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이라 불린 궁예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원재길 소설 “궁예 이야기” 출판 기념회 열려
폭군이라 불린 궁예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원재길 소설 “궁예 이야기” 출판 기념회 열려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8.06.08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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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2000년도에 방영된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에는 주인공 왕건보다도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 한쪽 눈에 금빛 안대를 차고 근엄한 목소리로 “나는 미륵이니라.”를 외치는 ‘궁예’이다. 당시 태조왕건은 시청률 60%라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으며, 궁예를 연기한 김영철 배우의 대사는 크게 유행했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조차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으로 한쪽 눈을 가린 채, “네 안에는 마구니가 있다.”라는 흉내를 냈을 정도이다. 

<KBS 드라마 '태조왕건'의 궁예>

드라마에서 궁예는 초창기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그려지나, 말기엔 의심이 극에 달한 반미치광이 폭군으로 타락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궁예도 반미치광이와 폭군, 사이비 지도자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궁예의 모습이 ‘승자의 역사가 뒤집어씌운 망나니의 탈’이라 주장하며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 이가 있다. 연세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전공한 한국사와 국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단강 출판사를 통해 장편소설 “궁예 이야기”를 펴낸 원재길 소설가이다. 

<성석제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지난 1일 동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문화살롱 기룬에서는 “궁예 이야기”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개최됐다. 이날 성석제 소설가는 이 작품은 작가와 독자 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예컨대 1권 57페이지 “아이에게 공부를 시켜야 할 때가 오리니, 그때 내게 보내세요.”라는 대사를 보면,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루한 어법과 현대의 어법인 ‘보내세요’를 동시에 채택하여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는 것. 때문에 작가와 독자의 거리는 좁히되 읽는 이에게 괴리감을 주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민음사에서 초대 편집주간을 맡은 이영준 경희대 교수도 독자의 접근성에 긍정적 의견을 표했다. 한자말을 많이 쓰는 일반의 역사소설과 달리, 경쾌하고 터무니없는 농담들이 녹아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러며 이 교수는 “역사소설이 가진 무게를 공중에 들어버릴 때”도 종종 있었으나, 그것이 어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영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원재길 소설가는 궁예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을까? 

장편소설 “궁예 이야기”의 시작은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길한 징조와 함께 후궁의 아들로 태어난 궁예는, 갓난아기 시절 왕의 사주로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유모는 떨어지는 궁예를 몰래 받아 성에서 도망쳐 나오지만, 받는 과정에서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궁예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만다. 

또한 일반적으로 유모의 손에 길러진 궁예는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되자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으로 간략히 묘사된다. 원재길 소설가는 이런 사료의 기본적 틀은 유지하되, 그간 언급되지 않았던 궁예 개인의 감정을 조명한다. 여태 어머니라 생각해온 유모가 죽자, 궁예는 한없는 우울감과 절망을 느낀다. 10세에 불과한 소년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미륵불을 자처하며 살육을 일삼았던 모습도 다르게 그려진다. 팔관회를 기념한 가장행렬을 위해 미륵불로 분장했으며, “무척 재미있어 하면서도 사뭇 어색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고 헛기침”을 하는 궁예이다. “나는 미륵이야”를 외치던 사이비 같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주변에 대한 의심이 커져 아내마저 죽였다는 설도, 궁예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원재길 소설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원재길 소설가는 “궁예 이야기”를 쓰는 시간이 “참으로 신비로운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소설을 쓰는 동안 궁예라는 인물이 더없이 생생하게 살아나, 밥을 먹을 때나 밭을 일굴 때에도 곁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 소설가는 “오전에는 그와 함께 농사를 지었으며, 저녁이 되면 궁예가 슬며시 사라진 가운데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며, 궁예 역시 한 명의 사람이었음을 강조했다. 

올해는 궁예가 누구보다 믿었던 부하에게 쫓겨나 죽은 지 꼭 일천 백 년이 되는 해이다. 원재길 소설가는 이렇게나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시절 임금과 귀족, 세도가의 모습과 쏙 빼닮은 이들이 현재에도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며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오싹해진다.”고 전했다. 그러며 “이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한 궁예 같은 인물은 거듭 되살아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일에 몸을 던질 것”이라 덧붙였다. 

<"궁예 이야기" 출간기념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궁예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한 원재길 소설가. 그의 작업이 “기록 속에 잊힌 목소리를 발굴”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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