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종권 시인, "시 쓰기와 격투기 모두 '내 안의 뜨거운 지점' 찾는 일"
[인터뷰] 황종권 시인, "시 쓰기와 격투기 모두 '내 안의 뜨거운 지점' 찾는 일"
  • 김상훈 기자
  • 승인 2018.06.04 2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황종권 시인은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후 문예지 지면 등을 통해 알음알음 시를 발표해왔던 시인이 8년 만에 첫 시집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를 출간했다. 이종격투기의 현장으로부터 태어난 시는 어떤 형태일까? 뉴스페이퍼에서는 황종권 시인을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알아보는 것과 더불어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로만 알려져 있던 그의 이력에 대해 들어보았다. 

- 시 쓰기와 격투기 모두 ‘내 안의 뜨거운 지점’ 찾는 일

황종권 시인은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로 알려져 있다. 류근 시인의 산문집에서 소개되며 알려지게 됐는데, 시인이 체험한 격투기는 합기도, 킥복싱, 유도 등 한 종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은 “격투기 선수라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지만 체육관에서 사범 급을 맡거나 대회에서 우승한 전적도 존재한다. ‘전직’이라고 표현되지만 격투기 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185cm를 넘는 듯한 훤칠한 키에 옷 위에서 근육이 느껴지는 몸은 시인이 아직도 단련을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도는 아직도 나가고 있는데, 아마추어들보다는 잘하게 된 것 같아요. 유도대회는 계속 나가고 있고, 좋아해요. 떨어지면 떨어지는 데로 재미있고, 우승하면 우승하는 데로 재미있어요.” 운동을 좋아하는 시인의 다음 목표는 주짓수 대회 등 다른 형태의 격투기를 해보는 것이다. 

“이종격투기 선수가 어쩌다가 시를 쓰게 되셨나요.”라는 질문에 시인은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종격투기 선수가 시를 쓰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시와 격투기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는 시인은 당연히 자신의 인생이 운동으로 향하리라 생각했다. 시와 만나게 된 것은 중학생 때 어머니의 필사노트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어머니가 손글씨로 남긴 바이런, 보들레르, 엘리엇의 시를 보며 황홀함을 느낀 시인은 그때부터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시와의 인연은 시인을 문예창작과로 이끌었다. 대학교와 대학원 모두 문예창작과를 나오게 된 시인은 지금까지 시작(詩作)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인은 시 쓰기와 격투기가 닮아있다고 이야기한다. 둘 다 시인이 뜨겁게 사랑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시 쓰기라는 것이 내 안의 뜨거운 점을 찾는 일이고, 격투기 역시 내 안의 뜨거운 어떤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거든요.”  

- “자세를 잡는다는 것은 버틴다는 것... 버티는 것은 생의 굉장히 뜨거운 통점”

시인이 시에서 발견한 뜨거운 지점과 격투기에서 발견한 뜨거운 지점은 때때로 교차하기도 한다. 시인의 시에는 몸과 자세를 연상시키는 시어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도 이 때문일까. 시집 제목인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는 시에서 자주 활용되는 ‘등’과 ‘울음’이라는 시어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등’을 비롯해 시에서 등장하는 몸은 건강하고 튼튼한 몸이 아니다. 경직되고 멍들고 부서지는 몸이다. 

시 ‘누군가의 병’의 화자는 링 위에 올라가 있다. 링 위에 올라올 때는 청춘이었을 화자는, 청춘이 지나버리고 나서야 치명타였음을 깨닫는다. 화자의 몸은 세상으로부터 얻어맞고 있으며, 그 폭력 속에서 화자는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를 맞았던 것을 떠올린다.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청춘이 치명타라는 것을 알았다//어쩌자고 나는 주먹이 쏟아지는 링 위에 서 있는 걸까//불빛이 먼저 나를 때린다//주먹을 뻗자 부서질 것밖에 없다”, “회초리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계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자세를 잡고 버티는 것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시 ’신호등의 뺨‘은 화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동자세를 취한 채 다가오는 절망을 바라본다. “우리는 전혀 다른 색으로 훌쩍거리는//피 냄새를 맡고 있었지만//핏줄을 태우는 구름 앞에서 부동자세였다” 시 ‘죽지 않는 여름’에서는 “젖고 싶었다/쏟아지는 자세로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는 화자나 시 ‘낙법’에서 “굽은 등을 둘둘 말아//바닥을 둥글게 안고 싶어라//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겠지?” 등 시인은 자세를 잡은 이들, 자세를 잡고 싶었던 이들을 그려낸다. ‘몸’이 부서지고, 멍들고, 경직된 것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버티기 때문이다. 

시집의 해설을 쓴 황정산 시인은 “자세를 잡는다는 것은 버틴다는 것이고 그것은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할 때 존재는 소멸한다.”고 전했다. 

황종권 시인은 “이 세계는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한다. “버티고, 견디고. 이런 것만이 전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세를 잡고 버틴다는 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일 수 있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바로 생의 굉장히 뜨거운 통점”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작(詩作)의 기본은 자세잡기다. 제대로 된 자세란 삶을 향해 제대로 된 태도를 갖는 걸 의미한다. 자세를 잡고 시를 통해 힘겨운 현실을 버텨낸다. “사람들은 흔히 시는 수려하게 뽐내는 언어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견디는 언어다.”고 말한 시인은 “‘유도’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처음의 자세다. 자세가 좋으면 넘기기 어려워진다. 모든 스포츠에서도 자세가 중요하다. 자세가 되어 있어야만 다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고 비유했다. 

“세상이 나를 몰아친다 해도 이를 이겨내려고 자세를 잡는 것이 아름다움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자세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뭔가를 도모할 수 있다. 함부로 살아가지 않고, 비판을 수용하고, 역경을 이겨내는 것은 자세잡기에서 나온다. 

시인의 세계에서 이 버팀은 어디로 이어질까. 시집의 마지막은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를 바라보는 시 ‘어떤 여행자’로 끝난다. 시의 마지막 연에서 “어떤 여행자도 사막을 무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시인은 말한다. 버팀의 끝에는 오아시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 “홀로 상경 후 15년... 감사한 사람들 너무 많아”

여수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시인은 15년 전 서울로 상경해 홀로 살아왔다. 고독감과 외로움을 시를 통해 풀어왔던 시인에게 최근 겹경사가 일어났다. 데뷔 8년 만의 시집 출간과 결혼이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시집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는 출간 나흘 만에 증쇄를 했고, 시인은 시집 말미에 ‘청혼’이라는 시를 수록하기도 했다. 아내에게 바치는 연시이자 프로포즈를 못한 자신이 다시 보내는 프로포즈인 셈이다. 

최근 도서관 상주작가를 마친 시인은 지금은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시로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을 산문으로 이야기 해볼 예정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인터뷰 도중 감사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185’를 언급하기도 했다. 

‘185’는 키 185cm를 넘는 시인들 – 이병철, 이병일, 류근 등 –이 포함된 일종의 동인 활동이다. 황종권 시인은 “동인이라기에는 좀 무겁고, 서로 의지하는 모임”이라며 “우리 같이 시 쓰고 있지 라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소개했다. 

인터뷰 말미에 황종권 시인은 “김승현, 김정환, 류근, 이병일, 김홍래... 이런 분들이 저를 진짜 많이 지켜주셨다. 특히 감사드리고, 힘들 때 단번에 와주는 분들, 시를 쓰라고 지켜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 시집이 그분들에게 작은 보답이었으면 좋겠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Tag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