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제1장 1편: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이성적 인간의 출현.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제1장 1편: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이성적 인간의 출현.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6.0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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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이성적 인간의 출현

1강, 개관 

가, 들어가기 

계속해서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를 보것습니다.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우리는 앞에서 [삼국지]에 이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보았거니와 거기서 ‘세계시’(천병희)로서의 위상을 지닌 거대한 청동거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우리는 서구문화의 원류로서 마르지 않는 사유의 샘을 제공하고 있는 세계고전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킬레스의 명예로운 죽음은 그들의 정신의 물결에 깊이 있게 스며들어 중세의 기사도 정신으로, 근세의 신사도로, 현재에도 노블리스 오빌리지noblesse oblige라는 전통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일리아스]는 그리스는 물론 서구에서 지금도 여전히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치의 척도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먼 이제 [일리아스]와 더불어 서구문화의 또 다른 원류라 할 수 있는 [오딧세이아]를 보것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이라는 구절입니다. 즉 우리는 여기, [오딧세이아]를 통해 [일리아스]와 더불어 서구문화를 ‘근본적으로bascially’ 결정짓는 새로운 문화적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사시 [오딧세이아]의 주인공은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신과도 같은 오딧세우스입니다 그는 정말이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거기엔 그가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자신의 왕국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가 안락한 고향으로, 자신의 왕국으로 귀향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이Odyssey'하먼 ‘고단한 삶의 과정과 여정’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먼 귀향서사 [오딧세이아]가 던지고 있는 토포스, 주제는 대체 무엇일까여... 

여기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푸코 식으로 말해 하나의 에피스테메episteme로서의 지식의 패턴적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세계에는 대체적으로 보아 ‘감성적’ 인간형과 ‘이성적’ 인간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품성을 가진 인간이 시적 감수성이 뛰어난 인간형인 반면, 이성적이고 시민적 인격을 지닌 인간은 합리적 사고가 발달한 인간형인 것입니다 가령,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산초’가 그렇고, 허먼 멜빌의 ‘에이허브’ 선장과 일등항해사 ‘스타벅스’가 또한 그러하며, 그리고 여기 아킬레스와 오딧세우스에게서 두 인간형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먼서 서구적 사유의 두 기둥 역할을 해오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 도덕적 인간, 이지적 인간 

우리는 앞에서 [삼국지]와 [일리아스]를 통해서 보았거니와, 거기 [삼국지]에서 관우가 중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에게 ‘의리’라는 대의를 지키고 사는 게 가장 바람직한 삶의 가치인양 하나의 롤 모델로 제시되었거니와, 꼭 그대로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스 또한 대의를 위해 소아를 희생할 줄 아는 공공적 모럴로 제시되어 있고, 이 부분을 통해 우리는 호메로스가 왜 ‘모든 그리스인의 교육자’(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였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삼국지]에서 유비-관우의 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것은 ‘세상이 비록 나를 버리더라도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신념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스-파트로클로스의 관계에서도 이와 같은 태도를 볼 수 있거니와 그것은 즉 대의를 위하고, 벗을 위하고, 부족을 위해서는 나의 목숨도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무어라 옳고 그르다를 평가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것은 머 가치의, 신념의,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하나의 도덕적 감성의, 내적 결단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도덕적 감수성의 차원으로서 나보다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던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아름답고 가상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신념 또는 태도라는 것이 나로부터 형성된 주체적 세계관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의 도덕률이자 풍속을 떠받치는 규범으로서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하는 많은 사회적 모럴들이 사실은 그 누군가에 의해-즉, 힘 있는 자들에 의해-이름 지어진 것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즉 도덕은 대부분 나의 '존재be'의 경험 현실에 기초해 자율적으로 형성된 그것이기보다는 그 누군가에 의해 타율적으로 가치가 매겨진 ‘당위ought to’로, 강제도덕으로 만들어져 끊임없이 재생산, 재현되어 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랫사람은 무조건 윗사람 말을 따라야 하고, 지시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아이들은, 학생은, 여자는 반드시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당위에 눌리어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머 “예교가 사람 잡아먹는다”는 노신의 말처럼, 당위가 삶을 말살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가 아닐 수 없고 “재현이 언제나 욕망적 생산의 억압-탄압”(들뢰즈/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이었던 것처럼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부정한 것입니다 

주홍칠이 날은 정문旌門이 하나 마을 어구에 있었다 

‘孝子盧迪之之旌門효자노적지지정문-몬지가 겹겹이 앉은 목각木刻의 액額에 
나는 열 살이 넘도록 갈지자字 둘을 웃었다 

아카시아꽃의 향기가 가득하니 꿀벌들이 많이 날어드는 아츰 
구신은 없고 부엉이가 담벽을 며쫓고 죽었다 

기왓골에 배암이 푸르스름히 빛난 달밤이 있었다 
아이들은 쪽재피같이 먼길을 돌았다 

정문旌門집 가난이는 열다섯에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갔것다 

- 백석, ‘정문촌旌門村’, [사슴], 1936
여기, 시인은 시대착오적인 정문촌을 담담하게 풍유諷諭하고 있습니다. 정문촌은 도덕의 올가미에 들씌워진 마을입니다. 그곳은 과연 마을어구에 아직도 구신 같은 정문이 서 있고, 구신 같은 부엉이 울음이 구구-하고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시인의 말(‘흰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대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괴괴한 밤, 옛성의 돌담에 달이 오르고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나는 흰 밤, 이런 때는 하나의 ‘암시suggestion'로서 틀림없이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는 밤도 바로 이런 밤일 것입니다. 정문旌門은 무엇인가여. 충신, 효자, 그 중에서도 바로 이런 수절과부, 열녀烈女라는 삼강오륜의 본보기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의 집 앞이나 마을어구에 세워 놓은 붉은 문입니다 

그러나, ‘정문촌’은 낡은 기호로 가득 차 있는 곳입니다. ‘날은’은 ‘낡았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붉은 칠을 한 정문은 벌써 언제인지 모르게 색이 바래고, 먼지가 겹겹이 앉아 있습니다. 귀신이 있다는 것도 말짱 허구입니다. 귀신 울음을 운다는 부엉이도 치쪼고 죽었습니다. 기왓장에 푸르스름한 배암이 지나고, 아이들조차 쪽제비처럼 먼 길을 돌아갑니다. 인간의 욕망을 거세당한, 그래서 더욱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가난이도 별수 없이(~것다) 늙은 말꾼한테 시집을 갑니다. ‘정문촌’은 이렇게 빛바랜 가치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곳은 모두가 기피하고 외면하는 곳이자 가치의 기둥이 무너진 곳임을 암시하는 코노테이션입니다 시인은 이처럼 강제도덕으로 군림하고 있는 동양 성리학의 세계가 사실은 낡아빠진 정문처럼 시대착오적인 가짜 세계임을 ‘슬며시’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2편 이어서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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