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소설] 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 7장 누구나 약해지고 싶다
[추천 소설] 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 7장 누구나 약해지고 싶다
  • 장희태 소설가
  • 승인 2018.05.3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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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소설]장희태 소설가의 미리 죽는 인간, 제 7장 누구나 약해지고 싶다

뉴스페이퍼에서는 장희태 소설가의 장편 소설을 "미리 죽는 인간"을 격주 연재합니다.

유년시절 큰아버지가 집을 떠나는 꿈을 자주 꿨습니다. 큰아버지를 내쫓겠다는 엄마의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으며 자랐으니까, 그게 저의 진짜 마음인지 엄마의 주문이 각인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 스스로 잘 안다고 믿었던 저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환경의 잔해, 엄마의 잔여물 같은 것들이었죠. 

여하튼 큰아버지는 수백 수천 번의 꿈속에서 단 한 번도 차를 타지 않았습니다. 버스나 기차도 이용하지 않았고, 날거나 뛰지도 못했지요. 큰아버지는 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하염없이 걸어 어딘가로 떠났습니다. 꿈속에서 저를 괴롭힌 친구를 죽이거나 엄마와 섹스도 해보았지만, 그곳에서조차 제 무의식이 상상하지 못할 일은 있었던 겁니다. 
 
큰아버지는 차를 두려워했습니다. 탑승공포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버스 계단에도 오르지 못해, 한 시간 거리의 출퇴근길을 십년 넘게 걸어 다녔으니까요. 몇 번이나 허물어지고 뒤바꼈을 그 길을, 큰아버지는 한걸음씩 뚜벅뚜벅 오간 겁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요? 그때는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상경한 기념으로 사진관에서 찍은 게 바로, 유라가 발견한 액자 속 흑백사진입니다. 큰아버지가 차를 일절 타지 못하게 된 건 제가 초등학생 때, 경찰서에서 길 잃은 큰아버지를 찾아온 뒤부터입니다. 

그 날 아버지는 형광색 방수 천으로 만든 택시회사 조끼를 큰아버지에게 직접 입혀주었습니다. 매직으로 조끼 앞쪽에 전화번호를, 등판에 ‘이 사람을 발견하면 전화해주세요. 사례하겠습니다.’ 라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적어서 말이에요. 그런 걸 입느니 차라리 벗고 다니는 게 나을 텐데, 큰아버지는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곧 그 조끼를 자신의 피부처럼 여겼습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그 조끼를 맨 위에 걸쳤고, 잘 때나 샤워할 때조차 그걸 벗지 않았죠. 조끼 벨트가 고장 나고 전화번호와 문구가 다 닳아 흐려져도, 큰아버지는 그 조끼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큰아버지는 단순히 그 조끼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잃어버리길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그 조끼가 사라지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진다고 느끼는 것 같았죠. 그 조끼를 입고 난 뒤부터 공중목욕탕도 한번 가지 않았으니까요. 
 
재킷 주머니 좀 뒤져주시겠습니까? 손에 핫소스가 묻어서요. 핸드폰 말고, 네, 바로 그 사진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은 어릴 적 아버지보다 큰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형제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저는 그때마다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고 있는 가족 모두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 할머니가 큰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는 말을 했던가요? 그건 아마 전혀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 큰아버지의 준수한 외모도 한 몫을 했을 겁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추하고 비열한 존재에게 아름다운 외모가 씌어지는 부조리가. 큰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불쌍히 여기고 호감을 가졌지만, 엄마만은 결코 속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그때부터 이미 그가 모두를 해칠 걸 꿰뚫고 있었던 걸까요?
 
엄마에게 큰아버지는 멋진 벌레, 혹 덩어리였습니다. 적어도 제 앞에서 엄마는 늘 큰아버지를 그렇게 대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한결같이 말이에요. 전화만 와도 곧바로 목소리를 완전히 바꾸는 엄마가, 그렇게 변함없이 대하는 사람은 세상에 저와 큰아버지 둘뿐이었습니다.
엄마는 큰아버지 때문에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상에서 그를 욕했습니다. 고무장갑으로 가족들이 벗어놓은 옷을 집어 바구니에 담을 때, 반찬에 간이 맞지 않거나 밥이 질게 됐을 때, 소파 위에 선 저를 때릴 때도 엄마는 큰아버지를 욕했습니다. 마치 그래야만 불공평한 세상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큰아버지는 실제로 잘생긴 백치나 다름없었지만, 서류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는 성실한 납세자이며 벌금조차 문 적 없는 모범시민이었습니다. 엄마는 세대주가 큰아버지로 되어있는 집세를 고스란히 낼 때, 인터넷이나 전화 요금을 깎지 못할 때, 공영주차장에 돈 주고 차를 주차시킬 때, 장애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든 상황을 참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큰아버지를 병원이나 섬으로 보내고 말거라며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힘껏 내팽개쳤지요.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 그는 언제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세계는 가족이 전부였으니, 사실 왕이나 다름없었죠. 저는 그때마다 자신의 결점을 당당하게 인정받은 큰아버지가 부러웠습니다. 내가 더 모자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부러 부러뜨린 팔에 깁스를 감고 학교 옥상에 서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곤 했으니까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쏠리는 애정을 질투하는 첫째처럼, 저는 그를 욕하고 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바보였지만 노동으로 단련된 신체 건강한 어른이었고, 아빠와 할머니의 절대적인 비호를 받고 있었으니까요. 
 
