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시인 리민용, 제주4.3과 광주민주화운동은 대만의 역사와 흡사하다
대만 시인 리민용, 제주4.3과 광주민주화운동은 대만의 역사와 흡사하다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5.02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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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지난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은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가 제주 한화리조트에서 개최됐다. 본 대회는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가 주관 하에 진행됐다.  

대회의 첫날, 한화리조트 세미나실에서는 국제 문학 심포지엄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가 열렸다. 심포지엄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당했던 학살의 아픔을 조명하며 제주4.3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으며, 1부 ‘역사 속 나의 문학적 저항’에는 베트남, 대만, 오키나와의 문인들이 참여했다.  

<리민용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대만의 리민용 시인은 “국가 재건과 사회 개혁의 길 위에서”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리민용 시인은 “대만과 한국의 역사는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1947년 대만의 2.28사건은 1948년 제주4.3과, 1979년 대만의 미려도 사건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  

"대만의 2.28사건" - "제주도의 4.3" 

2.28사건은 1947년 2월 28일 대만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를 일컫는 말이다. 사건은 2월 27일 정부의 전매사업 품목인 담배를 밀수하던 노인이 단속 공무원에게 구타를 당한 것에, 주변의 시민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단속원의 총에 맞아 사망하며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분노한 시민들은 사건 발생지인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대만 전역에서 봉기했으나, 3월 초 군대에 의해 진압 당하며 이 과정에서 2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리민용은 이 사건은 단순히 사제담배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충돌만이 원인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대만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으나, 연합군 대표 자격으로 들어온 중화민국 중국국민당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리민용은 이런 가운데 대만 본토의 ‘본성인’들은 49년 이후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들어온 대륙의 ‘외성인’들로부터 차별 및 폭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즉 수사과정에서의 충돌 이전부터 대만인들에게는 폭압에 대한 불만이 내재되었으며, 중국국민당의 점거통치와 행정 부패 등을 타파해야겠다는 민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리민용은 이는 미군정과 경찰로부터 억압당한 제주도민들의 상황과 흡사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제주4.3은 단편적으로는 미군정의 폭압에 대한 도민들의 봉기로 볼 수도 있으나, 그 이전부터 제주도의 젊은 지식인들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정부의 수립을 요구하며 항쟁해왔다.”고 말한 현기영 소설가의 기조강연을 인용한 발언이다.  

"대만의 미려도 사건" - "광주의 민주화운동" 

2.28사건 이후 “일제시기 양성된 대만의 지식인, 문화인들이 거의 다 학살”되었으며 이후 문학예술계는 계엄통치에 의한 고압적 통제를 받았다고 리민용은 이야기했다. 그러며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1972년 12월 10일 미려도 잡지가 주축이 되어 가오슝에서 개최한 시위행진에서 시작된 ‘미려도 사건’을 언급했다.  

<리민용 시인. 사진 = 육준수 기자>

리민용은 이때 시위행진은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대만의 상황을 호소하기 위한 것으로, 아무런 폭력사태가 없었으나 통치당국에 의해 사전진압을 당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정부는 사건 발생 후 많은 반정부 정치인을 구금했다는 것. 이어 리민용은 “정부는 신문매체를 통해 민주화운동에 폭력이라는 오명을 씌우려했다.”고 분개하며, 자신의 시 ‘계엄풍경’을 소개했다.  

빗물이  
변색된 하늘에서 쏟아진다  
진압부대의 방패가  
번갯불에 빛을 발하고  
무장경찰의 곤봉도  
벼락 침에 반짝이고 있다  

도시에  
하나의 새로운 경계선이 나타났다  
한쪽은 비무장의 군중이고  
한쪽은 가스 최류탄  
민성로(民生路) 민첸로(民權路)에서 민주로(民族路)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습기로 축축한 어두운 밤 

-「계엄풍경(戒嚴風景)」

미려도 사건 이후, 리민용 시인은 항상 거리에서 시위행진에 참여했다며 “자신의 문학적 저항은 때때로 현상을 직접 겨냥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 ‘미려도 사건’은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과 시점, 성격이 거의 일치한다고 덧붙였다.  

리민용은 자신을 비롯한 동년배의 전후세대들은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만 국가 재건과 사회개혁’을 이루고자 문화예술계, 문화학술계, 사회운동계, 정치계 전반에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리민용은 이야기했다. 1987년 2월 28일 2.28사건 40주년이 되는 해에는 계엄통치체제에 반대하는 작가 및 편집인들이 ‘대만필회’를 구성해 저항 의사를 표출하기도 했다는 것. 리민용은 이러한 각계의 노력들이 쌓여 같은 해 7월 15일, 통치당국은 38년간의 계엄통치 해제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발제를 마치며 리민용은 이런 아픈 역사를 겪은 대만과 한국의 문학종사자들은 “여전히 민주화, 자유화의 빛과 그림자가 교착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며, 수많은 상흔을 남긴 역사에 대한 심층적 관조가 있어야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리민용 시인의 발제 뒤에는 오키나와의 소설가 메도루마 슌이 발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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