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기고
[소설 추천] 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6장 유충
장희태 소설가 | 승인 2018.05.10 14:47
뉴스페이퍼에서는 장희태 소설가의 장편 소설을 "미리 죽는 인간"을 격주 연재합니다.

유충

굳이 웨딩 사진을 버린 이유 말입니까? 글쎄요. 선생님이라면 그 액자를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쁘게 포장해서 재혼한 엄마에게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지금까지 저 같은 인간의, 비틀린 진술이 녹취된 테이프를 수천 개는 들어왔다고 했죠. 일 때문이든 아니든, 그 정도면 이미 선생님 안에도 괴물이 자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그 테이프들을 들을 때만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지도 모르죠. 아니면 그것들을 듣지 않고서는 흥분하지 못하던가. 선생님은 아무리 봐도 이성에게 인기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 그 테이프들을 들으며 자위라도 하는 거 아닙니까?

네, 저는 물론 그날 울지 않았습니다. 눈에 띄는 건 괴로운 일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은 아니었죠. 저는 단지 이사 갈 집을 정리 한 것뿐입니다. 그 집은 큰아버지 명의로 된 집이었지만, 큰아버지는 평생 햄버거 하나 스스로 사먹어 본 적이 없을 만큼 수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죽은 순간 아파트는 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저는 그 집을 당장 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이혼한 엄마와 죽은 아버지 사진을 놔 둘 이유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제가 그런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여럿 죽었던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사실 이 세상에 무덤 아닌 곳은 없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그 액자를 직접 본다면 곧바로 느끼시겠지만, 심령사진이라도 본 듯 기분이 나빠집니다. 엄마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참는 것처럼 윗니로 아랫입술 전체를 깨물고 있는데, 초승달 같은 눈은 기괴할 만큼 활짝 웃고 있습니다. 아빠의 시선은 카메라 저 너머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지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이 마주잡은 손도 닿아있지 않고 허공에 어색하게 떠 있습니다. 그 뒤로 초점이 빗나간 큰아버지와 할머니, 하객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보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 액자를 거의 매일 들여다보았습니다. 엄마는 저를 때릴 때마다 그 액자를 떼어 맞은편 소파 있는 벽에 옮겨 걸었거든요. 키가 작았던 저는 소파 위에 올라서서 바지 밑단을 걷었습니다. 썩은 뿌리처럼 까맣게 멍든 종아리를 타고, 히스테릭한 욕설과 다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온 몸 구석구석까지 퍼졌습니다. 엄마의 들끓는 감정도 함께 말입니다. 저는 그 액자를 들여다보며 엄마가 이 세상에 품고 있는 증오, 엄마가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악의 같은 것들을 남김없이 빨아올렸습니다. 저는 그 일그러진 감정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제가 엄마를 정말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고함을 지를 때면 액자 속 그녀의 모습이 거인처럼 부풀었습니다. 저는 아픔보다 그 환각이 두려워 손톱이 부러지도록 벽을 움켜쥐었습니다. 저는 비록 뒤돌아 있었지만 누구보다 엄마를 똑바로 보려 몸부림쳤는데, 그녀는 그때 저를 제대로 보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단지 액자를 보고 있었던 걸까요. 엄마가 웨딩사진을 도로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저는 이제 매질이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엄마는 뒤에서 저를 끌어안은 채 어깨를 들썩였고, 저는 힘을 주느라 욱신거리는 팔로 엄마의 짧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지요. 그 순간을 위해 매 맞는 것을 참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만은 아마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엄마는 그 때를 제외하면 절대로 울지 못하는 여자였으니까.

집을 판 이유 말입니까? 글쎄요. 결정적으로 제 직장에서 너무 멀었습니다. 런웨이와, 호스티스 클럽 말이에요. 네, 선생님 말씀대로 아버지가 죽은 날 둘 다 그만 두기는 했지만, 그건 큰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네, 모자란 큰아버지 말입니다. 제가 그 날 2002호에서 발견한건 죽은 아버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괴물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다름 아닌 큰아버지였습니다.