대신 저는 손닿는 곳에 있는 미숙한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몇 차례 엇나간 일을 저지르고 난 후, 저는 아무리 연기를 하고 노력을 쏟아도 이 부분에서 큰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어쩐지 제가 노인이 된 것처럼 느껴졌지요. 큰아버지는 2002호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 노릇을 하지 않은 인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다행인건 엄마가 저와 있을 때만은 큰아버지에게 다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 엄마마저 그랬더라면, 저는 도저히 그곳에서의 생활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큰아버지의 감정표현은 늘 과장됐는데, 엄마는 큰아버지가 필요이상의 행동을 하는 걸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고맙거나 미안하다는 표현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신하게 했고, 크게 웃거나 큰소리로 말하면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엄마의 속옷에 손을 대거나 자신의 팬티 속에 손을 넣고 있는 걸 발견할 때는 빗자루로 흠씬 두들겨 패기도 했지요. 그래도 큰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애정표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펄쩍펄쩍 뛰면서도 팬티 속에 넣고 있는 손을 쉽게 빼지 않았으니까요. 말씀드렸듯, 성실함은 큰아버지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었습니다.
 
물론 그 모든 일들은 할머니가 있을 때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큰아버지는 세상에서 할머니에게 가장 성실했고, 그 다음이 아버지와 엄마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큰아버지의 사리분별 능력이 더럽고 비열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은 다 알고 있으면서, 모든 걸 독차지하기 위해 바보인 척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잠시 마주치는 타인 앞에서라면 저도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바보나 현자, 천사부터 악마까지 말입니다. 그것들은 이미 조금씩 제 안에 있으니까요.
 
할머니 앞에서만 모자란 머리를 쥐어짠 큰아버지가 효자라면, 엄마도 좋은 며느리였습니다. 할머니가 있을 때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큰아버지에게 살가웠으니까요. 수저에 생선살을 발라 얹어주고, 작업복 단추까지 일일이 잠가주었습니다.
유일하게 큰아버지의 땀에 전 조끼를 잠깐 벗길 수 있는 것도 엄마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머니 앞에서 큰아버지를 챙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손을 빌려야만 얌전히 조끼를 벗는 큰아버지를 노려보며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그를 쫓아내고 엄마를 구해내겠다고. 
하지만 결국 집을 떠난 건 저였습니다. 저는 뻐꾸기새끼에게 밀려 떨어진 작은 새처럼, 눈을 뜨고 깃을 펴기도 전에 태어난 둥지에서 추락했습니다.
 
 
“이게 다 얼마야?”
유라가 종이 뭉치를 집어 들고 입을 벌린다. 요금을 내지 못해 고지서들이 계속 쌓이고 있다. 뜯어보지도 않은 독촉장들만 수십 통이 넘고, 하나같이 삼십 포인트가 넘는 진한 글씨로 ‘긴급통보’니 ‘변제최고장’이니 ‘압류경고’니 ‘법적절차 착수 예고서’니 하는 문구들이 적혀있다. 이미 일주일 전에 아파트2002호마저 경매로 나온 상태다. 흙 묻은 구둣발로 집안을 활개 치며, 장판 위에 담배를 떨던 형사의 얼굴이 머릿속을 잠깐 스친다. 
유라가 중복된 고지서들을 제외하고 금액을 합친다. 스무 개가 넘는 휴대폰 단말기요금만 해도 천오백만원에 달하고, 차량세, 은행, 캐피탈, 사채 등을 모두 합치자 삼억이 넘어간다. 은행 빚은 큰아버지가 사십년간 일했던 직장의 퇴직금을 담보로 빌린 돈이고, 캐피탈과 사채는 바로 이 집, 아파트 2002호를 담보로 빌린 돈이다. 어찌됐든 여긴 엄연히 큰아버지 명의로 된 집이었으니까. 
“삼억?”
유라가 짧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합친 금액을 되짚어본다. 삼억 이천칠백구십만 원, 익숙한 숫자. 주머니를 뒤져 찢어진 아버지의 유서를 이어 붙인다. 이스트론, 회수담당 금자······.삼억 이천칠백구십만 원, 그건 아버지 손에 쥐어져 있던 이스트론의 채무액과 동일한 금액이다. 금액뿐만 아니라 빚의 내용까지 모두 일치한다. 
그러니까 이 빚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다. 큰아버지가 진 빚을 이스트론에서 남김없이 긁어모아 다시 아버지에게 청구한 것이다. 
 
