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제1장 2편: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이성적 인간의 출현.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연중기획]제1장 2편: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이성적 인간의 출현. 김상천의 고전문예강의
  • 김상천 문예비평가
  • 승인 2018.06.0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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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이성적 인간의 출현

1장 1편 보기

[뉴스페이퍼 = 김상천 문예비평가] 그러나, 여기 호메로스의 [오딧세우스]는 영 딴판입니다 

“들려주소서, 무사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 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천병희)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저 [삼국지]의 조조처럼 ‘임기응변에 능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자가 임기응변에 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저 관우나 아킬레스 같은 인간형과는 무언가 다른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아킬레스와는 다른 오딧세우스적 인간형을 확인할 수 있거니와 그것은 감성적 인간형이 아닌 이성적, 이지적 인간형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정한 신념을 지닌 삶과 임기응변에 바탕한 삶은 그 삶의 결과 꽃무늬가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What matters, 

중요한 것은 아킬레스가 감성형 인간으로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서사시의 주인공인 데 비해, 오딧세우스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이성형 인간으로서 행복한 결말을 누리고 있는 성공서사의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즉 서구적 사유의 문화적 유전자 세계에서는 역시 감성보다는 이성이, 다시말해 동양에서 임기응변에 능한 이지적인 조조가 지탄을 받고 있고 충직하기 이를 데 없는 봉건기사인 도덕적인 관우가 추앙을 받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서양에서는 도덕적인 아킬레스보다는 이지적인 오딧세우스가 더 우세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동양의 도덕주의’와 다르게 ‘서구의 합리주의’로 귀결되고 있는 서구의 지성사를 논의할 때 우리는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여기, [오딧세이아]를 논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그대로 서구적 지성의 물줄기가 오딧세우스의 ‘임기응변’에서 비롯되고, 임기응변은 그 무엇에 대한 하나의 일관된 신념이라기보다는 신중하고 안전한 것을 우선시하는 주의 깊은 ‘분별력discernment’과 다재다능하고 신축성 있는 플렉시블한 유연한 ‘대응력adaptability’이, 이성적 판단과 사고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중하고 안전을 우선시하는 주의 깊은 분별력과 다재다능하고 신축성 있는 플렉시블한 유연한 대응력이 그를 성공서사의 주인공으로 이끌었던 것이고, 이것은 또한 스탠포드([율리시스 테마])의 말대로, 그만이 소유하고 있는 매우 두드러진 성격적 특징으로 중립적 성향을 지닌 ‘노트럴neutral'한 자질을 지닌 지성의 힘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트럴한 지성이 결국 '지적 호기심intellectual curiosity'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으로 기능함으로써 그를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모험에 뛰어들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딧세우스 이래, 신화적 단계를 지나 헤로도투스를 거치고 저 탈레스 등 자연철학자를 통해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이 일기 시작하고, 이것이 다시 소크라테스를 통해 인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심으로 바뀌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에 이르러 고대 그리스 황금시기 서구의 지성사가 드디어 하나의 원환을 이루기까지 오딧세우스의 이런 정신적 기조가 하나의 감정구조로 서구인의 망탈리테를 형성하는데 근본적인 기저a foundation로 작용함으로써 서구지성사의 졸졸졸 흐르는 샘물水源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동양의 문화유전자가 현세적인 ‘인의도덕’의 실천이라는 성격을 지녔다먼, 서양의 그것은 보다 이상적인 ‘형이상학’의 추구라는 특징을 지니게 된 것으로, 이의 문학적 원조가 바로 오딧세우스였던 것입니다 

다, 신화는 대중문화의 거대한 매트릭스 

이런 서구적 망탈리테를 잘 대변하는 비근한 사례로 우리는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를 들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커피는 이성음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호식품입니다 자, 그런데 이성음료를 상징하는 커피 브랜드가 왜 하필 스타벅스입니까 스타벅스, 그는 허먼 멜빌의 [흰 고래]에 나오는 일등항해사입니다 거기, 흰 고래에 미쳐 날뛰는 에이허브 선장은 그대로 분노에 사로잡힌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스를 떠올리게 하고, 언제나 ‘침착하고 빈틈없으며, 용의주도한’ 일등항해사 스타벅스는 그대로 임기응변에 능한 이성적인 인간 오딧세우스를 연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시먼서 나 또한 하나의 스타벅스로서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그처럼 ‘침착하고 빈틈없으며, 용의주도한’ 인물이 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좀 냉혹하고 이지적인 모럴을 내면화시키는 것입니다 즉 스타벅스는 현대판 오딧세우스인 것입니다 여기에 세이렌siren이라는 매혹적인 요정신화가 더해져 스타벅스라는 공전의 커피브랜드가 탄생한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런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상상의 세계가 결코 시대착오적인 옛날 야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신화는 지금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무미건조한 토양에 '시적 기억'을 일깨우고 논리가 가 닿지 못하는 시원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심지를 박고 있는 하나의 원석이자 하나의 토대로, 신화는 대중문화의 거대한 매트릭스matrix입니다 