나는 유라의 손에서 부모님의 웨딩 사진을 빼앗는다. 유라가 버티는 바람에 액자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다. 조각난 유리 파편들이 발등을 스친다. 나는 반사적으로 유라를 소파로 밀치고, 깨진 액자를 쓰레기봉투 바닥 깊숙이 처박는다. 유라가 씩씩거리며 일어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통째로 넘어뜨린다. 거실은 순식간에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아빠의 체액으로 범벅돼 갈색으로 변한 커튼과 구더기 몇 마리가 다시 거실을 나뒹군다. 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안방으로 도망간다.
“바보”
나는 쓰린 발등을 만지며 따라간다. 바닥에 말줄임표처럼 핏방울이 찍힌다. 유라가 무릎을 꿇고 발등에 흐르는 피를 핥으며 중얼거린다. 
“미안해”
나는 둥근 어깨를 잡아 일으킨다.
“봐, 여기만 새집 같아”
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새 벽지가 발린 벽을 쓰다듬는다. 공들여 만든 모래색 손톱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느라 가장자리가 다 벗겨져있다.
안방에는 단 하나의 물건도, 심지어 가구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벽에 붙어있어 버리기 힘든 붙박이 장롱 하나가 전부다. 사방의 벽이 새로 도배한 스노우화이트색 벽지로 둘러싸여 있고, 바닥에는 표면이 매끈하게 처리 된 오크나무가 깔려있다. 안방에는 거실에서 생활한 아버지의 흔적뿐만 아니라, 떠나버린 엄마의 흔적조차 없다. 어쩌면 엄마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텅 빈 안방이 엄마의 흔적 그 자체인지도 모르지만. 
“왜 아빠는 쓰지도 않을 안방을 새집처럼 바꿔 놨을까?”
유라의 긴 팔이 뒤에서 허리를 안아 감는다.
“애도 같은거 아닐까? 내 행거에도 잘 다린 아빠 셔츠가 걸려 있거든. 이렇게 아껴두지만은 않고 가끔 헐렁하게 입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낡은 붙박이 장롱을 확 열어젖힌다. 장롱 안에는 단 한 벌의 옷조차 걸려 있지 않다. 나무줄기로 짠 라면박스 크기의 커다란 바구니 하나가 전부다. 어릴 적 큰아버지가 그린 기괴한 그림들을 담아두던 바구니다. 나는 까슬한 바구니를 안아든다.
“어쨌든 죽기 전 아버지가 왜 거실에서 살았는지는 알겠어”
2002호의 철문이 기억보다 훨씬 얇고 가볍던 것과 달리, 바구니는 기억보다 몇 배나 묵직하다. 옆구리가 당기고 팔이 후들거린다. 밥을 굶어서 그런가. 사과파이라도 먹어 둘 걸. 나는 바구니를 신경질적으로 소파에 팽개치고 뚜껑을 연다. 커다란 액자가 박스 속 가득한 종이뭉치를 누르고 있다. 또 망할 액자. 액자 속에는 이십 대의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어깨동무를 한 채 활짝 웃고 있다. 유라는 어김없이 액자를 집어 든다. 망할 년.
“이분은 되게 미남이네. 네 아버지셔?”

