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소개된 최초의 과학소설은?’ “해저여행기담” 전시와 함께하는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강연 성료
‘한국에 소개된 최초의 과학소설은?’ “해저여행기담” 전시와 함께하는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강연 성료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5.2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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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진행 중인 모습 <사진 = 김상훈 기자>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과학소설은 어떤 것일까? 연구자들은 쥘 베른이 쓴 과학소설 “해저 2만리”를 일본 한인 유학생들이 “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談)”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태극학보”에 연재한 것을 첫 소개로 보고 있다.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과학소설 “해저 2만리”를 동시대 예술가와 애니메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재구성한 전시 “#해저여행기담_상태 업데이트”가 “플립북 : 21세기 애니메이션의 혁명” 전시의 번외편으로 개최됐다. 전시는 8월 12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진행 예정이며, 전시를 기념해 20세기 한국의 SF 도입 역사를 살펴보는 특강이 마련됐다. 

26일 일민미술관 3층 강연실에서 진행된 이번 특강에서는 한국SF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SF아카이브 박상준 대표가 강연자로 나섰다. 서울SF아카이브 박상준 대표는 국내에 몇 안 되는 SF연구자 중 한 명으로, “해저여행기담”을 시작으로 국내에 어떤 작품들이 소개됐고, 어떤 작품을 첫 과학소설로 보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다. 

재일유학생 학술지에 연재됐던 “해저여행기담”은 쥘 베른의 과학모험소설 “해저 2만리”를 번안한 것으로,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연재됐으나 도중에 중단되어 제대로 끝을 보지는 못했다. 박상준 대표는 “연구자들 사이에 이것보다 더 앞선 과학소설 텍스트는 없다고 확실시 되고 있다.”며 “해저여행기담”을 한국에 소개된 최초의 과학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쥘 베른의 작품은 국내에 여러 차례 소개되는데, 1908년에는 쥘 베른의 “인도 왕비의 유산”이 신소설 작가 중 하나인 이해조가 번안을 맡아 “철세계”라는 제목으로 회동서관을 통해 출간됐다. “철세계” 또한 번안 작품으로, 당시에는 원본에 충실한 번역 작품보다는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고자 했던 번역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는 번안 작품들이 주로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1925년에는 박영희가 번역을 한 “인조노동자”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인조노동자”는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카렐 차펙의 희곡 “R.U.R”을 번역한 것이다. 카렐 차펙의 “R.U.R”이 1920년 발표된 것을 고려하면 “국내에 과학소설이 소개된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늦은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 박상준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나 개화기 초기 다양하게 우리말로 소개되어온 과학소설 작품은 일제의 지배가 길어질수록 점점 줄어들게 된다. 박상준 대표는 “30년대 초반까지 소개되었던 작품들은 30년대 중후반과 40년대로 들어오게 되며 한글로 된 모든 종류의 기록물 자체가 줄어들어버린다.”며 “젊은 지식인 청년들에게 일본어가 모국어인 시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1926년 “팔십만년후의 사회”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됐던 H.G.웰스의 “타임머신”은 도중에 연재가 중단되게 되고, 제대로 된 완역판이 소개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고 난 다음이었다.  

강연 중인 박상준 대표 <사진 = 김상훈 기자>

그렇다면 최초로 창작된 SF는 어떤 작품일까?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29년 소설가 김동인이 잡지 신소설 12월호에 발표한 ‘K박사의 연구’다. 미래 식량 연구를 하는 K박사를 등장시키며 새로운 과학기술이 유입되며 생겨날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그려낸다. 박상준 대표는 “작품이 발표된 1929년은 영미권에서는 SF잡지가 월간지로 발행되고 있던 때.”라며 “만약 ‘K박사의 연구’가 영미권 잡지에 SF작품으로 투고됐다면 일정한 반응을 끌어낼 가능성 충분하다.”고 보았다. 

1933년 동아일보 김자혜 기자가 쓴 콩트 “라듸움” 또한 “신문물이 들어온 전환기의 모습을 잘 그려냈기에 과학소설로 불려질 수 있다.”며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들어오던 시기, 과학에 무지한 사람과 최신기술에 밝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박상준 대표는 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국내에서 발견됐던 작품들을 소개했으며, “작품성을 평가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작품은 60년대에 나오기 시작한다.”며 김윤주 작가의 “재앙부조”를 소개했다. ‘재앙부조’는 핵전쟁 후의 서울 폐허를 배경으로 “폐허 속에서 방사능에 의해 병을 얻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국SF 창작사에서 재앙 이후의 다룬 작품 중 선두적이자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아작 출판사를 통해 돌아올 예정인 완전사회

박상준 대표는 이어 65년 발표된 문윤성 작가의 “완전사회”를 소개하며 “한국 창작 SF의 선구자격이자 어느 면모에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완전사회”는 UN이 타임캡슐의 궁극적 형태로 살아있는 인간을 미래로 보내기로 고안하고, 한국인 남성 우선구를 선택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긴 잠에서 깨어난 우선구는 여성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박상준 대표는 “이 작품이 자기의 가치를 제대로 보아줄 수 있는 독자를 50년 이상 기다려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완전사회’는 어떻게 여성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통속적이거나 말초적인 상상이 아니라, 사회학적이고 역사적, 과학기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고 전하고 꼭 읽어보기를 권했다. “완전사회”는 오는 30일 SF전문 출판사 아작을 통해 완전판으로 재출간될 예정이다. 

이날 강연은 약 2시간가량 진행되었으며, SF 발전사 뿐 아니라 과학소설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변했는지 등도 소개됐다. 강연이 끝난 이후에는 참가자와의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한편 “해저여행기담”을 재구성한 “#해저여행기담_상태 업데이트” 전시는 오는 8월 12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공상과학소설 용어를 설명 중인 박상준 대표 <사진 =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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