞물리게 한 것이다. 중견 시인의 노련한 창작 기법이 눈에 뜨여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막막함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막막함이 지속되면 시야가 좁아져 협소한 닫힌 세계를 끝내 지향하게 된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겐 극복 가능한 ‘고비’만 찾아와야 한다. 견딤을 강화시키고 활력을 제공해주는, 성장의 계기로만 작용하는 ‘고비’만 반복되길….  

 

하린 시인 약력 

2008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이 있고 연구서로는 정진규 산문시 연구가 있음.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음. 중앙대, 한경대, 광주대, 협성대, 서울시민대, 열린시학아카데미, 고양예고 등에서 글쓰기 및 시 창작 강의를 함. 첫 시집으로 2011년 청마문학상 신인상을, 두 번째 시집으로 제1회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함. 2016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시클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 사업에 선정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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