과연 그럴까여, 또 보것습니다 

전자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사이버cyber’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는 ‘인터넷 상’이라는 의미로 각종 신조어의 접두 어근으로 쓰이고 그 쓰임새 또한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보의 바다와 함께 ‘사이버 바다’라는 비유적 표현도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사이버’는 바다와 오랜 관련이 있는 워딩입니다. 사이버는 본래 그 기원이 배의 키잡이, 선장을 의미하였습니다. 저 그리스의 플라톤이 지은 시론서, [이온Ion]에 이 선장이 나옵니다. 

소크라테스; 조선공의 작업은 누가 감독하지? 
헤르모게네스; 선장이겠지요. 

여기서 ‘선장’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이 ‘키잡이(조타수)’를 뜻하는 kybernetes입니다. 선장은 곧 키를 조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키를 그리스어로 kybernan이라 했습니다. 

소통communicatiom과 제어control을 뜻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또한 여기서 착안해 만들어졌습니다. 1948년 한 논문에서 위너 박사는 어떻게 하나의 동물 무리가 서로 소통하며 집단의 ‘방향’을 결정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단어 키잡이kybernetes에서 그 의미를 빌렸습니다(노버트 위너, [인간의 인간적 활용:사이버네틱스와 사회], 텍스트). 즉 인간도 컴퓨터로 서로inter 연결net해 놓으먼 자연스럽게 집단을 이루고 소통의 코드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학문도 cybernetics라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등 인터넷을 수식하는 단어가 되어 cyber가 자연스럽게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박의 키를 뜻하던 kybernan에서 어형의 변화를 거쳐 오늘 cyber가 되기까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다의 힘이었습니다. 익히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제국은 해상 무역으로 번성한 제국이었습니다. 지중해 동서남북으로 배를 띄워 해적질과 전쟁, 또는 무역으로 큰돈을 벌고 수많은 도시국가를 건설했습니다. 즉 그리스의 융성은 바다와 함께해 온 역사였습니다. 이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회를 배에 곧잘 비유하곤 했습니다. 배는 물살을 가르는 큰 나무판자를 회전시켜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판자를 ‘키’라 합니다. 

컴퓨터 세계도 마찬가지다. 선장이 키를 회전시켜 방향을 잡고 배를 조정, 통제하듯이 컴퓨터를 쓰는 나 또한 컴퓨터 자판의 키와 마우스를 이리저리 조정하여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나의 길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주지사도 사회와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권력이기 때문에 여기서 government와 governor이 나왔던 것입니다. 

여기, 

대표적인 선장이자 지도자로 [오딧세이아]의 주인공 오딧세우스Odysseus(라틴명은 Ulysses)를 들 수 있습니다. 10여 년에 걸친 대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다시 고향 이타카Ithaca로 귀향하기까지의 10여 년에 걸친 숱한 모험담을 담은 이 대서사시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세이렌의 유혹 등 수많은 위기에 처한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지성의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여기, 그가 마주친 유혹과 위기, 그리고 극복의 드라마는 후일 그들이 또한 겪고 이겨내야만 했던 고독한 로빈슨 크루소와 탐험가 컬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일pre-Columbian explorer과 다르지 않았으며 또한 일상에서 늘 위기와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오늘 현대인의 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다처럼 넓지만 위험하기도 한 전자정보의 세계... 

우리는 지금 세이렌에 마주친 오딧세우스 이상으로 실체도 없고 형태도 없는 전자세계가 만들어낸 이미지라는 허상의 세계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주목해야 하는가여. 서사는 나갔다 돌아오는, 멀고 먼 항해와도 같은 고된 여정입니다. 하여 자전서사의 주인공인 나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이 험난한 인생 항해를 뚫고 기어코 내 고향 이타카에 무사히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우선 ‘임기응변에 능한adaptable’ 오딧세우스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김상천 문예비평가         
“텍스트는 젖줄이다”, “명시단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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