나는 고개를 젓는다. 유라가 액자를 들어 올리자, 눌려있던 하얀 편지봉투들과 통장들이 바구니 밖으로 흘러넘친다. 통장은 내 것과 큰아버지 것이었는데, 십 년 전부터 매달 오십만 원씩 저축이 되었다가 최근 몇 달 사이 마이너스로 바뀌어 있다. 나는 한참동안 통장의 누렇게 바랜 숫자들을 손가락으로 소리 나게 문지른다. 변색된 통장 종이가 때처럼 밀린다. 유라가 액자를 들여다보다말고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너 엄청 부자였네”
나는 액자를 바닥에 뒤집어 놓고, 바구니 밖으로 떨어진 편지봉투 겉봉들을 훑어본다. 평범한 고지서들이다. 얼핏 봐도 수백 통이 넘는 고지서들이 바구니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 장을 뜯어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 한 달 전에 출시된 최신형 핸드폰 고지서다. 수취인은 큰아버지. 아버지가 그 사이 큰아버지에게 핸드폰을 만들어 준걸까? 또 다른 편지봉투를 뜯는다. 이번에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다른 핸드폰 고지서다. 수취인은 역시 큰아버지. 택시 유니폼조끼 양쪽 주머니에 최신형 핸드폰을 넣고 다니는 큰아버지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자기 손가락 개수도 못 세는 사람이 왜 최신모델의 핸드폰을 개통했을까?”
이번만큼은 유라도 고개를 젓는다. 다른 봉투들도 살핀다. 수십 개가 넘는 핸드폰, 은행, 캐피탈, 신용카드, 모든 고지서의 수취인은 어김없이 큰아버지다. 봉투를 든 손이 떨린다. 유라의 마르고 긴 손가락이 내 손을 꽉 붙든다. 
“왜 그래?”
“아빠를 죽인 건 큰아버지야”
 

큰아버지는 집안의 장손이었습니다. 여덟 이상을 세지 못하고 대부분의 글도 읽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큰아버지를 장애인으로 등록시키지 않고 중학교까지 악착스럽게 졸업시켰습니다. 밭에 나가 있다가도 점심시간만 되면 꼭 학교로 찾아가 두 형제에게 직접 도시락을 전해 주었으니까요. 아버지 역시 쉬는 시간마다 큰아버지의 반에 찾아가, 형을 괴롭히는 선배들과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 믿을 수는 없지만요. 기억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죄의식이든 뭐든 덜어내고 덧붙이기 위해 변형되고 뒤틀리고……. 바보 같은 큰아버지를 속이는 것쯤 일도 아닐 테니까요. 아버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유년시절은 고난이 있을지언정 올바르고 정의로웠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 ‘너는 키는 아빠보다 훨씬 큰 놈이 왜 성격은 엄마를 닮아 소심하냐?’ 는 말을 호탕하게 덧붙이고는 했으니까요. 저는 그때마다 아버지가 보는 엄마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소름이 끼치곤 했습니다.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속으로 아버지를 비웃었지요. 저의 유년은 탈바꿈을 고대하는 징그러운 유충같은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가 중학교 졸업장을 받은 날, 할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비싼 집세를 감당하기 위해 할머니는 두 집안의 파출부 일을 했고, 큰아버지는 할머니의 먼 친척이 근무하는 공장의 말단 직원으로 일했지요. 그때부터 큰아버지는 공장의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고, 하루 열두 시간 넘게 기계를 닦거나 나사를 조였습니다. 
제가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자세히 기억하는 건,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서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어째서인지 아빠 이야기보다도 큰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지요. 말을 더듬는 큰아버지가 스스로는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언제나 ‘큰아버지를 존경해야 한다.’ 는 말로 시작되고는 했습니다. 제게는 ‘큰아버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로 들렸지만요.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취직하던 다음해 이십년 상환으로 아파트 2002호를 마련했습니다. 공장까지 도보로 한 시간 거리의 집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은 일절 할 수 없었지만, 그 특유의 성실함 덕에 곧 공장장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히 부려먹기 편했던 것뿐이겠지만요. 몇 차례의 구조조정 끝에도 큰아버지는 그 공장에서 꾸준히 하루 열두 시간 일을 했고, 아파트 상환금을 모두 갚고도 한참을 더 일할 수가 있었지요. 할머니가 그런 큰아버지를 대견스러워 한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장남 며느리를 보고 눈을 감아야 되는데 그걸 못보고 가는 게 한이라며 하염없이 우셨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도 한참동안이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마치 수도꼭지가 잠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초점 없는 눈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비유하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건 비유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늘 분명하고 단정적인 사람이었으니까요. ‘넌 어른이다.’ ‘네가 알아서 해라’ ‘네가 책임져라’ ‘난 네 의견을 존중한다.’ 아버지는 늘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어리고 엇나가도, 아버지는 다만 낚시에 전념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울면서, 할머니는 엄마 손을 꼭 붙잡고 마지막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아가······. 그래도 내가 장남 앞으로 집 한 채를 남겼어야. 이 집은 이제 자네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께, 큰아들을 잘 좀 부탁허네. 자네······처럼 부탁허네. 두 사람 몫……부탁허네”
그게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답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욕도 섞지 않고 그런 식으로 말했다니 믿기지는 않지만, 옆에서 들은 아버지의 말이니 틀림없겠지요. 
‘네가 두 사람 몫을 해야 한다.’ 
그건 생전에도 할머니가 늘 어머니에게 하던 입버릇이었습니다. 두 사람 몫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아내와 며느리 몫을 모두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아내와 엄마 몫을 모두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와 큰아버지 두 사람의 아내 몫이나, 저와 모자란 큰아버지 두 사람의 엄마 몫을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하긴, 두 사람 몫을 한건 엄마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혼자 두 아들을 키워낸 할머니는 평생 그들의 엄마이자 아빠였고,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동생이면서 형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엄마의 아주버님이자 큰아들이었고, 저는 엄마의 아들이자 공범이었습니다. 선생님도 두 사람 이상 몫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루한 이야기를 성실하게 참고 듣거나, 흥분되는 이야기를 사무적으로 녹취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역할 때문이겠지요.
 
