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상 논란 팔봉비평문학상, 제29회 수상자로 조재룡 고려대 교수 선정
친일문학상 논란 팔봉비평문학상, 제29회 수상자로 조재룡 고려대 교수 선정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5.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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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친일문학인 중 하나인 김기진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팔봉비평문학상이 제29회 수상자로 조재룡 고려대 불문과 교수를 선정했다. 심사는 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 정과리 연세대 교수가 맡았다.

팔봉비평문학상은 김기진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1990년 한국일보가 제정했으며, 동인문학상, 조연현문학상에 이어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세 번째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이다. 제정 이후 간헐적으로 김기진의 친일행위에 대한 비판이 있었음에도 시상되어 왔으며, 17년 미당문학상 등 친일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었지만 올해 29회 수상자를 발표했다.

친일문학상 토론회 모습 <사진 = 뉴스페이퍼>

김기진은 태평양전쟁 시기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인물로, 각종 반민족단체 조선문인보국회 상무이사, 조선언론보국회 이사, 대일본흥아회 조선지부 총무위원 등을 지내며 집필 뿐 아니라 연설과 강연 활동으로 일제의 침략을 선전했다.

44년 8월 조선문인보국회가 주최한 적국항복 문인대강연회에서 ‘문화인에 격함’이라는 연설을 하며 “우리 일본 국민의, 동아인의 오늘날 역사적 지상명령은 미, 영을 격파해서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하루빨리 전력을 증강하는 일이며, 1억의 전력을 급속히 증강하기 위해서는 반도 2천6백만의 혼이 불덩어리로 활활 타오르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45년 7월 조선언론보국회가 각 지방 신문사와 공동으로 주최한 ‘본토 결전과 국민의용대 대강연회’에서 연사로 활동했다.

일제의 적국을 비난하고 희생을 강조하는 글귀도 남겼다. 41년 ‘대아세아주의와 김옥균 선생’에서 중일전쟁을 ‘동아 신질서 건설의 역사적 사명을 가진 성전’이라 주장했으며, 44년 10월 ‘경산시첩’과 같은 작품에서 “이 산과 이 냇가에 우리는 이웃사촌 / 삼천리 한집이요 내선이 일가어늘 / 어찌나 이 큰 전쟁이 내 싸움이 아닐까”라며 일제의 전쟁을 조선인의 전쟁으로 받아들이도록 썼다. 41년 12월 13일자와 16일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아세아의 피’에서는 일본의 적국을 비난하며 승리를 노래한다.

“마침내 ‘선전포고’다! / 영미 두상(頭上)에 폭탄의 피를 퍼부어라! / ...... / 태평양 동쪽의 언덕언덕을 구석구석을 / 기만! 통갈! 회유! 사취! 살육! 강탈! / 끝없는 탐욕의 사나운 발톱으로 유린하여 오던 / 오! 저 악마의 사도를 들몰아낼 때가 왔다 // 극동의 해가 찬란한 해가 뚜렷한 일장기가 / 아침 하늘에 빛난다 이글이글 탄다 / 황공하옵게도 조서가 내렸다! ‘선전포고’다! / 1억의 국민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기약하지 않고 일치해버렸다.”

김기진은 일제에 의해 일어난 싱가폴 함락, 홍콩 함락, 마닐라 점령 등을 축하했으며 44년 10월 19일 “매일신보”에 발표한 ‘의기충천’에서 “일찍이 우리가 바친 놋그릇들이 모조리 어뢰되어 /지금 서남태평양에서 악의 무리를 쳐부수는구나. / 일찍이 공장에 들어간 아우가 누이가 정성을 다해서 / 못 한 개 나사 한 개 소홀히 하지 않은 우리의 비행기가 / 지금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놓치지 않고 뒤쫓아가네 / 아아 주먹에 땀을 쥐고 이를 갈면서 우리도 따르자”고 하며 침략전쟁에서의 희생을 주장했다.

또한 징병과 학병을 선전, 선동하는 글도 남겼다. 43년 8월 1일 징병제가 시행되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에서 “반도의 아우야, 아들아 나오라! / 님께서 부르신다, 동아의 백만의 천 배의 / 용감한 전위의 한 부대로 너를 부르신다 / ......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광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 죽음 속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의 문이 열리었구나”라며 일제에 대한 희생을 강조했으며, 같은 해 학도병제가 실시되자 11월 6일자 ‘매일신보’에 ‘나도 가겠습니다 – 특별지원병이 되는 아들을 대신해서’에서 “한 사람에 천 년의 목숨 없고 / 천 살을 산들 썩어 살면 무엇에 씁니까! // 대대로 받아 내려온 제 몸의 이 더운 피 / 이 피는 조선의 피이며 일본의 피요, / 다 같은 아세아의 피가 아니오니까 / 반만년 동양의 역사가 가르칩니다 // 지금, 동양의 역사를 동양 사람의 피로 새로이 쓸 때 - / 지금, 아세아의 지도를 동포의 피로써 새로이 그릴 때”라며 학도병제를 찬양하고 전쟁터로 나가길 종용했다. 이밖에도 “가라! 군기 아래로 어버이들을 대신해서”, “연두무운송” 등 학병제를 옹호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 미체포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자수하거나 체포되지 않고 공소시효를 넘겼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육군종군작가단에 입대했다. 52년 작가단 부단장으로 활약하며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7년 미당문학상 시상식장 앞에서 진행된 반대 집회 <사진 = 뉴스페이퍼>

- 관대한 입장 취하겠다는 ‘암묵적 계약서’ 도장찍기... 문학사적 평가에 영향력 행사

친일문학상 논란에는 문학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념하겠다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상은 단순히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것을 넘어 과를 가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오창은 평론가는 친일문학상 논란이 한창이던 2002년 발표한 “친일문인 문학상 제도의 실태와 문제점”에서 ‘문학상 제도’를 “문학사적 평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모종의 음모”라고 보았다. “문인들이 친일 행적을 가진 문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 무의식 중에 친일 행적에 관대한 입장을 취하겠다는 '암묵적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형국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어 "팔봉비평문학상"에서 문학상 제도의 힘이 명료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오 평론가는 “수상자들이 팔봉 김기진의 일제 말 행적을 비껴가거나 두리뭉실하게 언급하며 피해간다”거나 “카프문인으로 활동했던 1920년대의 행적을 부각시키고 있다”며 94년 수상자 김병익과 96년 수상자 염무웅의 발언을 인용했다. 김병익은 “‘1920년대 팔봉은 식민통치를 당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 문학은 어떻게 현실을 변혁시켜야 할 것인가’를 외치면서 사회주의 문학론을 끌어들여 현실에 대한 문학의 도전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염무웅은 “‘팔봉의 친일 행동을 민족의 공동 책임 안에 희석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팔봉의 시대를 초극하는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다는 의미에서 상을 수락했다는 모순된 태도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당시 “친일문인 문학상은 이미 제도로 고착되어 있어 당대 문인들의 경험에 간접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문학상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적 힘'과 '문화적 영향력'을 지속시키면서 현재의 문인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오 평론가의 경고는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팔봉비평문학상 운영위원회 간사를 맡은 홍정선 교수는 작년 친일문학상이 논란이 되자 “팔봉비평문학상을 만들어서 수상을 하는 이유는 팔봉 선생처럼 근대문명의 사다리를 힘차게 걸어 올라간 사람들이 마주쳐야 했던 폭력적 침략의 얼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 기억이 문학상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당위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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