나는 무덤처럼 쌓인 고지서들을 깔고 앉아 반년 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본 큰아버지의 엉성한 모습을 떠올린다. 긴장하면 숱 많은 머리를 쉴 새 없이 쓰다듬는 손과 구부정한 허리,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숫기 없는 모습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며 짐승처럼 울먹이는 그에게 소주 몇 잔을 따라주었고, 그날만큼은 아버지도 날 말리지 않았다. 십년 만에 마주한 바보 같은 모습에 어쩐지 맥이 풀렸는데, 그게 다 연기였던 것일까. 큰아버지도 이제 우리처럼, 두 사람 이상의 포즈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나는 유언장을 스카치테이프로 이어 붙여 유라에게 보여준다. 
“되게 또박또박 쓰셨다. 죽으려고 마음먹은 직후인데도”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야”
자살한 사람의 주저흔을 들여다보듯, 다시 유언을 살펴본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망설임뿐만 아니라 전화번호나 주소도 없다. 이스트론 금자, 도대체 어떻게 빚을 갚으라는 말일까. 아버지의 죽음, 큰아버지의 변신. 하나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뿐이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유년 시절 큰아버지가 집을 떠나는 꿈만 꾸던 나는, 난생 처음 큰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린다. 도중에 유라가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놀란다.
“깜박했네. 포토그래퍼인데 뭐라고 하지?”
나는 유라의 손에서 전화기를 낚아챈다.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찍혀있다.
“볼일 끝났다고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가? 촬영 날도 아닌데 무보수로 찍어줬더니. 지금 누구 덕에 무대 서는데”
나는 수화기를 막고 소파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유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내려다본다. 나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들어 보이고 다시 전화를 받는다.
“네, 내일 뵙기로 했던 모델 반석입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말을 쏟아낸다. 
“내일 찍기로 한 프로필 사진 말인데, 시작도 전에 완전히 망치셨네요. 지금 제가 도저히 카메라를 들 기분이 아니거든요.”
나는 이스트론 금자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잘됐네요. 유라가 지금 세 시간 째 샤워를 하고 있거든요. 붕대 위를 만지작거리던 당신 손가락에 피부가 다 썩은 것 같다나요. 혹시 괜찮으시면 이쪽으로 오셔서 발이라도 씻겨주시겠어요?”
포토그래퍼는 대꾸가 없다. 나는 수화기 너머의 침묵 속에서 이스트론 명함에 적힌 숫자들을 뚫어지게 노려본다. 내가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으면,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갚아야 할 빚이 삼억 생긴다. 유라도 그걸 알고 있다. 지독한 아토피가 온몸에 번져있는 것도, 그러면서도 모델을 꿈꾼다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다. 지금 내 곁에서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가 모르는 것은 그러고도 내게 이억이 훌쩍 넘는 돈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뭐야 석? 미쳤어?”
유라가 거칠게 내 등짝을 후려친다. 언제 끊겼는지 통화 종료음이 메아리처럼 귓전을 맴돌고, 유라는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문밖으로 나가버린다. 얇아지는 종아리에서 언젠가 나를 두고 떠난 엄마의 뒷모습이 겹친다.  주먹을 힘껏 움켜쥐자 아버지가 남긴 아홉자리 숫자들이 손바닥을 갉작인다.  나는 멀거니 작아지는 유라의 실루엣을 바라보다 혼자 남은 소파에서 치즈버거 세 개와 사과파이, 조리도 안한 냉동피자를 꾸역꾸역 씹는다. 

음식들이 하나 둘 줄어가도 말려줄 유라는 돌아오지 않고, 나는 구역질이 날 때까지 그녀가 달콤한 쓰레기, 합법적인 마약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뱃속에 쑤셔 넣는다. 문득 난민처럼 홀쭉하게 말라있던 아버지의 갈비뼈가 떠오르고, 나는 희미한 복통을 느끼며 가죽이 벗겨진 소파에 누워 유라와 큰아버지를 기다린다. 벽시계가 어디로 갔는지 아라베스크 무늬의 거실 벽에는 대가리가 녹슨 못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벽지 무늬 속 미로를 헤맨다. 막다른 길에 가로막힐 때마다 손목시계를 흘깃거린다. 분침이 거의 돌지 않는 느낌이다. 드디어 일곱 시, 공장이 문을 닫을 시간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유라와는 다르게, 앞으로 정확히 한 시간 뒤면 큰아버지는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내가 헤아릴 수도 없이 긴, 사십여 년의 세월동안 한결같이 그래왔던 것처럼.

 

장희태 소설가

1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2012 창작과비평 봄호에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 수록 2015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출판한 신예작가에 해달이 조개를 건네는 이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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