여하튼 저 또한 나름대로 두 사람 몫을 하며 자랐습니다. 모두가 큰아버지를 아이처럼 돌봤기 때문에, 저는 진짜 아이었음에도 전혀 아이 행세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것. 내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해야만 하는 것, 어쩌면 두 사람 노릇을 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닙니까? 집안의 어느 누구도 제가 엄살을 피우거나 어리광을 부리는 것을 받아주지 않았고, 저는 실제 이상으로 어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제 안에 우글거리는 비합리와 모순 같은 것들을 철저히 거세해야만 했죠. 그때만 인정받는 가족 구성원의 하나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나는 고지서에 찍힌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건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스무 개가 넘는 전화번호를 일일이 확인해 보지만, 연결이 되는 번호는 단 하나도 없다. 쭈그려 앉은 유라가 쌓인 고지서를 읽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올려다본다.
“반상원이 누구야? 아버지니?”
나는 또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느새 거실이 황혼으로 물들고, 유라는 계속해서 고지서들을 살핀다.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벨 듯 귓전에서 서걱거린다. 바닥에는 차량 취득세 고지서도 있다. 차량공포증이 있는 큰아버지가 고가의 독일차를 구입한 것이다. 나는 차를 운전하는 큰아버지를 상상해 본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지문이 묻을 정도로 핸들을 꽉 쥔 큰아버지. 브레이크페달에서 좀처럼 굳은 발을 떼지 못하는 큰아버지. 차 안에서 스무 개가 넘는 핸드폰들이 저마다 다른 벨소리로 울어대고, 한 없이 먼, 우리가 없는 어디론가 향하는 큰아버지……

 

장희태 소설가

1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2012 창작과비평 봄호에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 수록 2015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출판한 신예작가에 해달이 조개를 건네는 이유 수록

장희태 소설가  info@news-paper.co.kr

<저작권자 © 뉴스페이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구로구 새말로 18길 32 신흥빌딩 5층  |  대표전화 : 02-855-4495   |  팩스 : 02-864-4495
등록번호 : 서울, 아03859  |  등록일자 : 2015년 8월 17일  |  발행인 : 이민우  |  편집인 : 이민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민우
Copyright © 2018 뉴스페이퍼.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